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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가의 창시자]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Bawoo 2021. 2. 13. 21:45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1744년 2월 23일 ~ 1812년 9월 19일)는 독일의 유태인 은행가이다. 오늘날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를 만들었다. 2016년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 현재 로스차일드가의 재산은 베일 속에 감춰져 있으며 제대로 된 접근 자체도 불가능하지만,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빈은 로스차일드가의 재산을 약 50조달러(약 6경원, 6만조원)로 추정했다.

제2차대전 당시, 히틀러 총리 겸 대통령은 유태인을 대량학살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는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직접 사용하는 것 조차 모든 언론에서 금기시되며, 단지 유태인이라고만 부를 수 있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금융시장을 모두 로스차일드가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막대한 부로 세 나라의 정치인, 귀족들을 연회에 초청하거나 제외하는 방식으로 큰 굴욕감을 주어, 귀족들의 존경과 동시에, 반감이 상당했다.[1] 제1차대전 당시에는 영국에 사는 로스차일드가의 후손이 영국 정부를 크게 도와주어 독일의 침략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제1차대전의 패배로 독일정부는 막대한 전후 손해배상금의 부채를 지게 되어, 전쟁의 패인과 관련해, 로스차일드가에 대한 더욱 큰 분노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독립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의 고손자인 베이론 로스차일드는 고조부로 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부로 제1차대전 당시 군자금이 부족한 영국 정부로 부터 밸푸어 선언 (1917년)을 받아내어, 이스라엘의 독립을 돈을 주고 샀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이의 이름을 로스차일드라 짓고 있으며, 이스라엘 곳곳에 ‘로스차일드 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2]

 

각주

  1.  니얼 퍼거슨, 로스차일드 1 (돈의 예언자 1798~1848, 전설의 금융 가문), 윤영애 역, 21세기북스, 2013

  2.  [명문가의 경영학] 로스차일드家 ‘거주 국가에 충성’ 제1원칙… 품위를 갖춘 부와 권력, 이투데이, 2015.01.19.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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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라고 한다. 19세기 유럽의 산업화 과정을 지배했던 국제적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Rothschild family)를 일으킨 인물이다. 구틀 쉬나퍼(Gutle Schnapper)와 결혼해 암셸 마이어 폰 로트실트, 잘로몬 마이어 폰 로트실트, 나탄 마이어 폰 로트실트, 카를 마이어 폰 로트실트, 야콥 마이어 폰 로트실트 등의 다섯 아들과 다섯 딸을 두었다.

1744년 2월 23일 신성로마제국 자유도시이던 프랑크푸르트의 게토(ghetto ;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유대계 상인인 암셸 모제스(Amschel Moses Rothschild)의 8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쇤셰 레히니흐(Schönche Lechnich)이다. 이들은 붉은 문패가 달린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독일어로 ‘붉은 방패(문패)’를 뜻하는 ‘로트실트(Rothschild)’를 가문의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마이어의 아버지는 독실한 유대교도였으므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어렸을 때 퓌르트(Fürth)에 있는 랍비 양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1755년과 1756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잇달아 죽자 학교를 그만두고, 친척의 소개로 하노버 선제후국의 궁정유대인(Court Jew) 밑에서 일을 하며 금융업을 배웠다.

1764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게토에서 환전상의 일을 시작한 마이어는 당시 헤센카젤(Hessen-Kassel) 공작의 후계자였던 빌헬름 9세(Wilhelm Ⅸ)와 거래를 하게 되면서 그의 신임을 얻었고, 1769년에는 하나우(Hanau) 궁의 궁정유대인이 되었다. 당시 헤센카젤 공국은 영국에 용병을 보내 큰 수익을 얻었으며, 프랑크푸르트도 영국 공산품들의 집산지로 번성했다. 마이어는 공국이 영국에게서 받은 상업어음을 현금으로 환전해주고, 영국의 면직물 등을 들여와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렸다. 1785년 빌헬름 9세가 공국을 계승하고, 마이어의 첫째아들인 암셸과 둘째아들인 잘로몬이 빌헬름 9세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사업의 규모가 점차 커졌다. 1789년 마이어는 헤센카젤 공국의 정식 금융업자로 지명되어 대외 신용과 대부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빌헬름 9세의 후원으로 성장해가던 마이어 일가는 1792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과 1803년에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 과정에서 빌헬름 9세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세력을 확대해갔다. 프랑스 혁명전쟁으로 유통이 어려워지면서 대륙에서는 영국의 면제품 가격이 폭등했는데, 마이어는 1798년 셋째아들 나탄을 영국 맨체스터로 보내 면제품을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구입해 대륙으로 들여와 유럽 각지에서 팔았다. 나탄은 1804년에는 런던에서 상업어음을 발행하는 금융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마이어 일가의 활동이 금융업을 중심으로 전환되고, 사업 규모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이 헤센을 침공해 빌헬름 9세가 국외로 망명하자 마이어 일가는 그의 비밀 재산관리인이 되었다. 마이어와 그의 아들들은 프랑스군의 감시를 피해 각지를 돌면서 빌헬름 9세의 채권을 회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사업을 벌여 큰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베를린칙령(대륙봉쇄령)으로 유럽 전역의 물자가 부족해지자 자신들의 정보망과 유통망을 이용해 영국의 면제품 등을 밀수해 팔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마이어는 181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들들과 함께 ‘마이어 암셸 로트실트 부자회사(M. A. Rothschild & Söhne)’를 설립했다. 1812년 9월 19일에 사망했는데, 죽기 전에 형제들의 ‘협력(concordia)’을 강조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마이어가 죽은 뒤에 프랑크푸르트의 사업은 맏아들인 암셸 마이어가 이었으며, 둘째아들인 잘로몬은 1819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해 그곳에 은행을 설립했다. 그리고 넷째아들인 카를은 1821년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인 나폴리로 진출했다. 마이어의 다섯 아들은 1822년에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2세(Franz II)에게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참조항목

