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제로: 저자 하쿠타 나오키 | 역자 양억관 | 펭귄카페 | 2014.8.18.
출판사서평:인터넷 교보문고
고작 칠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전쟁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오륙십 대의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가장 극적인 현대사의 장면들이었다. 단 한 치의 에누리 없이 예약된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살았던 시절이다. 역자가 아는 한에서 여기에 묘사된 가미카제들의 모습과 그 행동 양식은 사실적이다. 작가는 최대한 공정한 태도로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아주 잘 썼다. 감동적이다. 같은 운명 아래 놓인 인간끼리 나누는 우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눈물겹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천황, 국가, 군부 권력들에 대한 분노도 격하다. 패배의 역사에 대한 짙은 아쉬움도 있다. 미드웨이 해전은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고지휘관들의 자질이 떨어졌을 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고지휘관들의 자질이 떨어졌을 따름이다. 좀 더 분석적이며 냉철하고 용맹하게 대처했더라면 일본 해군은 미 해군을 무찌르고 태평양의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그 전쟁에서 그리도 허망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그런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메리카와 '맞짱'을 뜬 나라가 있었던가? 그런데 일본 해군은 하와이까지 날아가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미 해군을 거의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무대로 한때는 거의 주도권을 쥐고 싸웠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 대단하다. 그렇지만 졌다. 너무 아쉽다. 그런 한스런 감정이 묻어난다. 평범한 일본인이라면 한 번쯤은 가졌음직한 감상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제로센은 호리코시 지로라는 천재적인 공학도가 설계한 함상전투기이다. 그 당시 세계의 어떤 전투기보다 뛰어난 항속거리와 스피드로 하늘을 주름잡고 미군기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 전투기는 방어력이 약했다. 조종사를 보호하는 기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기계를 기획하고 제작한 집단이 조종사를 전쟁의 소모품으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비단 조종사만이 아니다. 국민이란 전쟁에 필요한 도구나 자재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나 군 권력자의 그런 인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미카제 생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듯이 그런 기류는 1930년대 중반부터 견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2.26사건실패로 끝난 군사 쿠데타의 사상적인 배경이 된 기타 잇키北一輝의 '국가개조론'을 비롯한 여러 국가주의 사상이 표 나게 또는 암암리에 그 강령의 첫머리에 두었던 사고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완전 복종'이었다. 그리고 그 국가는 모든 것을 주도하는 특권집단과 동의어였다. 체제의 정치가들, 군 최고위와 참모본부였다. 그들의 나라였다. 그들은 집요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파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거나 살해하면서 국민의 의식을 한 곳으로 몰아가며 세뇌했다. 위대한 일본이 위태롭다고, 하나가 되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위대한 일본의 존속을 위해서. 그렇게 위기를 강조했다. 국민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그들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반대파가 없었다. 그 결과 '가미카제 특공'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행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 국민들은 어제까지 환호를 보내고 찬양했던 전쟁영웅들을 매몰차게 부정해버렸다. 그 집 대문 앞에 세워둔 영웅 찬양 팻말을 뽑아버린다. 박수를 치던 그 손으로. 그것은 결코 배신행위도 아니었고, 새로이 등장한 미군정 권력에 대한 아부도 아니었다. 억눌렸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었을 따름이다.
작가는 거의 상식이나 다름없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군 최고위나 참모본부에 대한 울분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토로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작가는 어중간한 선에서 타협하고 만다. 국민을 지배한 그들과 무작정 죽음으로 내몰린 특공대원들을 나라 위해 싸운 영령으로 통합해버린다. 국가주의 시대와 그 사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비판도 없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소설가가 그 모든 것을 고민하고 제시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둘을 적당하게 통합해버리는 정신이 참모본부나 군 최고위와 체제의 정치가들을, 그 광기의 전쟁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비평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는 일본이라는 특수성과 인류사의 보편적 관점을 동시에 아우르며 그 시대를 해석해낼 수 없을 것이다. 미군이 침공한 오키나와에서 수많은 민간인과 병사들이 허망하게 죽었다. 이른바 나라를 위해서. 그들은 일본 국민이다. 그들과 전쟁을 주도한 군부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고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라는 곳이 있다. 메이지 천황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모신 종교시설이다. 거기에 '가미카제 특공'이라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작전을 기획하고 실행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전범들과 국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제로센 또는 다른 방식으로 특공을 감행했던 병사들이 같이 있다. 그곳에 아베 총리나 주류 정치가들이 가서 열심히 참배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 나라를 위해 싸워줄 기특한 국민과 무한한 권력의 결합이야말로 그들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거기에 참배할까?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를 비판하는 기사를 보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일본과 관련되었다고 해서 예정된 상영을 중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 어렵고 난감한 문화적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인 일반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감성이, 지난 역사에 대한 사고가 편협하고 궁핍해서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기에도 그럴 만한 역사가 있다. 《영원의 제로》 또한 위 두 작품과 비슷한 평가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돌파해야 할 시대적 변곡점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옮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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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소감]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가미카제)로 참가하여 죽은 가상의 한 인물의 삶과 죽음을 외손자와 외손녀가 추적하는 형식으로 쓴 작품. 태평양 전쟁과 가미카제 특공대 관련 내용은 책이나 영상이 제법 많이 나와있고 그 중에 읽기도 한 터라 익숙한 편이지만 이런 내용을 문학작품으로 읽은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것도 최근에 일본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우연히 알게 되어.
