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내가 지금 무슨 책을 읽은 거지? 분명 유명 코미디언의 자전성 글이라는 거에 끌린 건 아니었다.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로 유명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고 흑백 혼혈이라기에 참 많은 사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 악명 높은 남아공의 흑역사. 내용은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드문드문 나오는 내용에서 조금씩 파악이 됐을 정도. 내용 전체는 작가 본인의 그리 자랑거리가 될 게 없는 가족사- 어머니가 원해서 백인 사이에 났고 어머니는 재혼한 남자에게 살해당할 뻔한 총상까지 입는다-가 주를 이루는데 쉽게 읽히면서 촌철살인 문장들도 가끔 있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들여 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일까 하는 점에선 의문점이 남는다. 성공한 코미디언이라고 하지만 1984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37세, 아들뻘 아닌가? 그런 인물의 자전성 글을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70이 넘은 나이에 굳이 다 읽을 필요가 뭐 있나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끝까지 읽어내게 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남아공의 흑역사를 좀 더 깊이 알았으면 했는데 그런 내용이 기대만큼은 안 됐다는 아쉬움은 책장을 덮으면서도 두고두고 남는다. 그래도 나처럼 세상 다 살아가는 나이가 아닌 세대라면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아픈 가족사인데도 재미있게(?) 잘 읽히니까.^^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코미디언이자 미국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의 자전적 에세이『태어난 게 범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 남아공에서 인종 간 성관계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범죄 행위였다. 코사족 흑인 어머니와 스위스인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트레버 노아는 부모의 범죄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태어난 게 범죄였던 트레버 노아의 어린 시절은 가난한 생활과 계부의 학대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때로는 매를 들고, 때로는 무한한 긍정의 힘으로, 묵묵히 아들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트레버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찾았다. 누군가의 물건을 빼앗는 대신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기로 했다. 코미디언으로서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을 때, 트레버는 한 통의 연락을 받는다. 계부가 엄마의 머리에 총을 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트레버 노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시작부터 꼬여 버린 삶이었다. 항상 아웃사이더였고, 가난과 폭력은 일상이었다. 불법 CD를 제작해 팔고 장물을 거래하기도 했다. 계부는 학대를 일삼았고, 결국 엄마의 머리에 총을 쐈다. 하지만 트레버는 비통에 빠지지 않았다. 엄마의 가르침이 그랬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엄마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트레버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트레버의 삶도 아픔과 웃음이 공존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트레버 노아의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웃음이 마지막에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 : 트레버 노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인종 간 성관계를 법으로 금지했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출생은 그 자체로 범죄를 증명하는 증거였다.
열여덟 살에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먼(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 등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불과 3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풍자 뉴스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의 새로운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에미상(Primetime Emmy Award)과 피보디상(Peabody Award)을 수상한 바 있는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로서 그의 촌철살인은 미국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 다른 활동 무대인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비속어와 성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삼가면서도 관중을 압도하는 탁월한 언변을 자랑한다.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이다.
목차
1부
에피소드 1 - 뛰어!
에피소드 2 - 태어난 게 범죄
에피소드 3 - 기도하렴, 트레버
에피소드 4 - 카멜레온
에피소드 5 - 둘째 딸
에피소드 6 - 허점
에피소드 7 - 푸피
에피소드 8 - 로버트
2부
에피소드 9 - 뽕나무
에피소드 10 - 한 애송이의 길고, 어색하고, 때로는 비극적이고, 대개는 부끄러운 연애 수업 - 1막 밸런타인데이
에피소드 11 - 아웃사이더
에피소드 12 - 한 애송이의 길고, 어색하고, 때로는 비극적이고, 대개는 부끄러운 연애 수업 - 2막 짝사랑
에피소드 13 - 색맹
에피소드 14 - 한 애송이의 길고, 어색하고, 때로는 비극적이고, 대개는 부끄러운 연애 수업 - 3막 댄스파티
3부
에피소드 15 - 고 히틀러!
