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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저자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의 한국, 이상아>

Bawoo 2022. 9. 23. 17:17

[소감]일제 강점기, 자발적이든 징용이든 태평양에 있는  전쟁터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조선인)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을 기대했는데 주요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의 사진이 주로 이루는 사진집이랄 수 있겠다. 때문에 1시간이 채 안 걸려 볼 수 있었다. 느낀 점은 나라 잃은 백성들의 맞닥뜨릴 수밖에 없던 비참함. 사진에 안 실린 사람들은 대부분 전장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숫자,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로. 보통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라. 시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줬다. 책을 검색하니 영상도 나오던데 책 내용 전부가 담긴 건지는 모르겠다.

 

[영상]

 

책소개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태평양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쟁 기간, 일본은 식민 지배하고 있던 국가의 국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KBS 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 방송으로 소개된 ‘태평양 전쟁 강제 동원’의 실태 그리고 당시 이름도 낯선 태평양 섬으로 끌려간 한국인들. 우리조차 잊고 있던 그들의 역사를 책으로 만난다.

 

책 속으로

전쟁이 끝난 1946년 3월,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의 3,500톤급 구축함 요이즈키Yoizuki로 호주에 억류돼 있던 대만인과 한국인 전쟁 포로를 각각의 국가에 송환하기로 결정한다. 요이즈키 함의 적정 승선 인원은 800명이었지만,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948명까지 탑승 인원을 승인했다. 그러나 실제로 요이즈키 함에 승선한 인원은 한국인 남성 전쟁 포로 156명 등 총 1,005명이었다. 맥아더의 승인보다 57명이 초과 승선한 것은 가족이 함께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인도적인 조치였다. 이렇게 요이즈키 함에 탑승한 전체 인원은 전쟁 포로 565명, 절반이 여성과 어린이로 구성된 피억류자 440명이었다. 전체 인원 중 여성은 98명, 어린이는 112명이었다.
_ 〈전쟁의 시작_ 호주〉

드넓은 태평양의 모든 지역에서 싸울 수 없었던 연합군은 방비가 튼튼하고 병력이 집중된 섬은 우회하고, 상대적으로 방비가 약하되 지정학적으로 일본 본토에 접근이 유리한 섬을 주로 공략하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 작전을 시작했다. 일본 본토에 최대한 근접해 대규모로 전략적 공습을 개시하고, 잠수함으로 본토를 차단한 후 필요하다면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니미츠 제독의 주도로 태평양 중부에서 아일랜드 호핑이 시작되자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을 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뉴기니에서 일본군 추격을 이어 갔다.
타라와 환초, 콰잘레인 환초와 에니웨톡 환초, 트럭섬, 사이판, 괌, 티니안, 펠렐리우, 레이테만, 필리핀, 이오지마, 오키나와가 아일랜드 호핑의 대상이었다.
_ 〈아일랜드 호핑_ 아일랜드 호핑〉

“소풍 같은 작전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병대 역사상 가장 피 튀기는 작전을 향해 직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착륙 몇 분 후에 찍힌 겁니다. 400야드를 밀고 나간 후 기력을 회복하려고 장병들은 해변을 끌어안고 있었죠. 24시간 작전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어요. 섬에는 일본군이 잔뜩 있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진실을 말해 주지만 냄새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려 주지 않아요. 그 섬에서는 악취가 났어요”
_ 〈아일랜드 호핑_ 타라와〉

미군은 눈에 익숙지 않은 동양인이 신기하게 보였다. 사로잡은 일본인 포로와 덩치 큰 한국인 포로를 나란히 두고 비교하기도 했다. 이 사진에는 ‘거인 한국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두 명의 일본군과 그들보다 세 배 정도 큰 성인 한국인 비교. 첫 번째 일본군은 17세,
두 번째는 19세, 거인 한국인은 28세’라는 설명으로 미군이 이들을 얼마나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을지 짐작할 수 있다.
_ 〈아일랜드 호핑_ 오키나와 본섬〉

2021년, KBS 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 방송이 끝난 후 김형석 PD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영상에 잠깐 등장했던 사진 속 남성이 본인의 아버님이라는 시청자의 메시지였다. 제작진은 티니안 민간인 수용소의 한국인 사진을 방송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진에 찍힌 개개인의 이야기를 다룰 수는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양상옥 님을 만나 아버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 후에도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던 제작진에게 사진 속 남성이 스스로 본인의 존재를 드러낸 것 같았다.
_ 〈후일담〉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태평양 전쟁과 아일랜드 호핑 작전
그리고 한국인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부터 1945년 종전까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서 벌어진 태평양 전쟁. 태평양 일대와 중국,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미국과 일본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런데 오래되지 않은 역사인 이 태평양 전쟁은 전역부터 전황까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그 익숙지 않은 전쟁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태평양 망망대해의 섬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미군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수행한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 작전의 대상이 되었던 섬들로,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 환초, 마셜 제도의 콰잘레인 환초와 에니웨톡 환초, 트럭섬, 북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과 괌, 티니안, 일본의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등 이름도 낯설다. 일본 본토로의 접근이 유리하고 상대적인 방비가 약한 섬을 공략하는 아일랜드 호핑 작전의 최종 목표는 일본 본토 공격이었고, 미국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이를 주도하면서 태평양 중부에서 아일랜드 호핑 작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였던 이 섬들에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일본군에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이들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 가며 미래를 꿈꿨다.

낯선 전쟁의 한가운데 있던
한국인이 말을 걸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 제작팀은 미 육해공군과 해병이 제작한 뉴스 필름, 홍보물, 뉴스 등 연합군의 방대한 자료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국립핵과학역사박물관, 호주 전쟁기념관 등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전쟁 당시 영상을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영상을 ‘태평양 전쟁의 한국인들’이라는 제목으로 2021년 9월, 2022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KBS에서 방송했고, 그 과정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심층적인 내용과 다양한 사진을 보완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전쟁을 끝낸 원자 폭탄과 관련한 기록들은 물론이고, 전쟁의 한복판 어려운 환경에서 삶을 영위한 사람들, 희망을 품고 새롭게 시작하는 다양한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즉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섬들에서 청춘을 살아간 한국인의 모습과 삶을 시대상과 함께 담고 있다.
책 마지막에는 다큐멘터리 이후의 이야기도 수록돼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2021년 방송 후 영상에 등장했던 사진 속 한국인의 정체를 알게 된 마치 영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태평양의 섬 티니안으로 떠났던 한국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곳으로 갔으며 망망대해의 섬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살았는지까지 후일담에서 만날 수 있다. 역사 속에만 존재했던 한 사람이 이름을 찾고,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또 하나, 태평양 전쟁에서 희생당한 분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그들의 이름을 찾는 과정 또한 소개한다. 아직까지 태평양 전쟁의 희생자 유해 봉환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