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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대공습과 한국전쟁 시 북한 폭격을 주도한 인물]커티스 에머슨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

Bawoo 2021. 5. 19. 20:27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영어Curtis Emerson LeMay1906년 11월 15일 ~ 1990년 10월 3일)는 미국 공군 장성이다. 1968년에는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조지 C. 월러스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이기도 하였다. 호전적인 성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 중 저고도 전략폭격인 도쿄 대공습을 지휘해 일본을 초토화시킨 장군으로 유명하다. 냉전에 들어서는 서베를린 공수 작전을 지휘했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때는 소련과 쿠바에 대한 핵공격을 포함한 전면전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eMay became known for his massive incendiary attacks against Japanese cities during the war using hundreds of planes flying at low altitudes. In this picture, B-29 bombers are shown dropping hundreds of incendiary bombs (cluster bombs, magnesium bombs, white phosphorus bombs, and napalm) on Yokohama during a strategic bombing raid on May 29, 1945.

 

1945년 3월 10일, 그는 도쿄 대공습을 지휘했다. 르메이의 독창성은 진입 고도의 변경에 있었다. 기존에는 고도 8500m에서 9500m 사이에서 주간 폭격을 했지만, 그는 고도 1500m에서 3000m로 변경했다. 이유는 제트 기류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엔진에 부하를 줄여서 연료를 절약하면 더 많은 폭탄을 적재할 수 있고, 폭격을 정확하게 명중시켜서, 화재의 밀도를 중첩시키면 더 큰 화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고도에서는 적을 요격하는 대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야간 폭격을 했다. 또한 기관총, 탄약, 기총수를 B-29에서 제외시켜 1대당 폭탄을 200kg 늘리도록 하고, 편대가 아니라 단기 직렬로 비행 진형을 변경했다. 르메이의 변경 방식에 대해 조종사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결과적으로 B-29의 피해는 경미했다. 유도기를 몰았던 톰 파워 참모장은 “마치 대초원의 들불처럼 번졌다. 지상 공격은 산발적이고, 전투기의 반격 없음”이라는 실황 보도를 했다. 3시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일본은 사망자, 행방불명자를 포함하여 10만 명 이상, 이재민 100만 명 이상, 약 6평방마일 내에 25만 채의 가옥이 소실되었지만, 르메이 부대는 325대 중 14대만 손실되었을 뿐이었다.[17]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도 미국 공군은 큰 역할을 했다. 1951년 44세의 나이로 별 4개를 달았을 때, 르메이는 율리시즈 S. 그랜트 이후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4성 장군이 되었으며, 또한 그 지위에 최장기 복무를 기록하기도 했다.[26] 르메이는 “우리는 한국의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모든 도시를 불태웠다. 우리는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죽이고 수백 만 이상을 집에서 내쫓았다”고 말했다. [위키백과에서 발췌-아래는 전문 보기]

목차

 

[정보] 책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저자 도니 글룩스타인 | 역자 김덕련 | 오월의봄 | 2021.3.8.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 야만, 압제, 독재, 파시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 그들에게도 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을까? 미국ㆍ영국ㆍ소련 등 연합국은 왜 ‘민중의 전쟁’을 탄압했나?
그들은 진정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