에피소드 16 - 치즈 보이
에피소드 17 - 세상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에피소드 18 - 엄마의 인생
감사의 말
책 속으로
엄마와 아들의 추격전
훨씬 어렸을 때에는 쉽게 잡혔던 내가 나이가 들어 점점 빨라져 속도로는 이길 수 없게 되자, 엄마는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도망치려는 태세를 취하려는 순간 ‘도둑이야! 거기 서!’ 하고 소리치는 거다. 자기 자식한테 대고 말이다. 이 나라에서는 웬만하면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지만, 인민재판으로 일이 번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두의 관심이 거기에 쏠린다. 그래서 엄마가 ‘도둑이야!’라고 외치면 길 가던 사람들조차 죄다 나를 잡으러 덤볐고, 나는 그들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도망가면서 소리쳐야 했다. “난 도둑이 아녜요! 저 여자 아들이라고요!” _본문 25쪽
엄마는 겁이 없어
폭동이 발발할 때마다 우리 이웃들은 모두 현명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숨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불길 사이를 지나가면서 폭도들을 향해 눈으로 말했다. ‘나 지나갈 거야. 난 이 개판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위험 앞에서도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난 그게 항상 놀라웠다. 현관 앞에서 전쟁이 벌어진대도 상관없었다. 엄마에게는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이 있을 뿐이었다. 차가 고장 났어도 교회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고집 부릴 때와 똑같았다. 에덴 파크의 도로마다 타이어가 불타고 수백 명의 폭도가 돌아다닐 때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옷 입어. 난 일하러 가고, 넌 학교 가야지.” _본문 27~28쪽
폭력 앞의 동물적 본능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뭘 해야 하는지 나는 그냥 알았다. 항상 폭력이 잠복해 있고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며 몸에 밴 동물적 본능이랄까. 흑인 거주구에서,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이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대동하고 등장하면 나는 알았다. ‘숨을 곳을 찾아 뛰어야 한다. 뛰어서 숨어야 한다.’ 다섯 살짜리지만 알았다. 다른 삶을 살았다면, 달리는 미니버스에서 내던져져서 당황했을지 모른다. 멍청이처럼 멀뚱히 서서 ‘무슨 일이에요, 엄마? 왜 내 다리가 이렇게 아프죠?’라고 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가 ‘뛰어’라고 했으니 나는 뛰었다. 사자로부터 도망치는 가젤처럼 나는 뛰었다. _본문 32~33쪽
금지된 사랑, 금지된 구역
그러나 인간에게 섹스는 금지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네덜란드 선박이 맨 처음 테이블만에 정박한 때로부터 9개월이 지나자 바로 혼혈 아이가 태어났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식민지 개척자들도, 식민지 개척자들이 대개 그렇듯, 원주민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검은 피가 단 한 방울만 섞여도 자동적으로 흑인이 되는 미국에서와는 달리, 남아공에서 혼혈인은 흑인도 백인도 아닌 고유의 별도 그룹, ‘유색인’으로 분류됐다. 유색인, 흑인, 백인과 인도인이 인종별로 각각 정부에 등록됐고, 이 분류에 따라 수백만의 사람들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 이주해야 했다. 인도인 지역은 유색인 지역과 분리되었고, 유색인 지역은 흑인 지역과 분리되었으며, 이들 지역 모두가 백인 지역으로부터, 또 각자로부터 중간에 완충 지대를 두고 격리되었다. 유럽인들과 원주민 간의 섹스를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고, 이는 후에 백인과 모든 비(非)백인 간의 섹스를 금지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_본문 40쪽반역자, 타이피스트가 되다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흑인 남자는 농장이나 공장 아니면 광산에서 일했다. 흑인 여자는 공장에 다니거나 하녀 일을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엄마는 공장에 다니는 게 싫었다. 요리 실력도 형편없었고 백인 아가씨가 온종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기로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에는 없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비서가 되기로 마음먹고 타이핑 강좌를 들은 것이다. 당시 타이핑 칠 줄 아는 흑인 여자란 운전할 줄 아는 맹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꿈은 가상하지만 사실 그 일을 실제 수행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법에 따라 화이트칼라 직종과 숙련직은 백인들에게만 허용됐다. 