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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국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보호무역 관세법]스무트 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Bawoo 2021. 5. 27. 23:25

스무트 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

미국이 자국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1930년에 제정한 관세법. 이 관세법의 제정 후 세계공황은 확대되었다. 1929년 10월24일 뉴욕증시의 대폭락에서 발단된 불황으로 세계 각국의 생산은 급감하고 실업은 급증했다. 이처럼 내수기반이 붕괴되자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은 수입품 규제에 눈을 돌렸고, 각국 업계와 의회는 수입제한을 위해 높은 관세를 매기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그 첫 조치로 미국에서는 스무트와 홀리 의원이 주도해 '스무트-할리 관세법'을 제정, 관세율을 대폭 인상했다.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자극 받은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국가들도 잇달아 경쟁적으로 수입관세를 높였다. 1930년 통과된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관세율을 100년 내 최고치인 59%로 인상해 전세계에 보호무역주의 연쇄효과를 일으켰고, 1929∼1932년간 국제무역이 63% 감소했다. [매경시사용어사전 ]

 

The Tariff Act of 1930 (codified at 19 U.S.C. ch. 4), commonly known as the Smoot–Hawley Tariff or Hawley–Smoot Tariff,[1] was a law that implemented protectionist trade policies in the United States. Sponsored by Senator Reed Smoot and Representative Willis C. Hawley, it was signed by President Herbert Hoover on June 17, 1930. The act raised US tariffs on over 20,000 imported goods.[2]

The tariffs under the act, excluding duty-free imports (see Tariff levels below), were the second highest in United States history, exceeded by only the Tariff of 1828.[3] The Act and tariffs imposed by America's trading partners in retaliation were major factors of the reduction of American exports and imports by 67% during the Depression.[4] Economists and economic historians have a consensus view that the passage of the Smoot–Hawley Tariff worsened the effects of the Great Depression.[5]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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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s C. Hawley (left) and Reed Smoot in April 1929, shortly before the Smoot–Hawley Tariff Act

passed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쇠귀에 경 읽기. 경제학자 1,028명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버 대통령이 1930년 6월 17일 스무트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에 서명하고 말았다.

골자는 2만여 수입 공산품에 대한 평균 59%, 최고 400%에 이르는 고율 관세 부과. 발제자인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윌리스 홀리(Willis C. Hawley)의 이름을 딴 이 법은 심의 중이던 1929년 초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반대론자들은 관세 인상이 타국의 보복 관세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내 제조업자들을 의식한 후버와 공화당은 '미국의 국민총생산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에 불과하다'며 밀어붙였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불행하게도 전자의 우려가 맞아떨어졌다.

세계 각국의 대미 보복 관세로 미국의 수출은 1929년 52억 달러에서 1932년에는 16억 달러로 주저앉았다. 세계 무역 총액도 같은 기간 동안 36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격감했다. 국제 무역의 3분의 2가 날아간 것이다.

무역 전쟁이 심화하자 각국은 보유 외환을 금으로 바꾸어 국내에 쌓았다. 금 확보 경쟁 속에 국제 결제의 근간인 금본위 제도 역시 무너졌다. 국제 무역은 더욱 위축되고 각국은 '경제 블록화'에서 살 길을 찾았다.

영국이 파운드 경제권을 추구하고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향해 군사적 모험을 강행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식민지가 없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의 광풍이 나라를 휩쓸었다. 슘페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세 인상을 가정상비약으로 여기는 미국 공화당의 전통'이 대공황을 세계로 확산시키고 2차 대전의 씨앗까지 잉태했던 셈이다.

유능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경제 대통령으로 기대되었던 후버는 결국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최악의 케이스'라는 혹평을 받았다. 남의 일 같지 않다. [99%의 롤모델 | 권홍우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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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책-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저자 김두얼 | 생각의힘 | 2020.6.11.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경제사와 법경제학을 두루 전공한 저자가 십수 년간 지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묶은 칼럼집이다. 저자는 애초에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고심하면서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집필했는데, 그 덕분에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에 수록된 50여 편의 글은 그 안에서 일종의 흐름과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또 글 하나하나가 시간을 타지도 않는데, 시론적인 글보다는 경제사와 법경제학을 소개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공을 들여온 저자의 노력이 빛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