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Maurice Ravel
1875-1937
Walter Gieseking, piano
No.3 Studio, Abbey Road, London
1954.12
모리스 라벨은 1895년 자신의 최초 출판 작품인 피아노를 위한 <고풍스러운 미뉴에트(Menuet antique)>를 작곡하고 1897년에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귀로 듣는 풍경(Sites auricularies)>( 1975년 출판), 1901년에는 리스트의 정신을 이어받은 <물의 유희(Jeux d’eau>를 작곡하는 등 일찍부터 피아노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14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경직된 음악어법을 고수하던 몇몇 교수들에 의해 자신의 재능이 일찍 개화되는 것을 저지당하는 사건을 겪었는데, 아카데미 내에서는 이방인과 같았던 에릭 사티(Erik Satie)와 교류하며 급진적인 기운을 내보였던 라벨에게 음악원장인 가브리엘 포레만큼은 호의적인 평을 내리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1906년 라벨
이런 까닭에 라벨은 사티와 포레, 드뷔시, 더 멀리로는 리스트로부터 영향을 받은 피아노 어법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학생 신분임에도 파리에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풍스러운 미뉴에트>와 관현악을 위한 <셰헤라자데>, <물의 유희> 등을 통해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내비치며 천재성을 발휘한 그에게 행운의 여신도 편이었다. 천성적으로 과묵한 성격이었지만 그는 지인들과 함께 살롱을 드나들며 아무런 방해 없이 자연스럽게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승인 포레는 드 마르소 부인의 살롱에서 라벨에게 드뷔시와 댕디를 비롯한 음악가들과 훗날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사>의 리브레토를 쓴 콜테르와 같은 작가들 등 많은 사교계 인사들을 소개시켜주었다.
무엇보다도 당대 가장 영향력 높은 후원자로 명성을 떨친 폴리냐크 공작부인의 살롱에도 출입하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폴리냐크 공작부인의 본명은 위나레타 싱어로 뉴욕 태생이다. 싱어 미싱 기계 발명으로 유명한 미국인 아이작 싱어와 프랑스 출신의 이자벨 부아이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1867년 가족을 따라 프랑스에 정착하여 저택 내에 살롱을 운영하며 많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여덟 대나 소유하고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했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그녀의 취향에 맞추어 이곳에서는 매주 새로운 현악 4중주가 초연되었고 파리의 일류 음악가들이 초청되었다.
1882년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가한 뒤 폴리냐크 공작부인은 더 다양한 음악가 및 저널리스트들과 교우 관계를 넓혀 갔다. 그녀는 한 차례 결혼을 했지만 동성애적 기질을 드러내며 1891년에 이혼을 했고 1892년에는 바티칸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이 무렵 아버지로부터의 발명특허 이익배당금 등으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으며 1893년 12월에 프랑스의 유명한 귀족 가문의 에드몽 드 폴리냐크 공작(1834-1901)과 재혼했는데, 이 공작 또한 파리 음악원 작곡가 출신으로서 파리의 대표적인 동성연애자이자 작곡가였다. 이 두 동성연애자의 결혼으로 인해 그들의 에너지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예술과 음악을 향해 뜨거운 열정과 전폭적인 후원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폴리냐크 공작부인(Princess Edmond de Polignac, 1865-1943)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 파리 음악계에서 폴리냐크 공작부인의 영향과 재정적 후원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포레를 비롯하여 샤브리에, 에릭 사티, 레이날도 앙, 알베니스, 스트라빈스키, 파야, 미요, 불랑제 등등 당시 모든 프랑스 음악가들이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포레는 폴리냐크 공작부인의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음악가로서, 포레와 폴리냐크 부인과의 관계는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의 관계에 비길 만하다. 사티를 각별하게 대했던 폴리냐크 공작부인은 프랑스 6인조의 결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발휘하며 타유페르에게 피아노 협주곡을 위촉했고 미요에게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토대로 한 극음악을 위촉했으며 1920년대 이후 부인의 살롱에서 살다시피 했던 풀랑크에게는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오르간 협주곡을 위촉하기도 했다.
에드몽 드 폴리냐크 공작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모임. 제임스 티소의 그림.
라벨 또한 폴리냐크 공작부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수혜자로서 그녀를 위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을 작곡하여 헌정했다. 이 작품은 1899년에 완성되고 1900년에 출판되었는데,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그의 친구이자 스페인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리카르도 비녜스의 연주로 <물의 유희>와 함께 1902년 4월 5일 초연된 이후 급속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죽은 왕녀가 헌정자인 폴리냐크 공작부인이 아닌가라는 세간의 관심에 대해 작곡가는 “이전 시대 스페인 궁전에서 춤을 추었을 어느 어린 왕녀를 위한 기억”이라 설명하며 특정한 인물이나 대상을 가리키지 않고 오직 단어들이 주는 음률에 따라 제목을 선택한 것임을 피력했다. 그러한 까닭에 연주가들이 필요 이상의 상상이나 해석을 하는 것을 그는 철저히 금지했다.
Ensemble DITTO - Ravel,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Stefan Pi Jackiw, violin
Richard Yongjae O'Neill, viola
Michael Nicolas, cello
Ji-Yong, piano
Seoul Arts Center, 2011.07.03
옛 무곡 형식인 파반 리듬을 따라 감각적이지만 몽환적이지 않고 멜랑콜리하다기보다는 노스탤지어적인 분위기가 5분여 동안 진행되는 이 조용한 피아노곡은 <스페인 광시곡>이나 <볼레로> 등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스페인 취향에 라벨이 일찍부터 심취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샤브리에 풍으로서 형식이 빈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라벨은 오히려 이 작품이 형식적인 엄격함과 화음의 정교함을 바탕으로 연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처음에는 연주자에게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은 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음악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조금 빠른 템포를 허용하게 된 탓에 현재와 같은 빠르기로 정착될 수 있었다.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스케일을 일체 사용하지 않은 채 평범한 멜로디와 고전주의적인 동시에 완벽주의적인 화성, 극도로 절제된 표현력, 현실에서 유리된 듯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이 피아노 작품은 초기 라벨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라벨은 1910년 오케스트라용을 위한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내추럴 혼, 하프, 현악이 사용된 이 오케스트라 편곡은 1911년 12월 23일 콩세르 아셀망에서 알프레도 카젤라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현대에는 기타와 목관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솔로 악기로 편곡, 연주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추천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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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라도 페를레뮈터 Nimbus
3. 장-이브 티보데 DECCA
4.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샤를 뒤투아(지휘) DECCA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현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