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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조위)-위문제 사마염의 외할아버지]왕숙(王肅)

Bawoo 2021. 1. 26. 06:57

왕숙(王肅, 195년 ~ 256년)은 중국 삼국시대 (魏)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작위는 난릉후. 는 자옹(子雍). 본관은 동해군 담현이나, 회계(會稽:현재의 저장성)에서 출생하였다. 왕랑(王朗)의 아들이다. 그의 딸인 왕원희사마소(司馬昭)에게 시집가서 (晋)의 무제 사마염(武帝 司馬炎)을 낳았다. 

 

생애

아버지 왕랑이 회계태수를 지냈기에,[1] 왕숙은 그 무렵에 아버지의 임지인 회계에서 태어났다.[2]

왕숙은 관리로서 때때로 상소하여 시사(時事) · 제도(制度)에 대한 견해를 진술하고 정치활동을 행하였으며, 중령장군(中領將軍), 산기상시(散騎常侍-천자에 봉사하는 중요한 고문관)가 되었다. 황초 7년(226년), 조예가 즉위하면서 난릉후에 봉해졌다. 태화 4년(230년)에는 조진촉한을 치려는 것에 반대했다.[1]

사상[편집]

당시 학계의 일부에는 양웅(楊雄)의 반신비주의(反神秘主義)를 계승하는 경향이 있었거니와 왕숙도 그 영향을 받아 18세에 송충에게서 《태현경(太玄經)》을 배우고 그 주석서를 지었다.[1] 사상적으로는 가규(賈逵, 30-101), 마융(馬融, 79-166)의 현실주의적 해석을 좋아했고, 정현의 참위설에 의거한 논리주의적 통일해석을 피했다. 많은 경서에 주석하여 신비적인 색채를 실용적인 해석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특히 정현의 예학체계(禮學體系)에 반대하여 《성증론》을 저술하였다. 다만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위작하여 자신의 비판의 근거로 삼은 것은 도리어 정현의 학설의 강력하고 확고함을 증명한 것이 되었다. 이 정(鄭)·왕(王) 양 학의 논쟁은 6조(六朝)를 통하여 학술계에 있어 남북의 대립을 야기시켰다.

가족 관계

관련 인물

왕랑 (부), 왕원희(문명황후 왕씨) (딸), 왕개(아들)

각주

  1. 이동: 가 진수: 《삼국지》 권13 종요화흠왕랑전
    중국어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삼국지 종요화흠왕랑전
  2. 배송지: 《삼국지》 권13 종요화흠왕랑전의 주 - 肅父朗與許靖書云:肅生於會稽。[위키백과]

[참고]정사 삼국지 위서에는 아버지 왕랑 편에 같이 나오고 사마소의 부인이 된 딸, 사마염의 부인이 된 외손녀 이야기는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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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삼국시대 나라의 인물. 자는 자옹(子雍). 동해 담(郯, 지금의 절강성 승현 부근) 사람. 위의 중신인 왕랑의 아들, 왕원희, 왕순, 왕건, 왕개의 아버지.

조진사마의가 230년에 촉을 공격할 때 시세 부득함을 주장하며 군세를 물리도록 주장하기도 했고, 255년 관구검문흠의 반란 때는 사마사가 그들을 토벌하기 전에 특별히 왕숙과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 뒤 사마소의 권세를 확립하기 위해 조모에게 조서를 내릴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후에 딸인 왕원희가 사마소의 아내가 되었기에 더욱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중령군에 임명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으며, 중병에 걸리자 의사들이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부인이 유언을 물어보자 왕숙은 주건평이 자신을 위해 관상을 보았는데, 70은 살 수 있고 관직은 삼공에 이른다고 했지만 모두 실현되지 않았으니,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냐고 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태위(太尉)[1]의 직책에 올라 주로 사마사와 사마소를 군사적으로 조언하는 역할이지만, 실제로는 집안 전통대로 뼛속까지 경학가여서 많은 경전에 주를 달은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정현의 학설에 반대해 '상서','시경'등에 주석을 달아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의 책을 자신의 주장에 유리하게 위조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는데, 경서의 위조라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닌 만큼 어쨌건 재능은 있는 사람이었다. 그 행동의 가부가 어쨌든.[2] 그의 학문은 사마씨의 비호를 받아 조위부터 서진까지 성행하였으나 동진 시기에 쇠퇴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일주서를 쓴 공조(孔晁)가 있다.

 

[1] 태위란 사공, 사도와 함께 최고위 관직인 3공의 하나로 군사적 명예직이라 할 수 있는데, 연의에서는 삼공 중 태위만 못해먹은 왕랑도 태위로 설정하고 그 아들인 왕숙도 태위로 세우고 있다. 다소 의도적인 장치.

[2] 날조의 정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다소의 개찬일 뿐인데 후에 완전 날조라고 했다는 설도 있고, 당시의 주류라 할 수 있었던 정현학파와 다른 각도로 접한 것을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나무위키에서 발췌]

 

[정보]책-정사 삼국지: 촉서(양장본 HardCover)시리즈

저자 진수 | 역자 김원중 | 휴머니스트 | 20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