흑인은 사무실에서 일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는 반역자였고,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반란은 타이밍을 잘 맞췄다. _본문 41~42쪽난 당신의 정자만 있으면 돼나는 우리 부모 사이에 뭔가 순수한 유대감과 사랑이 존재했음을 안다. 내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얼마나 로맨틱했는지, 혹은 그냥 친구 관계였던 건지, 그건 모르겠다. 아이들이 묻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아는 건 어느 날 엄마가 청혼했다는 사실이다.“나 아이를 갖고 싶어.” 엄마가 그에게 말했다.“난 아이를 원하지 않아.” 그가 말했다.“당신에게 아이를 갖자고 하는 게 아냐. 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날 도와 달라는 거야. 나는 그냥 당신의 정자만 있으면 돼.”“당신도 알겠지만,” 엄마가 대답했다. “난 그냥 당신과 자고 어디론가 떠나서 당신에게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해 버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걸 원하진 않아. 내 맘이 편해질 수 있게 당신의 동의가 필요한 거야. 나는 내 아이를 갖길 원하고, 당신으로부터 그 아이를 얻었으면 해. 원하면 언제든 아이를 볼 수 있지만 어떤 의무도 지지는 않게 될 거야. 아이와 대화할 필요도, 아이를 위해 돈을 낼 필요도 없어. 그냥 나를 위해 이 아이를 만들어 줘.” _본문 46쪽애 아빠는 누굽니까?나를 보고는 한동안 난감해하던 의사들이 입을 열었다. “흠, 애 피부가 되게 하얗군.” 분만실 안에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애 아빠는 누굽니까?” 그들이 물었다.“아빠는 스와질란드 사람이에요.” 엄마는 남아공 동쪽 내륙의 작은 왕국을 둘러댔다.아마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겠지만 해명거리가 필요한 그 의사들은 그냥 받아들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정부는 아이의 출생증명서에 인종, 부족, 국적, 모든 것을 기재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분류되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남아공에 사는 스와질란드 사람들의 반자치 거주 지역인 카응과네에서 태어났다고 거짓말했다. 그래서 내 출생증명서에는 내가 코사족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또 스위스인이라고도 적혀 있지 않다. 정부가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외국 태생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_본문 47~48쪽흑인 가족들 사이에서 백인으로 살기“피부가 흰 애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 모르겠거든. 흑인 아이를 때리는 법은 알아. 흑인 아이는 때려도 그대로 검은 색이야. 그런데 트레버를 네가 때리면 파래졌다가 녹색이었다가 노래졌다가 빨개지더구나. 그런 색은 난생처음 봤어. 내가 자칫 애를 때리다가 어디 부러뜨리지 않을지 걱정된다. 나는 백인을 죽이고 싶지 않아. 난 너무 두렵다. 그래서 쟤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실제로도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다.내 할머니는 나를 백인처럼 대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정도가 더 심했다. 그는 나를 “마스타”라고 불렀다. 나를 차에 태울 때도 운전기사가 주인 모시듯 했다. “마스타는 항상 뒷좌석에 타야 한다.” _본문 82쪽이름의 의미엄마는 과거를 흘려보냈을 뿐 아니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들의 어린 시절이 자신의 것과 닮아서는 안 됐다. 그건 내 이름을 짓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코사족이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는 항상 의미를 담는다. 그 이름의 의미대로 살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사촌의 이름 음렁기시는 ‘해결사’라는 의미다. 그 이름대로 됐다.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음렁기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항상 착한 아이였고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집안 여기저기를 돕고 다녔다. 내 삼촌 벨릴레는 예기치 못한 임신의 결과였다. 그 이름은 ‘난데없이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삼촌은 평생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술을 퍼마시러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도 일주일 뒤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_본문 104쪽
