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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 카네기의 노조 탄압 사건]홈스테드 학살 사건(Homestead massacre)

Bawoo 2021. 5. 20. 21:45

홈스테드 학살 사건[Homestead massacre]

The Pennsylvania state militia arrives to quell the hostilities, art by Thure de Thulstrup

 

The Homestead strike, also known as the Homestead steel strikeHomestead massacre, or Battle of Homestead was an industrial lockout and strike which began on July 1, 1892, culminating in a battle between strikers and private security agents on July 6, 1892.[8] The battle was a pivotal event in U.S. labor history. The dispute occurred at the Homestead Steel Works in the Pittsburgh area town of Homestead, Pennsylvania, between the Amalgamated Association of Iron and Steel Workers (the AA) and the Carnegie Steel Company. The final result was a major defeat for the union of strikers and a setback for their efforts to unionize steel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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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카네기는 석탄왕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사진)

을 카네기 스틸의 회장으로 임명한다. 프릭은 석탄왕이라고 불리며 경영능력이 높다고 평가받던 인물이었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이었다. 미국 역사상 악명높은 CEO를 이야기할때 으레 상위권에 든다는 인물이다.

프릭은 회사의 임금을 삭감했다. 1892년 6월에 카네기의 소유인 홈스테드 제강소에서 임금협상 중 프릭은 공장폐쇄를 강행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자 프릭은 공장을 탈환하기 위해서 용역깡패 '핑커톤 전미탐정사무소'의 용병 300명을 고용했다. 용병단은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과 총격전을 벌여서 10여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고 이 사건은 ‘홈스테드 학살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용병단으로는 부족하다라고 생각한 프릭은 펜실베니아에 군대를 요청했고, 8천명의 군인들이 공장을 지키면서 노동자들은 일을 해야 했다. 결국 군대의 개입으로 홈스테드 사태는 종결됐으나 이 사건은 대중에게 확산되면서 노동인권에 대한 새로운 불꽃을 일으켰고, 급기야 이 사건으로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카네기는 장기 체류를 하며 언론의 불꽃이 사그러들기를 기다렸으나..

설상가상으로 7월 23일 홈스테드 학살사건에 분개한 무정부주의자 청년 알렉산더 버크만(Alexander Berkman)이 프릭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터지면서

Berkman's attempt to assassinate Frick, as illustrated by W. P. Snyder for Harper's Weekly in 1892

 

카네기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프릭은 버크만이 쏜 두발의 권총탄이 귀와 목을 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맨손으로 버크만을 제압하고 두들겨 패 거의 죽일뻔 했다.

이에 대해서 카네기는 이 사태가 프릭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짓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에 대한 증거로 자신이 프릭에게 남긴 편지를 들었다. 그러나 카네기가 미국을 떠나기 전에도 카네기 스틸의 파업은 이미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이었고,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카네기는 실질적으로 프릭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전부터 카네기는 CEO인 프릭에게 전권을 주어 배드캅 역할을 맡기고, 문제가 커지면 자신이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이 경우엔 카네기가 진짜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애초부터 카네기는 이미지 메이킹 대비 실제 사원들의 복지엔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인물이었다.

물론 카네기가 이미지 메이킹을 잘한건 있었기에, 홈스테드 노동자 총격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카네기는 당대 경제계에선 정직한 기업가이며 노동자의 벗이라는 평가도 일견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겪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수수방관했다는 평이 많아지자 이미지가 악화됐다. 실제 이 사태를 기점으로 카네기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대중매체가 생겨났다. 한편, 웃기게도 프릭은 버크만의 암살미수 때문에 동정적인 여론을 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게 미국의 노동운동 역사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프릭 암살미수 사건을 벌인 버크만이 노동운동과는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그 둘의 상관관계를 찾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어 1910년대 미국의 노동운동은 그야말로 몰락하게 된다.게다가 자신의 동의없이 욕받이 역할을 떠맡은 프릭은 카네기와 갈등을 빚었으며, J. P. 모건에게 카네기 스틸을 매각한 이후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나무위키:namu.wiki/w/앤드루 카네기    나무위키에서 발췌/사진은 영어위키]

 

 

[정보] 책 - 트리플 버블(양장본 HardCover)저자 한상완, 조병학 | 인사이트앤뷰 | 2021.3.3.

“지금 자산시장에는 거대한 삼각파가 밀려오고 있다. 공급 측면에는 원자재 슈퍼사이클이 시작되었고, 수요 측면에는 2021년 말까지 지속할 시간 왜곡이 억눌린 잠재 수요의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다. 이 두 가지 거대 파도가 서로 맞부딪히는 머리 위로 파월-옐런의 유동성 태풍이 휘몰아치면서 사상 초유의 트리플 버블이 형성될 것이다.”

“2022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것이다. 부동산시장은 용광로처럼 뜨거울 것이며, 주식시장은 연일 신고가 행진을 거듭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각국 중앙은행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자국 화폐 가치방어에 경쟁적으로 나설 것이다. 전 세계는 순식간에 고금리 세상으로 뒤바뀔 것이며, 시장은 급속하게 무너져내릴 것이다. 2023년은 트리플 버블이 붕괴하는 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버블 붕괴의 쓰나미를 피해갈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쓰나미가 더 크게 덮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방 경제라는 한계는 물론, 가계 건전성이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붕괴는 부동산시장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뜨겁던 부동산시장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발생하고, 다시 급격한 수요위축을 불러 주식시장도 폭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처럼 막대한 부를 거머쥐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99.9%는 그동안 이룩한 조그만 자산을 모두 잃고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