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아래 책 소개, 출판사 서평으로 갈음.
[책 소개] 일본 미스터리 소설 역사상 찬란히 빛나는 사상 최초! 에도가와 란포상과 나오키상을 동시 수상한 미스터리 필독서. 60년대 전공투 학생운동 세대의 상처와 상실감을 사실적으로 녹여낸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책 속으로
첫 문장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그쳤다. p7
현재로서 내게도 아무 문제는 없다. 주변도 마찬가지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나나 나와 비슷한 존재가 이곳에 없었다면 이 공원은 한층 평화로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잔디에 누워 있는 노숙자 몇 명이 보인다. 그들도 내가 그렇듯 신주쿠역 서쪽 출구의 인공 불빛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어서 여기 왔을 것이다. p8
“이 여자아이도 살았다고. 네게 맡긴다. 신에게 빌지만 말고 구급차가 오면 이 아이를 가장 먼저 맡겨.”
“왜 내가…….”
남자를 다시 한번 때렸다.
“알겠냐고.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넌 죽어.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거짓말 아니야.” p18
‘술 따위 상관없는걸.’
아니, 상관있다. 나는 중얼거렸다. 저런 놈들에게 지고 말았단 말이다.
곧장 세계가 온통 새까매졌다. p46
“60년대 말, 대학투쟁의 시대가 있었어. 그건 너도 알겠지.”
“대강은요.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많이 아 는 건 아니고. 옛날이야기. 이제 전설이 된 시대의 이야기잖아요. 아저씨 세대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만의 특권인 것처럼 케케묵은 후일담을 말하는 것 정도는 알아요.” p97
“결국 게임 끝이라는 건가.”
“맞아. 게임 끝이야. 기쿠치,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와 함께할 거야.”
그 후 우리는 볶음국수를 추가로 주문해 말없이 먹었다. 투쟁에 관해 나눈 우리의 대화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양념 이 타는 냄새와 침묵만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게임 끝. p113
“최근 일은 아니고 자네 시합 때 봤어. 죽여 버리라고 엄 청나게 고함을 치는 사람이 근처에 있었어. 너무 이상해서 아직도 기억나.”
“이상하다니?”
“얌전해 보이는 남자였는데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사람이 돌변했어. 뭔가 자네를 응원한다기보다는 어느 쪽이든 죽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외치는 느낌이랄까. 피를 보고 싶어!, 라고 외치는 것 같았어.” p191
“나도 여러 가지 궁금한 게 생겼어. 조금 움직여야 할 것 같아.”
“위험한 수단을 쓰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아사이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야쿠자의 숙명이야. 어떤 일에든 숙명이라는 건 있으니.” p218
“신문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모든 신문을 다 읽는 게 좋아. 신문에 나와 있는 건 직소 퍼즐처럼 거의 단편적인 것들이라.”
“무슨 일이에요? 뭘 알아채신 거예요?”
“네 엄마가 그 공원에 있던 이유.” p277
‘기름을 끼얹은 날에 불기둥처럼 솟은 고층 빌딩, 하늘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구나.’
‘황혼이 드리우는 거리의 살덩이를 멈추게 한, 붉은 과일 껍질 벗겨 놓은 듯한 신호등.’ p305
“자네에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위험한 이야기는 숨겼던 거야. 그런데 역시 자네는 그걸로 만족할 만한 남자가 아니었어. 다만 이것만은 말해 둘게. 상대가 누구든 죽이진 마. 그리고 자네도 절대 죽지 말고.” p340
“사람을 살해할 때도 이렇게 하는 건가, 테러리스트. 푸른 파라솔을 빙글빙글 돌리네.” p378
“넌 날 쏠 수 없어.”
그 말이 처음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잡고 떨리는 권총을 고정했다. 손가락에 힘을 넣는다. 방아쇠를 당기듯이 천천히 힘을 주었다.
총의 발사음이 울려 퍼지며 여운이 드리워졌다. p389
“오늘, 친구를 한 명 잃었어.”
창밖에서 갑자기 하얀 코스모스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p399
출판사서평
새로운 번역, 반드시 읽어야 할 미스터리 마니아 필독서!
“여기에 행복이 있다.”