아웃사이더, 매점 소년이 되다
당시 내게 확실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여전히 학교에서 가장 빠른 아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내게 자존심이란 없다는 것이었다. 조회가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박쥐처럼 매점으로 달렸고 첫 번째로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줄 맨 앞에 섰다. 그 방면으로 워낙 명성이 자자했던 터라, 줄을 서고 있으면 아이들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야, 이것 좀 대신 사 줄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사실상 새치기나 다름없기에 내 뒤에 줄을 선 아이들의 화를 돋울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회 도중에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기, 나한테 10랜드가 있는데, 나 대신 음식을 사 주면 2랜드는 너한테 줄게.” 여기서 나는 배웠다. 시간이 돈이라는 걸. 내가 대신 뛰어 주기만 하면 애들이 음식 살 돈을 준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조회에 참석한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문만 해. 원하는 음식이 뭔지 알려 주고, 음식 값의 일정 비율만큼 따로 돈을 주면, 내가 원하는 음식을 사 줄 테니까.” _본문 205쪽
흑백 색맹
화면을 들여다보니 알 수 있었다. 테디의 피부는 어두웠다. 나는 밝은 올리브톤 피부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명암을 동시에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흑백 카메라로 흑인 옆에 선 나를 찍으면 카메라는 어째야 할 줄을 모른다. 결국 나를 하얗게 찍고 만다. 내 피부색은 그렇게 탈색돼 버린다. 이 영상에는 흑인 한 명과 백인 한 명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였다. 화질이 좋지 못해 내 얼굴 모양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출판사서평
★ 〈더 데일리 쇼〉 호스트 트레버 노아의 자전 에세이
★ 빌 게이츠가 《호모 데우스》 《힐빌리의 노래》와 함께 추천한 책
“트레버 노아의 언변에는 국경쯤은 가뿐히 넘을 수 있는 보편적 코미디가 담겨 있다.”
★ 소설가 김중혁 강력 추천
★ 《뉴욕타임스》 No. 1 베스트셀러
★ 《USA투데이》 《북리스트》, NPR 선정 올해의 책
★ 아마존 선정 2017년 가장 많이 읽은 논픽션 TOP 5
★ 〈블랙 팬서〉 히로인 루피타 뇽오 주연 영화 제작 확정
★ 넷플릭스 〈다크 공포증〉 〈그 엄마에 그 아들〉의 바탕이 된 실화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토크쇼 〈더 데일리 쇼〉의 호스트 트레버 노아의 자전적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부터 미국인들의 저녁을 책임지는 방송의 진행석에 앉기까지, 트레버 노아의 삶은 한 편의 지독한 농담이자 통쾌한 인생 역전극이다. 이 책은 트레버 노아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의 참상과 폭력, 학대의 민낯을 보여 준다. 동시에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과 용기로 뭉친 가족과, 자아를 찾아 가는 한 소년의 여정을 공유한다. 그 누구의 삶보다 슬픈, 하지만 그 누가 들려주는 것보다 웃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달리는 버스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트레버 노아는 아홉 살이었다. 어느 일요일 늦은 밤, 교회에서 집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납치당할 위험에 처하자 트레버의 엄마는 졸고 있던 아들을 버스 밖으로 냅다 던져 버리고 자신도 뒤따라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트레버는 당황하지 않았다. 팔이 온통 까지고 여기저기 찢긴 상처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있는 힘껏 뛰었다. 이는 ‘항상 폭력이 잠복해 있고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계에서 살며 몸에 밴 동물적 본능’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행되었던 인종 차별 정책이다. 호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 등, 전 세계 인종 차별 제도들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만든 인류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이었다. 트레버가 여섯 살 되던 해,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아직 어렸던 트레버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이유를 잘 몰랐다. 다만 지금까지도 확실히 기억하는 것,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은 그 뒤에 이어진 폭력 사태였다.
