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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 여성 권리 운동가]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Bawoo 2021. 5. 26. 20:45

Sojourner Truth

소저너 트루스 (Sojourner Truth, 1797년 - 1883년 11월 26일)는 흑인 노예 제도 폐지론자 여성 권리 운동가 이사벨라 바움프리가 1843년부터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이름이다. 트루스는 뉴욕 스와트킬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1851년 오하이오 애크런의 여성 권리 집회에서 트루스는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목차

    • 1초기
    • 2자유
    • 3"진실이 나를 부른다(The Truth Calls Me)"
    • 4"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 5임무를 띠고
    • 6남긴 다른 흔적들
    • 7각주
    • 8참고 자료
    • 9외부 링크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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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열정을 바탕으로 노예제폐지와 여권운동에 힘썼다. 소저너 트루스는 노예로 태어나 어린시절 주인들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1810~27년 같은 처지의 노예 토머스와의 사이에 5명의 아이를 낳았다. 1827년 노예제가 폐지되기 직전 아이작 밴 와그너에게 노예로 팔렸으나 해방되었다.1843년 뉴욕을 떠난 뒤부터 소저너 트루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순회하라'는 계시에 따라 곳곳을 다니면서 야외집회와 교회·가두에서 노래·설교를 하거나 논쟁을 벌였으며, 사람들에게 성서의 전갈인 신의 선함과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사상을 받아들이도록 전했다. 같은 해 매사추세츠 주 노샘프턴의 이상주의적 공동체에서 인종차별 폐지운동을 접하게 되면서 인종차별 폐지를 주제로 전국 순회 설교를 했다. 1850년 중서부 여러 곳을 순회했는데, 좋은 평판을 얻어 많은 군중이 모였다.1870년대말 다수의 해방노예가 캔자스와 미주리로 이주하는 것을 도왔고, 1875년 배틀크리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 소저너 트루스는 올리버 길버트에게 구술하여 쓴 〈소저너 트루스의 설교 The Narrative of Sojourner Truth〉를 출판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1850년대초 여권운동을 접하게 되었으며 저명한 여성 지도자 루크리셔 모트의 영향을 받아 여성참정권 운동 집회에 참여했다. 1850년대 트루스는 미시간 주 배틀크리크에 정착, 남북전쟁(1861~1865) 초기에 흑인 지원부대를 조직했으며, 1864년 워싱턴 D. C.로 가서 전차에 흑인과 백인이 분승하는 것을 폐지하는 데 앞장선 공로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에 초대받았다. 같은 해 트루스는 전국자유인구제협회로부터 노예의 근절과 재정착문제를 상담하는 역으로 임명되었다.
    • 퀘이커교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불법적으로 남부에 팔려간 아들을 찾기 위한 법정투쟁을 벌였으며, 1829년경 가장 어린 두 아이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가정부로 생계를 유지했다. 소저너 트루스는 어린시절에 하느님의 형상과 음성을 경험한 뒤 신앙에 귀의했다. 뉴욕 시에서 열성적인 전도사인 일라이저 피어슨과 알게 된 뒤, 거리에서의 설교활동 외에도 피어슨의 검약공동체에 가입, 나중에는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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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위키]

 

Sojourner Truth (/sˈɜːrnər trθ/; born Isabella "Belle" Baumfree; c. 1797 – November 26, 1883) was an American abolitionist and women's rights activist. Truth was born into slavery in Swartekill, New York, but escaped with her infant daughter to freedom in 1826. After going to court to recover her son in 1828, she became the first black woman to win such a case against a white man.

 

She gave herself the name Sojourner Truth in 1843 after she became convinced that God had called her to leave the city and go into the countryside "testifying the hope that was in her".[1] Her best-known speech was delivered extemporaneously, in 1851, at the Ohio Women's Rights Convention in Akron, Ohio. The speech became widely known during the Civil War by the title "Ain't I a Woman?", a variation of the original speech re-written by someone else using a stereotypical Southern dialect, whereas Sojourner Truth was from New York and grew up speaking Dutch as her first language. During the Civil War, Truth helped recruit black troops for the Union Army; after the war, she tried unsuccessfully to secure land grants from the federal government for formerly enslaved people (summarized as the promise of "forty acres and a mule"). She continued to fight on behalf of women and African Americans until her death. As her biographer Nell Irvin Painter wrote, "At a time when most Americans thought of slaves as male and women as white, Truth embodied a fact that still bears repeating: Among the blacks are women; among the women, there are blacks."[2]

A memorial bust of Truth was unveiled in 2009 in Emancipation Hall in the U.S. Capitol Visitor's Center. She is the first African American woman to have a statue in the Capitol building.[3] In 2014, Truth was included in Smithsonian magazine's list of the "100 Most Significant Americans of All Time".[4]

      [Contents]
  • [정보] 책-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저자 도니 글룩스타인 | 역자 김덕련 | 오월의봄 | 2021.3.8.
  •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2차 세계대전
    야만, 압제, 독재, 파시즘,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
    그들에게도 2차 세계대전은 ‘좋은 전쟁’이었을까?

    미국ㆍ영국ㆍ소련 등 연합국은 왜 ‘민중의 전쟁’을 탄압했나?
    그들은 진정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싸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