평화로운 가을날, 한 남자는 신주쿠 중앙 공원에서 한가로이 위스키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폭음이 울리고 폭발이 발생해 사상자가 대거 나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남자의 일상은 무너지고 만다. 그는 신주쿠 골목 술집의 평범한 바텐더 시마무라로, 폭발 현장에 위스키 병을 두고 나오면서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 피해자 중에는 한때 남자와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친구 두 명이 있다. 이토록 지나친 우연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사건으로 평화로운 일상을 완전히 박탈당한 남자는 이러한 의문을 품은 채 사건의 진상을 쫓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시마무라와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다른 두 명의 친구(유코, 구와노)와 야쿠자, 유코의 딸, 노숙자 등 각각 개성을 뽐내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먼저 대학투쟁을 함께했던 삼인방인 시마무라, 구와노, 요코는 각기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을 발산한다. 치열한 대치 상태에서도 천하태평인 시마무라, 날카롭고 예리한 두뇌의 소유자 구와노, 용감하면서도 절제력 있는 요코가 그러하다. 이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각자의 색깔을 잃지 않은 채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간다. 늘 천하태평이었던 시마무라는 시시한 바텐더가 되고 능력자 구와노는 한 회사의 대표가 되고 요코는 뉴욕에서 커리어우먼이 된 것이다. 삼인방 외에도 뼛속까지는 야쿠자가 되지 못한 아 사이와 지나치게 당돌한 도코도 나름의 매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후지와라 이오리에 관한 대담에서는 이 등장인물들이 전부 엘리트라는 점에 주목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하나 바보 같은 인물은 없다. 유코와 도코에게 나사가 빠져 있다고 늘 비난당하는 주인공마저 현명하지 않은가. 대담자들은 작가 자신부터 일단 머리가 좋은 엘리트라서 등장인물들도 다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다음으로 재미있는 요소는 이러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감정선이다. 60년대 전공투가 좌절된 뒤, 이들이 한때 추구했던 이상, 실천했던 연대는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 유능한 구와노 역시 현실의 장벽 앞에서 허무와 체념에 휩싸여 결국 지치고 만다. 늘 천하태평한 시마무라는 줏대 없이 그런 구와노와 또 똑같이 행동한다. 하지만 그 후 오히려 시마무라는 잿빛 현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타개해간다. 복싱을 하면서 일상을 견디고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구와노는 기쿠치의 이러한 면에 놀라면서 질투하고 기쿠치의 건강한 면모를 알아본 유코가 있다.이들 간의 섬세하지만 뒤틀린 애증과 우정, 질투와 동경이 한데 얽히는 지점이다. 서투르지만 빛나던 청춘을, 중년이 된 이들이 각자 소화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도 흥미를 돋우는 요소이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작품 전반에 진한 향을 내뿜고 있는 위스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군침 도는 핫도그 장면은 이미 현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을 정도다. 위스키와 핫도그의 풍미를 음미하며 작품을 한층 더 즐겁게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하드보일드계의 결정판!
“사람을 살해할 때도 이렇게 하는 건가,
테러리스트. 푸른 파라솔을 빙글빙글 돌리네.”
1948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후지와라 도시카즈(藤原利一). 그는 도쿄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電通)에 입사했다. 그러다 1985년 『닥스훈트의 워프』로 제9회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95년에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한 목적으로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투고하게 된다. 60년대 안보투쟁 세대의 상처와 상실감을 사실적으로 녹여낸 이 작품으로 후지와라 이오리는 1995년 제41회 에도가와 란포상과 1996년 제11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 에도가와 란포상과 나오키상의 동시 수상은 사상 최초였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이목을 끌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더군다나 란포상에서는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외에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로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위를 기록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6위를 기록하며 명성을 떨쳤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인기에 힘입어 1996년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2015년 『도덕의 시간』으로 제6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소설로 후지와라 이오리의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꼽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오승호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좌절에 대한 동경을 느꼈다고 한다. 좌절은 싸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후대 작가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쳤던 후지와라 이오리는 2007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기회가 이제는 없다. 그렇다면 그가 살아생전 발표했던 작품(『닥스훈트의 워프』『시리우스의 길』『손바닥의 어둠』『다나에』『오르 골』 등) 중에서도 가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입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책 도서관 ♣ > - 문학(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장편 소설]슬픈 열대 /굿잡:해원 (0) | 2022.07.22 |
---|---|
[일본 장편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안도 유스케 (0) | 2022.07.19 |
[일본 장편 추리소설] 천사의 나이프:야쿠마루 가쿠 (0) | 2022.07.11 |
[우리 장편소설] 두 형제 이야기: 리지명 (0) | 2022.07.02 |
[우리 장편소설:제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홍합 : 한창훈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