백인들이 물러가고 흑인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어느 쪽 흑인이냐는 문제가 남았다.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폭동이 일어나고, 다른 부족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졌다. 아이들은 등굣길에 새까맣게 탄 시체를, 하굣길엔 불타고 있는 이웃집을 봐야 했다. 뉴스가 전하는 하루 사망자 수는 10명에서 50명, 100명으로 늘어 갔다. 절도, 마약, 납치, 강간, 살인, 조직범죄 등 온갖 폭력이 난무했다. 거리는 불을 붙인 타이어로 봉쇄망이 쳐졌다. 그 불길이 얼마나 뜨거운지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븐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지옥에서 타이어를 태우는 것’ 같았다. 트레버 노아가 어린 시절을 보낸 80, 90년대의 남아공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태어난 게 범죄트레버 노아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완전히 폐지되기 10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흑인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과 감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경찰국가에서 혼혈, 즉 유색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체제에 대한 불응, 혹은 반역을 넘어서는 중범죄로 여겨졌다.당시 남아공은 ‘유럽인과 원주민 간의 불법적 성관계 및 그에 부수되는 행위’를 법률로 금지했다. 만약 이러한 행위를 하다 발각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 커플인 경우엔 남자에게 강간죄가 추가로 적용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트레버의 엄마는 아프리카 코사족 흑인이었다. 아빠는 독일계 스위스인 백인이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트레버는 그 자체로 부모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트레버가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난감해했다. 피부가 너무 하?다. 난감한 건 의사들만이 아니었다. 트레버와 함께 있을 때 아빠는 멀찍이 떨어져 걸어야 했다. 트레버가 자신을 부르며 쫓아오면 겁에 질려 도망쳐 버렸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트레버와 산책을 나가고 싶을 땐 이웃에 사는 유색인 여성을 불러내 엄마 행세를 부탁해야 했다. 진짜 엄마는 유색인 여성의 하녀 행세를 하며 트레버 곁에 있었다. 간혹 위험을 무릅쓰고 단둘이 걸을 때도 있었지만 경찰이 눈에 띄면 잡은 손을 뿌리치고 자기 자식을 무슨 대마초 봉지 대하듯 했다.카멜레온과 아웃사이더어린 시절 트레버 노아는 지독한 사고뭉치였다. 트레버에게 볼기짝 세례를 퍼부으려는 엄마와 엄마에게 붙잡히지 않으려는 트레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추격전을 벌였다. 엄마는 매질을 해서라도 트레버를 바른길로 이끌려 했다. 자신이 때리는 건 사랑의 매지만 경찰이 개입하는 순간 정말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트레버를 때리지 않았다. ‘백인’을 때린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트레버를 마스타(Mastah)라고 불렀다. ‘마스타’는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을 부르는 호칭이었다.유색인으로서 트레버의 삶은 마치 카멜레온 같았다. 친구와 함께 영업이 끝난 상점에서 술이 든 초콜릿을 훔쳐 먹다 걸렸을 때도 그랬다. CCTV에 찍힌 친구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명확하게 식별됐다. 반면 애매한 피부색을 구분하지 못했던 카메라는 화면 속 트레버를 완전한 백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경찰은 백인 공범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친구는 경찰에 체포됐고, 트레버는 학교에 남았다. 정작 트레버는 스스로를 흑인이라 생각했다. 엄마도, 사촌들도, 할머니도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흑인 거주구에 살고 있으니 백인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흑인이 되기에는 트레버의 피부가 너무 하?다.혼혈아로 태어난 트레버는 어린 시절 흑인 그룹이나 백인 그룹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아웃사이더가 되기 싫었던 트레버가 생각해 낸 방법은 매점 소년이 되는 것이었다. 뛰는 건 자신 있었다. 엄마로부터 도망치는 데 이골이 난 트레버였다. 조회가 끝나면 트레버는 누구보다 빨리 매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늦게 도착한 아이들의 음식을 대신 주문해 줬다. 그 대가로 금전적 보상도 얻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흑인 그룹과 백인 그룹 모두가 고객이었다. 특별히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았다. 그렇게 트레버는 어디서나 누구하고든 어울렸으나, 동시에 철저히 혼자였다.
