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나의 베트남에 대한 역사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한때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베트남에 관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도 꽤 많이 나왔었다. 그러나 베트남 작가가 직접 쓴 문학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베트남어 전공자 부족에 따른 번역의 어려움이나 출판사의 수익성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전쟁의 슬픔(아시아 문학선 1),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이란 작품을 접했었다. 이후론 베트남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위 작품보다 먼저 단편집이 나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도.
베트남은 우리나라하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랜 기간 외세에 의해 고통을 당한 나라다. 따라서 국민들의 고통도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고통을 종전 후 한 가족이 겪는 가난의 비극을 통해 나타냈다. 한 소녀가 화자가 되어 독백식으로 전개되는 내용인데, 우리나라의 1960년대까지 있었던 보릿고개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메콩강의 벌판에서 집도 없이-부인이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하자 홧김에 불을 지른 설정이나 집이랄 것도 없는 오두막인 것 같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인 것으로 묘사됐으니까- 남매를 데리고 거룻배 한 척에 의지하여 오리를 키우며 살아간다. 화자는 이 남매 중 누나이다. 세 식구는 여기저기 떠돌다가 길에서 폭행당하는 한 여인을 구해주는데 몸을 파는 일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어쨌든 세 식구와 여인은 같이 생활을 하는데 소녀의 아버지 생활 방식에 환멸을 느낀 여인이 떠나고 이 여인에 의지하던 남동생도 뒤따라 가출해버린다. 이제 남은 건 소녀와 아버지 둘뿐. 삶 자체에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하는 설정인 소녀의 아버지-어디 소녀의 아버지뿐이겠는가. 전쟁이 끝났으니 총 맞아 죽을 일은 없어졌지만,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매달려야 하는 죽지 못해 사는 삶일 테니-는 소녀와 둘만 남게 되자 비로소 소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야말로 관심 정도여서 그 전에 워낙 무심했던 거에 비해 달라진 정도인데도 소녀는 기뻐한다. 그러나 소녀가 낯선 동네에서 불량배 세 명에게 강제로 당하는데 소녀는 임신을 걱정하면서도 만약에 아이가 생기면 잘 키우겠다고 혼자만의 다짐을 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이게 그런데도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암시하는 장면인 건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워낙 비극적이어서 마음만 아플 뿐이다.
[덧붙임] 우리나라도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봄만 되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소녀들이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불량배들에게 꼬임을 당해 사창가로 빠지게 되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됐었다. 그만큼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보릿고개가 사라진 건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통일벼 등 벼 품종 개량과 비료·농약의 공급확대 등으로 식량 증산에 힘써 식량의 자급자족을 도모하여 농민의 소득증대와 생활환경 개선이 진전되면서였다. 이후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시골의 젊은 남녀가 공장으로 몰려들게 되자 저임으로 혹사당하는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소재로한 문학 작품들이 많이 나왔었다. 그러나 이 베트남 작품은 우리 못살던 시절의 비참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76년생인 작가가 서른 살 때인 2005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건 2007년. 베트남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게 1975년이니 작가는 이때 고작 두 살이이어서 베트남은 이후로도 한참 가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이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들이 우리나라의 결혼 못 한 농촌 노총각한테 시집온 일일 것이다. 베트남도 1986년 도이 머이 정책-공산주의 기반의 혼합 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창한 개혁 개방 정책-을 도입한 이래로 많이 공업화되었으니 작가가 소재로 한 내용의 비극적인 시대는 끝난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하고.
응웬옥뜨
1976년 베트남 남부 까마우 성에서 태어났다. 집이 가난하여 청소년기를 집안일과 농사, 채소 장사 등을 하며 보냈고, 학업은 10학년까지 마쳤다. 1996년부터 창작을 시작해, 2000년에 단편 소설 『꺼지지 않는 등불』로 호치민시 작가협회가 주체한 '제2회 스무 살 문학 창작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출간한 작품마다 문단과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향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2005년 발간한 소설집 『끝없는 벌판』이 이틀 만에 초판 5천 권이 매진되면서 베트남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국립베트남영화사에서 『끝없는 벌판』을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2006년 『끝없는 벌판』으로 권위 있는 베트남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받았다. 현재 『까마우 반도』잡지의 문학전문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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