작품 전개 방식은 좀 밋밋하다. 한 특공대원의 행적을 외손녀와 외손자 남매가 종전 후 7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당시 외할아버지의 전우였던 노인들을 만나 듣는 구성이다. 전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할아버지는 생환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갓 결혼한 아내와 태어난 아이-외손녀, 외손자의 할머니, 어머니이다-때문이었다. 가족애. 그러나 종전을 얼마 안 남겨둔 시기에 기마카제로 참전하게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게 반전이 있다. 그토록 생환에 집착한 외할아버지는 자기가 탈 비행기가 고장날 걸 알아 그대로 출전할 경우 불시착 등의 방법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특공대원의 비행기로 바꿔타고 나가 결국 죽게되는데 그 이유가 지극히 소설적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 외할아버지는 과거 전투 시 다른 대원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말이다. 그 이유가 교관인 외할아버지의 인뭎에 반해서라는 설정인데 아무튼 외할아버지는 이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스스로 죽음을 길로 들어선 것이다. 반전은 이 살아남은 특공대원이 바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결혼하여 자신들의 어머니를 키워준 지금의 양 외할아버지라는 설정이다. 이 반전은 작품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선 독자가 이를 전혀 상상할 수 없게 전개됐는데 내 경우엔 종반부에 이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읽어가는 중에 양 외할아버지가 전혀 관계없는 인물일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결국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지금의 양 외할아버지가 당시 전우-엄밀히 말하면 상사와 부하의 관계-였다는 걸 한 증언자 노인을 통해 알게 되는 설정이다. 이에 집으로 돌아와 지금의 양 외할아버지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는 데 생환한 양 외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전우에게 목숨을 빚진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나러 다니다가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
작품 전개는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감동은 덜한 편이다. 그래도 작품을 다 읽은 뒤 몇일이 지난 뒤에도 진한 여운이 남는 걸 보면 아마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국가 권력을 쥔 인간들-여기서는 해군 고위층이다- 때문에 그야말로 개죽음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나도 이 시기에 일본이란 나라에 태어났다면 똑같이 개죽음 당했을 거라는 생각에. 비록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한 원수같은 나라인 일본의 군인이고 국가권력을 쥐고 흔든 인간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전쟁터이기에 만행을 저지른 인간도 많은 거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이런 만행과는 관계없이 그야말로 목숨을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는 전투에 참여해야 했으니 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국의 젊은이들을 개죽음으로 몬 군부-여기서는 해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는 주로 이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는데 위 번역자의 말이나 아래 작가 성향을 보면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 작가가 극우, 혐한파 중 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맛이 뚝 떨어지게. 마치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두 번이나 읽었으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극우, 혐한파 인물이어서 책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고 이 여자가 쓴 작품은 이후 일부러 안 보게 된 것 처럼. 아무튼 작품 자체로는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아래 [참고]는 이 작가가 극우, 혐한파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 영화 해설 영상과 이에 프로필을 검색한 내용.
[참고]
이 작가 극우, 혐한 인물인 거로 나오는 내용.
1.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 자국 내에서 대히트를 쳤다고 하는 데 영화-소설 줄거리도 알 수 있다- 해설 중
"https://www.youtube.com/embed/wkxME4lp6-0"] 에 나온다.
3. 이외에도 자료가 많이 올라와 있다.
[여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일본의 지배계층인 "사무라이"는 평민들에 대하여 생살여탈권을 쥔 존재였다. [ 부레이우치 - 나무위키2021.10.18.]. 이런 전통(?)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표면적인 것일 뿐 오랜 기간-최하 1,000년(?)- 이어져온 전통(?)이 그리 쉽사리 없어졌을 것인가. 실제로 신분제만 없어졌을 뿐 지배계층은 그대로 사무라이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메이지유신이 하급무사를 주축으로 일어났지만 이들도 지배계급 아닌가. 쉽게 말해서 평민은 개돼지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상업으로 자본을 축적한 계층이 새로 가세했을 터이고. 그러니 적의 기관총 앞에서 돌격을 하게 하고-러일전쟁 여순전투-전투에서 질 경우 포로가 되면 절대로 안 되니 자결하라고 하고, 전투 참가는 곧 죽음인 가미카제 특공대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리 지배계층에 눌려 살 수밖에 없었던 평민들-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 개병제가 되었으니 사무라이 계급 출신도 있었을 것이다-자신의 울분을 나라 밖으로 나갔을 때 푸는 방식으로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저지른 건 아닐까?
* 추천: 일본 혐한의 뿌리를 잘 설명해주는 책. 많이 나와있지만 지금 읽고 있는 아래 책 강력 추천.
책 "일본 발 혐한 바이러스(반양장):저자 이현주 | 선인 | 2021.10.20" 참고. [2021. 12. 10.]
[내가 아는 가미카제 관련 책]
1.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저자 길윤형 | 서해문집 | 2018.1.16.
2. 죽으라면 죽으리라:저자 오오누키 에미코 | 역자 이향철 | 우물이있는집 | 200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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