로스차일드 가국제적 금융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유대계 금융재벌 가문이다. 로스차일드는 독일어 로트실트(Rothschild)의 영어식 발음으로 프랑스어로는 로쉴드라고 읽는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주요 국가들의 공채 발행과 왕가·귀족들의 자산 관리를 맡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철도와 석유산업의 발달을 주도하며 유럽의 정치와 경제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m.doopedia.co.kr/publish_m/_ui/images2/doopedia/common/img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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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er Amschel RothschildBornDiedKnown forSpouse(s)ChildrenParent(s)

 

Mayer Amschel Rothschild (23 February 1744 – 19 September 1812; also spelled Anschel)German Jewish banker and the founder of the Rothschild banking dynasty.[1] Referred to as a "founding father of international finance," Rothschild was ranked seventh on the Forbes magazine list of "The Twenty Most Influential Businessmen of All Time" in 2005.

Rothschild family home in the Frankfurter Judengasse.

Early life

Mayer[3] Amschel Rothschild was born in 1744 in the Judengasse, the Jewish ghetto of Frankfurt am MainHoly Roman Empire, one of eight children of Amschel Moses Rothschild (d. 1755) and his wife Schönche Rothschild (née Lechnich, d. 1756).[4][5]

The ancestry of the Rothschilds can be traced back to 1577 to Izaak Elchanan Rothschild (Isaac (Isaak) Elchanan Bacharach, zum Hahn), whose name is derived from the German zum rothen Schild (with the old spelling "th"), meaning "with the red shield", in reference to the house where the family lived for many generations. (At the time, houses were designated by signs with different symbols or colors, not numbers.) The name Rothschild in the Yiddish language means Red Coat, in reference to a heraldic coat of arms. His grandchildren and descendants took this name as the family name and kept it when they relocated in 1664 to another house in the Judengasse—Hinterpfann ("[house in] the back of the saucepan")[6]—which became the family's home and place of business through to the early 19th century.

Amschel's father had a business in goods-trading and currency exchange. He was a personal supplier of coins to the Prince of Hesse. The family home above the shop had a front wall 11 feet (3.4 m) wide, where more than 30 people lived at that time.

 

Business career

 

With the help of relatives, Rothschild secured an apprenticeship under Jacob Wolf Oppenheimer, at the banking firm of Simon Wolf Oppenheimer in Hanover, in 1757.[7] The grandson of Samuel Oppenheimer taught Rothschild useful knowledge in foreign trade and currency exchange, before he returned to his brothers' business in Frankfurt in 1763.[8] He became a dealer in rare coins and won the patronage of Crown Prince Wilhelm of Hesse (who had also earlier patronised his father), gaining the title of "Court Factor" in 1769.[9] Rothschild's coin business grew to include a number of princely patrons, and then expanded through the provision of banking services to Crown Prince Wilhelm, who became Wilhelm IX, Landgrave of Hesse-Kassel in 1785. Business expanded rapidly following the French Revolution when Rothschild handled payments from Britain for the hire of Hessian mercenaries.

By the early years of the 19th century, Rothschild had consolidated his position as principal international banker to Wilhelm IX and began to issue his own international loans, borrowing capital from the Landgrave.

In 1806, Napoleon invaded Hesse in response to Wilhelm's support for Prussia. The Landgrave went into exile in the Duchy of Holstein, but Rothschild was able to continue as his banker, investing funds in London. He also profited from importing goods in circumvention of Napoleon's continental blockade.[10]

Rothschild dynasty

In 1798, third-born son Nathan Mayer Rothschild was sent to England to further the family interests in textile importing with £20,000 capital (equivalent of £2.1 million in 2020)—the first foreign branch. Nathan became a naturalized citizen in 1804 and established a bank in the City of London. In 1810, Mayer entered into a formal partnership agreement with his three eldest sons. The youngest son Jacob was sent to Paris in 1811, enhancing the family's ability to operate across Europe. This enabled them to profit from the opportunity of financing Wellington's armies in Portugal, requiring the sourcing of large quantities of gold on behalf of the British government.

Rothschild died on 19 September 1812 in Frankfurt am Main. He was buried at the old Jewish cemetery in Frankfurt, located next to the Judengasse. His grave still exists. A park was named after him, and also a street (Rothschildallee). In 1817 he was posthumously ennobled by the emperor Francis I of Austria.[10] His descendants furthered the family fortune across Europe—the "five arrows" of banking. Eldest son Amschel Mayer took over the Frankfurt bank and Salomon moved to Vienna. Nathan turned the London branch into one of Europe's most powerful banking institutions (N. M. Rothschild & Sons), Calmann (gentrified to "Carl") set up a branch in Naples and Jacob ("James") opened de Rothschild Frères, becoming a giant of finance in Paris.

Family

See also: Genealogy of the Rothschild family

Grave stone of Mayer Amschel Rothschild

 

His name as it appears on the stone was Moses Mayer, son of Amschel, and he apparently added the Amschel, as in later generations.]

[정보] 책-화폐전쟁. 2(개정판)시리즈

저자 쑹훙빙 | 역자 홍순도 | 알에이치코리아 | 20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