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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Janáček, String Quartet No.1 `Kreutzer Sonata`)

Bawoo 2014. 2. 19. 17:03

Janáček, String Quartet No.1 'Kreutzer Sonata'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Leoš Janáček

1854-1928

Kubin Quartet

Luděk Cap, 1st violin

Jan Niederle, 2nd violin

Pavel Vítek, viola

Jiří Hanousek, cello

Ostrava, Česko

2013.01.28

 

Kubin Quartet - Janáček, String Quartet No.1 'Kreutzer Sonata'

 

체코의 위대한 두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를 이은 야나체크는 쉰 살이 될 때까지 작곡가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놀라운 작품들을 쏟아낸 대기만성 인물이다. 여기에는 결정적 전기가 있다. 야나체크는 27살 때 자신을 음악가의 길로 인도한 스승의 딸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그의 아내 즈덴카는 은근히 야나체크를 무시했으며, 정서적으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상류사회 출신과 가난한 체코인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두 사람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일찍 죽으면서 부부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나체크는 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우연히 카밀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야나체크는 63세, 카밀라는 25세, 38살의 나이 차에 둘 다 배우자가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야나체크는 비밀스러운 사랑을 계속했다. 죽을 때까지 오로지 카밀라에게만 집착했는데, 애정 공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1년 동안 무려 7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큼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이 야나체크에게 영감의 샘이 되었던 것이다.

야나체크는 이 시기부터 엄청난 속도로 작곡을 했다. 당시의 자필악보를 보면 그가 얼마나 급하게 음악적 영감을 옮겼는지 알 수 있는데, 오선지가 아닌 백지에 작곡한 것들이었다. 콰르텟엑스의 조윤범의 말처럼 KFC 할아버지와 닮은 야나체크는, 그러나 다혈질이었고 불같은 성격이었다. 작곡하는 성향도 매우 즉흥적이고 본능적이었다. 야나체크는 두 곡의 현악 4중주를 남겼는데, 1번은 ‘크로이처 소나타’(원 부제는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고’), 2번은 ‘비밀 편지’이다.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는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곡이고, 현악 4중주 2번 ‘비밀 편지’는 그가 카밀라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고 쓴 작품

1923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이 무렵 야나체크는 애인 카밀라 시테슬로바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아파하며, 쓰러져 가는 가련한 한 여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라고 썼다. 그러니까 현악 4중주 1번은 음악으로 쓴 독서 감상문인 셈이다. 톨스토이(1828-1910)

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불륜에 관한 소설이다. 피아니스트인 부인이 반주를 해주던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자 남편은 부인을 권총으로 쏴 죽인다.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반주해주던 곡이 베토벤의 유명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였고, 이것이 그대로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부인을 살해한 남편을 옹호하고 있다. 이 남편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게끔 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불륜은 없어져야 하며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도 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사랑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나체크는 현악 4중주 1번을 톨스토이의 소설에 감명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는 이 소설에 강한 반발심을 느껴 항의하는 뜻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는 소설 속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러한 사랑의 진실과 정열을 몰라주는 톨스토이에게 이 곡을 통해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야나체크는 남편에 의해 짓밟히고 살해당한 아내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네 대의 현악기는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가 서로 소통의 한계를 절감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3악장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애잔한 선율,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것을 방해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렬한 저항, 이어지는 4악장에서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 이를 따라 파국으로 치닫는 세 악기, 변주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마지막에 드디어 편안한 안식에 도달한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매우 격정적이다. 시작부터 간격이 넓은 트릴과 변덕스러운 템포 변화는 심상치 않다. 특히 콰르텟 작곡법이나 편곡법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빠른 아르페지오(분산화음ㆍ펼침화음: 여러 개의 음을 한 음처럼 동시에 소리 내지 않고 한 음씩 연속해서 소리 내는 것)를 시도한다. 피아노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기법은 사실 현악 4중주에서는 거의 연주가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라벨이나 스크랴빈의 피아노 음악을 현악기로 편곡하려다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기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야나체크는 해냈다. 성공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무리하게 집어넣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어내긴 했는데, 바로 고통스러움이다. 기교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절규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감정의 고도를 유지하면서도, 야나체크는 피치카토와 옥타브의 움직임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폰티첼로(현악기로 쉭쉭거리는 잡음 소리를 내는 것) 기교를 삽입해서 새로운 음향을 시도한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의 끝부분은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다.

