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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촉한, 서진의 정치가]동궐(董厥)/번건(樊建)

Bawoo 2020. 12. 18. 20:29



동궐(董厥, ? ~ ?)

삼국시대 촉한과 서진의 정치가. 자는 공습(龔襲).

의양 출신으로 제갈량이 승상으로 있을 때 승상부 영사가 되었으며, 제갈량이 그를 칭찬해

동영사는 훌륭한 선비다. 내가 매번 그와 말해보면 생각이 신중하고 조리에 맞구나.

라면서 주부로 삼았다가 제갈량이 죽은 후 승진해 상서복야에 이르렀다. 그 후 진지를 대신해 상서령이 되었다가 보국대장군이 되어 후임으로 상서령은 번건이 되었다.

261년에는 제갈첨과 함께 평상서사가 되어 제갈첨, 번건과 함께 염우로 대체할 것을 건의하지만 거절되었으며, 끝내 황호가 권세를 농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263년에 위나라에서 촉 정벌군을 일으켰을 때 황호의 농간에 속아 뒤늦게 알게 된 유선은 동궐과 장익을 함께 지원부대가 되어 양안관구로 향하게 했으며, 이 둘이 한수에 도착하자 강유요화는 음평을 버리고 후퇴해 이 둘의 군대와 합쳐 검각에 주둔한다.

264년 촉이 멸망하자 유선을 따라 경도로 가서 상국 참군이 되었으며, 가을에는 산기상시를 겸했다.

연의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따라가지 않고 성도에 남아 있다가 병사한 것으로 처리했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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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 Jue (fl. 220s–260s), courtesy name Gongxi, was an official and military general of the state of Shu Han in the late Three Kingdoms period of China. He continued serving as an official in the state of Cao Wei, which conquered Shu Han in 263.

Life[edit]

Along with Fan Jian, Dong Jue served as a clerk and registrar under Zhuge Liang, the Imperial Chancellor of Shu, during the Southern Campaign and Northern Expeditions. After Zhuge Liang's death in 234, he was appointed as Supervisor of the Masters of Writing and later as the Prefect of the Masters of Writing in 258 to replace Chen Zhi. He was later promoted to General-in-Chief and Senior General Who Assists the State. The Shu emperor Liu Shan also enfeoffed him as the Marquis of Nan District.

Dong Jue subsequently assisted the Shu general Jiang Wei in the defence of Jiange in 263. He also attempted to counsel Liu Shan, but was unable to mitigate the influence of the eunuch Huang Hao, whom Liu Shan trusted. Liu Shan ultimately relegated him to the task of book-keeping to reduce his interference in state affairs. After the fall of Shu, Dong Jue continued serving as an official in the Cao Wei state as a military adviser to the Chancellor of State and as a Regular Mounted Attendant.[영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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樊建[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한서진의 신하로 자는 장원(長元).

251년에 오에 사자로 갔다가 손권이 병이 깊어 번건을 만나지 못했는데, 손권이 제갈각에게 종예와 비교하면 어떻냐고 물어보자[1] 번건의 재주와 식견은 종예에 미치지 못하지만 고아한 성정은 그보다 낫다고 평했다. 그 뒤 상서령 동궐이 보국대장군으로 임명되자 동궐의 후임으로 수상서령이 되면서 시중에 임명된다.

262년에 제갈첨, 동궐과 함께 강유의 직위를 염우로 대체하려고 건의했지만 유선에게 거부되었으며, 황호의 농단을 막지 못했지만 친하게 지내거나 왕래하지 않았다. 264년에 촉이 망하자 동궐과 함께 경도로 와서 상국참군이 되었으며 가을에는 산기상시를 겸한다.

사마염의 대에 급사중이 되었다가 사마염이 어느 날은 번건에게 제갈량이 나라를 다스리던 일을 물었다. 번건이 호의적으로 표현하자 사마염은 나도 그런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이때 번건이 머리를 조아리며 등애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좋은 신하가 있어도 제대로 쓸 수 있겠냐면서 패기로운 대답을 하자 사마염이 웃으면서 조령을 내려 등애의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2] 자신의 옛 조국을 멸망시킨 등애의 복권을 추진했다는 점이 이채로운데 그가 타국 출신이기에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등애의 무고함을 알고도 말을 못하던 위 출신 관료들보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는 마대가 호로곡 전투 때 위연이 대피하지 못하고 죽을 뻔한 책임을 물어서 처벌을 받은 뒤 제갈량의 명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마대에게 사실 호로곡 전투 때 위연을 몰래 죽이려 했던 제갈량의 속사정을 설명해준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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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건(樊建, ? ~ ?)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신하이며, 자는 장원(長元)이다.

생애

촉한의 신하로서의 행적

황호(黃皓)가 정사를 농단할 때 유일하게 황호와 왕래하지 않았다고 한다. 251년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제갈각(諸葛恪)은 고아(高雅)한 성품이 종예(宗預)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261년 강유(姜維)가 과도한 원정으로 나라를 피폐하게 하는 것을 우려하여 제갈첨(諸葛瞻), 동궐(董厥)과 함께 염우(閻宇)로 하여금 강유를 대신하게 할 것을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촉나라가 멸망한 후, 위나라에 의해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264년 유선(劉禪)을 따라 낙양으로 와서 상국(相國)을 보좌하는 참군(參軍)이 되었고, 산기상시(散騎常侍)를 겸하였다.

서진의 신하로서의 행적

273년 의랑(議郞) 단작(段灼)이 사마염에게 상소를 올려 등애(鄧艾)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거론하며 등애를 신원하고 그 후손들을 등용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경우 아버지 사마소가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마염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번건은 급사중(給事中)이었는데, 사마염이 번건에게 제갈량(諸葛亮)이 촉나라를 다스린 일을 전해 듣고 탄복하면서 제걀량과 같은 사람을 신하로 삼길 원하였다. 번건은 사마염에게 “등애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는데, 제갈량 같은 사람을 얻었다고 해도 어찌 제대로 기용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사마염은 번건이 자신을 일깨웠다고 칭찬하고 등애의 맏손자 등랑(鄧郞)을 낭중(郞中)에 임명하였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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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Jian (fl. 250s–263), courtesy name Changyuan, was a Chinese politician of the state of Shu Han in the late Three Kingdoms period. He served briefly in the state of Cao Wei after the fall of Shu in 263.

Life[edit]

Fan Jian was from Yiyang Commandery (義陽郡), which is around present-day Zaoyang, Hubei. He served as an official in the state of Shu Han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he highest positions he reached in the Shu government were Palace Attendant (侍中) and Prefect of the Masters of Writing (尚書令). Along with Zhuge Zhan and Dong Jue, Fan Jian was one of the leading figures in the Shu government in the 250s and 260s. Despite his best efforts, he was unable to curb the negative influence of Huang Hao, an imperial eunuch highly favoured by the Shu emperor Liu Shan. After the fall of Shu in 263, Fan Jian served under Shu's rival state Cao Wei and travelled to the Wei imperial capital, Luoyang. He first served as an Army Adviser to the Chancellor of State (相國參軍) and was subsequently given the additional appointment of a Regular Mounted Attendant (散騎常侍). The Wei government sent him back to the former Shu territories to comfort the people. He was later promoted to the position of an Official Who Concurrently Serves in the Palace (給事中).[영어위키]

 

[정보] 책 - 정사 삼국지: 촉서(양장본 HardCover):진수 지음 |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