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엔딩 크레딧:저자 안도 유스케 | 역자 이규원 | 북스피어 | 2022.4.23.
[소감] 책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학교에 다닐 때는 출판사가 선호 직장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 사정이 열악하다는 걸 알게 된 건 다른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업종의 경쟁력이나 종사자에 대한 처우 면에서 다른 업종에 비해 근무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도. 실제로 20대 초반까지 알던 출판사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당시 문학 전집을 출판하던 3대 출판사인 정음사, 동아출판사, 을유문화사 중 을유문화사만 아직 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출판 과정에 대한 관심은 늘 있어왔는데 이번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즘 일본 문학작품을 추리소설 위주로 많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 읽다가 마는 책도 많은지라 크게 기대는 안 하고 과연 출판계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여 읽어보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포기하면 되니까. 그러다가 이내 빠져 들었다. 추리소설처럼 자극적인 내용이나 무수한 복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절로 빠져들게 만든 아주 잘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한 인쇄소 영업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책을 인쇄하는 인쇄업계 관련 이야기를 출판사, 작가와 연계하여 풀어내는 데 잔잔한 감동까지 느끼게 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은 분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사족] 요즘 일본 문학작품- 거의 추리소설이다.-을 많이 읽는 편인데 반일 성향이 강한 나이기에 자괴감(?) 비슷한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면서도 찾아 읽게 된다. 그만큼 일본 작가의 작품이 우리 취향에 맞고 잘 쓴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이 책의 경우에도 등장인물만 뺀다면 우리나라도 같은 실정이 아닐까 싶어 그런 마음으로 읽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작가가 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읽는 내내 있었다. 책도 일본 작가 것은 읽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다. 다른 일본 관련 책을 읽으면서 친일이 아닌 지일 차원에서 읽는 것이기에 문학 작품도 그런 마음이긴 하지만 좀 씁쓸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가 일본의 1/3뿐이 안 되어 출판 시장 자체가 좁으니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도 글 쓰는 의욕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환경인 것도 문제이긴 하겠다. 그래서 더욱 씁쓸한 마음이다. ㅠㅠ.
책소개
『책의 엔딩 크레딧』은 저자가 십여 권의 작품을 집필하면서도, 원고를 보내고 나면 정작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하여 쓴 소설이다. 책에도 영화와 같은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기록해야 할, 책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하고 그날그날 기계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설정을 결정하는 인쇄 기술자,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뒤의 색까지 예측해 별색을 조합해 내는 제조 담당자, 뜻대로 되지 않는 종이 수급과 갑작스런 제작 변경에 따라 스케줄을 조율하는 인쇄 영업맨 등.
원고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이나,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지 사이에 공기를 넣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책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업계의 그늘과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프로들의 자부심을 잉크 냄새 나게 묘사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프롤로그 --- 7
슬로우 스타터 --- 15
나가시노의 바람 --- 85
페이퍼백 라이터 --- 189
사이버 드러그 --- 263
책의 보물상자 --- 367
에필로그 --- 479
특별 단편 〈책은 필수품〉 --- 497
편집자 후기 --- 513
책 속으로
종이 성분의 약 8퍼센트는 수분이다. 때문에 습도나 온도에 따라 미세하게 신축하고 변질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습도가 높아서 종이와 종이가 들러붙기 쉽다. 공기를 충분히 넣어 주지 않은 채 급지부에 세팅하면 종이가 막히거나 여러 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겹침이 발생하기 쉽다.
25p.
하지만 지로 씨는 그야말로 기술자라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종이 재질, 온도, 습도에 따라 잉크 성분이나 점착성을 판단하고 별색을 조합해 낸다. 인쇄기를 다루는 책임자인 노즈에도 잉크나 종이의 기본에 대해서는 거의 다 지로 씨에게 배웠다.
35p.
하판부 사람들이 들려주는 예전에 고생했던 이야기도 좋았다. 활판 인쇄 시절에 활자를 하나씩 골라 게라상자에 나열해서 판을 만들던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다.
후쿠하라는 입사 후 연수에서 하판부 부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내내 가슴에 새기고 있다.
‘판이라는 것은 책의 도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도장은 한 번 만들면 수정할 수 없지. 그러니까 신중하게 만들고 조심해서 다뤄야 해.’
레이아웃을 짤 때 줄바꿈 위치 하나만 틀려도 판을 전부 다시 제작해야 한다. 변경이나 수정이 비교적 쉬운 디지털 세계에 있으면 그 심각함을 잊기 쉽다.
216p.
“훔칠 수 있으면 훔쳐야지. 다만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어. 지로 씨는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하고 규 씨는 기계의 그날그날 컨디션을 살펴보며 설정을 결정하지. 장인의 세계야. 내가 일조일석에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407-408p.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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