엄마 이야기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흑인 여성은 공장에 다니거나 하녀가 됐다. 아프리카 코사족 흑인 여성인 놈부이셀로는 공장에 나가는 것도, 백인 아가씨의 시중을 들기도 싫었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지에 없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타이핑을 배웠고 회사 비서 자리를 얻었다. 정부에 의해 강제로 모여 살던 흑인 거주구를 떠나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로 도망쳐 나왔다. 파티에 나가 춤을 추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키가 큰 스위스 남자를 만났고, 트레버를 낳았다.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놈부이셀로는 여느 남아공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런 의미도 없고 선조 중에도 없는 이름을 골랐다. 성서에서 딴 이름도 아니었다. 단지 그냥 이름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식이 운명에 얽매이지 않길 바랐다. 어디든 자유롭게 가고,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이든 되길 원했다.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다는 듯 자식을 키웠다. 그렇게 트레버는 백인 아이처럼 자랐다. 백인 문화를 따랐다는 게 아니다. 세상이 내 것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됐고, 내가 나 자신을 변호해야 하고 내 의사와 결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놈부이셀로는 스위스인 남자에게 어떤 의무감도 지우지 않았다. 남자는 언제든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대화를 할 필요도 아이를 위해 돈을 낼 필요도 없었다. 놈부이셀로가 필요했던 건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려 들지 않는 남자와 그의 정자였다. 스위스에서 온 깔끔하고 까다로우며 정확한 남자가 제격이었다. 아빠가 된 그는 트레버를 사랑하고 아껴 줬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는 아빠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트레버가 열세 살 때 남자는 다른 도시로 이주했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얼마 후 놈부이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비공과 재혼했다. 매력적이고 유쾌했으며 편안하고 우아한 미소를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폭력성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지독히 가부장적이었다. 놈부이셀로는 재혼한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트레버에게는 자신의 것과는 다른 세상을 접하게끔 했다. 책을 사 주었고 학교에 보냈다. 트레버는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졌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모든 가정이 폭력적이지 않다는 걸 배웠고, 폭력이 가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폭력은 그 자체로 순환되며, 사람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유지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통해하지 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을 지나며 트레버의 삶은 바쁘게 흘러갔다. 코미디언이 되었고, 순탄하게 커리어를 쌓아 갔다. 라디오 디제이 자리를 얻었고, 텔레비전 방송에서 리얼리티 쇼 진행도 맡았다. 남아공 전국을 돌며 클럽에서 스탠드업 공연을 했다. 이제 영국에까지 진출해 코미디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계부가 쏜 총에 맞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도 그 무렵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총알은 엄마의 머리를 관통했다. 두개골 아래로 들어간 총알은 엄마의 광대뼈를 박살내면서 왼쪽 콧구멍으로 빠져나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맥, 동맥, 신경을 하나도 건들이지 않고 비켜 갔다. 기적이었다. 별다른 수술도 필요 없었다. 출혈을 막고, 머리 뒤쪽과 얼굴 앞쪽의 상처를 꿰맨 다음 회복을 기다리는 것이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트레버는 무너져 내렸다. 엄마는 눈물범벅이 된 트레버를 위로했다. ‘아가, 울지 마. 이제는 네가 공식적으로 가족 중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되었잖니.’ 엄마는 나흘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고, 이레 만에 다시 직장에 출근했다.
이 책에서 트레버 노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에피소드들의 연속이다. 시작부터 꼬여 버린 삶이었다. 항상 아웃사이더였고, 가난과 폭력은 일상이었다. 불법 CD를 제작해 팔고 장물을 거래하기도 했다. 계부는 학대를 일삼았고, 결국 엄마의 머리에 총을 쐈다. 하지만 트레버는 비통에 빠지지 않았다. 엄마의 가르침이 그랬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하지 마라.”
엄마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절대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트레버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트레버의 삶도 아픔과 웃음이 공존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트레버 노아의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웃음이 마지막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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