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夫人
(?~252년)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여성. 손권의 황후, 손량의 어머니. 회계군 구장현 사람. 통칭은 반부인(潘夫人), 본명은 반숙(潘淑).[1]
사부인→서부인→보연사를 잇는 손권의 네 번째 정실인데, 보연사는 생전에는 황후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반부인만이 유일한 손권의 황후이다.
2. 생애
원래 죄를 지어 사형당한 하급 관리의 딸로 그녀도 연좌제로 언니와 함께 실 잣는 방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런 그녀를 보고 손권이 후궁으로 삼았다. 거기다가 결국 승은을 입어 용머리를 앞치마로 받는 태몽을 꾸고 손량을 낳았다.
그런데 250년에 이궁의 변에서 어부지리스럽게 아들 손량이 태자로 세워지자 그는 손권에게 언니를 출가시킬 것을 권해 손권이 허락해서 언니는 담소라는 사람한테 시집간다. 251년에 황후로 세워지나 천성이 악랄했던 반부인은 원술의 딸 원부인을 비롯해 다른 비빈들을 음해하였고 궁녀들에게도 아주 가혹해서 죽거나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며, 거기다가 손권이 위독해질 무렵에는 손홍을 시켜 여후가 섭정하던 일을 조사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궁내외에서 미움을 샀던지라 252년 2월에 후궁, 궁녀들이 반부인이 손권의 병간호에 지쳐 침대에 누운 틈에 들이닥쳐 목을 졸라 죽였으며, 이들은 반부인이 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으나 목졸린 흔적 때문에 결국 들통나 연좌제로 사형당한 자가 예닐곱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손권도 얼마 후에 사망하자 장릉에 합장되었다.
습유기에는 반부인에 대한 일화가 여럿 적혀있다.
-
반부인은 아버지의 죄에 연루되어 베짜는 곳에 보내졌는데 절세미녀라 베짜는 사람들이 신녀로 공경했다. 손권이 소식을 듣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는데 반부인은 고생으로 수척해진 모습이 그려졌는데 손권은 이를 보고 "수척한 모습이 이 정도인데 기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라고 반부인을 후궁으로 삼았다.
-
손권과 반부인이 소선대로 놀러갈 때마다 손권은 술에 취해 옥 항아리에 침을 뱉어 시녀가 누대 밑에 버렸더니 화제(火齊) 반지가 되었고 나무 가지에 걸고 그 이름을 따서 반지가 걸린 석류나무 누대라는 의미로 환류대라고 했다가 유씨와 천하를 다투고 있으니, 유씨에게 돌려준다는 뜻으로 명칭이 불길하다는 상소가 올라와 류환대(榴環臺)라 고쳤다.
-
손권이 반부인과 같이 누대에서 낚시를 하다가 대어를 낚아서 좋아하자 반부인이 읍어(泣魚) 일화를 들어 지금 기분이 좋으면 뒤에 근심할 날이 온다고 말했다. 과연 손권 말년에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떠나버리자 사람들은 반부인이 신기가 있다고 수군댔고 손권은 반부인을 쫓아냈다.
3. 이름 논란
3.1. 반근숙 설
사고전서 문진각(文津阁) 판본 건강실록 태원 2년조에는 '황후 반씨가 내궁에서 갑자기 죽었다'라고 나오고 바로 뒤에 이런 기록이 있다.
后謹淑, 會稽句章人.
황후는 근숙(謹淑)이며, 회계군 구장현 사람이다.
건강실록에서는 사람이 죽은 기사 뒤에 그 사람에 대한 전기를 덧붙이는데 실제 여기 있는 회계군 구장현 출신이라는 기록은 삼국지 등의 다른 사서의 반황후의 사적과 같으므로 이 부분은 반황후에 대한 기록이다.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황후는 삼가고 맑으며, 회계군 구장현 사람이다."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면 근숙은 반부인의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보연사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后諱練師, 臨淮淮陰人也.
황후의 휘는 연사이며, 임회군 회음현 사람이다.
와 매우 비슷한 문장 구조를 띠고 있다. 이처럼 대치 문장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위 구절은 '諱'가 실수로 빠진 것으로 보이며, "황후(의 휘)는 근숙이며 회계군 구장현 사람이다."로 해석된다. 반부인의 이름을 '근숙'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며 더구나 기사 내용을 보면 반황후의 성품은 결코 삼가고 맑다고는 할 수가 없으므로 내용 면에서도 근숙을 반부인의 이름이 아닌 성품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에는 어색하다.
그러나 문연각 판본 건강실록이 발견되자 근숙은 판본 오기로 밝혀졌고 반근숙 설은 사장되었다.
3.2. 반숙 설
문진각 판본 건강실록과는 달리 사고전서 문연각(文淵閣) 판본 건강실록에서는 "황후의 휘는 숙이며, 회계군 구장현 사람이다.(后諱淑,會稽句章人。)"라고 근(謹)이 휘(諱)로 수정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보연사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문장과 구조가 동일해진다. 아무래도 문진각 판본 건강실록에서는 근(謹)과 휘(諱)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 적힌 듯하며 반부인의 본명은 반숙(潘淑)이 된다.
기존 문진각 판본 건강실록의 문장에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외국의 위키위키 등지에서는 반근숙이 아닌 반부인이 문서명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문연각 판본이 발견되자 바이두 백과, 중국 위키피디아, 일본 위키피디아 등 모두 반숙으로 문서명이 정정되었다.[namu.wiki/w/반부인 나무위키 에서 발췌]
[정보]책-
저자 진수 | 역자 김원중 | 휴머니스트 | 2018.3.5
'♣ 역사(歷史) 마당 ♣ > < 중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시대 이전 혼란기(후한 말)-원소 부자 휘하에 있으면서 절의를 지켜 조조에게 출사하지 않은 인물]한형(韓珩) (0) | 2021.01.20 |
---|---|
[삼국시대(동오)-하인에게 살해된 손견의 셋째 아들]손익(孫翊) (0) | 2021.01.18 |
[삼국시대(동오)-손권의 총신 "여일"에게 고발당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시의(是儀 (0) | 2021.01.16 |
[삼국시대(동오)손권의 총애를 남용하다 결국 처형당한 인물]여일(呂壹) (0) | 2021.01.15 |
[삼국시대(동오)-반란군 진압에 탁월한 공을 세운 인물] 하제(賀齊) (0) | 2021.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