밀란 쿤데라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아나체크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체코의 위대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바치는 오마주로 썼다고 한다)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영화에는 전편에 걸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오는데(처음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쓰려다 밀란 쿤데라의 고집으로 야나체크의 음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기본적인 음향적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라는 피아노곡집이다. 1901년부터 1908년에 작곡한 이 작품은 음악으로 쓴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야나체크는 고향 후크발디의 풍경,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노래했다.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

영화의 정서적 근간을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곡이 바로 두 편의 현악 4중주이다.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성격이 짙은 이 두 편의 현악 4중주는 프라하에서 시위를 벌이다 잡혀 온 사람들에게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 토마스와 테레사가 위험을 피해 도피하는 장면, 테레사가 떠나고 토마스가 혼자 쓸쓸하게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 토마스가 병원장의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 등에 나온다. 영화 <프라하의 봄>에 나오는 야나체크의 음악은 단순하고 가벼운 음악과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드러낸 표현주의적인 음악으로 구별된다.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가 전자라면 두 곡의 현악 4중주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남긴 두 편의 현악 4중주를 ‘야나체크 음악의 절정’, ‘표현주의 음악의 정수’, ‘총체적 완벽성’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쿤데라의 말에 의하면 야나체크는 본인이 표현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표현주의라는 말에 적합한 유일한 작곡가라는 것이다. 덧붙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첫머리에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음반시장에 때 아닌 야나체크 열풍이 불기도 했다.

Gerhard Quartet - Janáček, String Quartet No.1 'Kreutzer Sonata'

LLuis Castan Cochs, 1st violin

Judit Bardolet Vilaro, 2nd violin

Miquel Jorda Saun, viola

Jesus Miralles Roger, cello

Wissembour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Alsace

2013.08.22

1악장: 아다지오. 콘 모토

1악장은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과 비올라로부터 제시되는 우수에 찬 짧은 가락과 함께 곧이어 첼로에 의해 나타나는 무곡풍의 기이한 선율이 교대로 발전된다. 이 곡을 헌정 받았고 초연했던 체코 사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수크가 개정한 대본을 오리지널 대본으로 복원시킨 스메타나 사중주단의 비올리스트 밀란 시캄파에 의하면 이 1악장은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불쌍하고 지친 여인의 초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2악장: 콘 모토

2악장은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여인을 유혹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바이올린의 그림자가 깃든 노래로 시작된다. 하지만 1악장의 약음기를 단 주제는 이곳에도 고개를 쳐들며 비극성을 암시해준다. 이에 답하는 어두운 비올라와 첼로의 중얼거림은 소설의 답답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곡은 이런 어두움을 씻어버리려는 듯 잠시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느릿하게 마감 짓는다.

3악장: 콘 모토. 비바체 - 안단테

스케르초 악장에 해당하는 3악장은 느릿하게 흐르는 슬픈 선율의 흐름을 방해하는 ff의 자극적인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외침이 인상적이다. 이 악장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와 비올라의 반주에 함께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높고 아름다운 외침은 곡 전체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4악장: 콘 모토. 아다지오

파국으로 치닫는 4악장은 느릿하고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와 이를 따르는 세 악기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곡은 1악장 첫 주제의 리듬과 변주를 점점 키워 가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몰입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편안한 안식을 주는 듯 조용히 사라져 간다. 곡의 이런 표현주의적 성격 때문에 실제로 본고장 프라하에서는 연극배우들이 이런 주인공들의 심리를 직접 연기한 후 곧이어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로 곡을 감상하는 식의 공연이 행해지기도 한다.

 

  해설ㆍ정리 : 라라와복래 2013.11.26

 

출처 : 클래식 사랑방
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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