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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Shostakovich, Symphony No.7 in C major Op.60 `Leningrad`)

Bawoo 2014. 3. 8. 00:42

Shostakovich, Symphony No.7 'Leningrad'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Pablo González, conductor

Barcelona Symphony Orchestra

L'Auditori Concert Hall

2010

 

Pablo González/OBC - Shostakovich, Symphony No.7 Op.60 'Leningrad'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나에게 있어서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는 항상 악보 작업에 선행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15개 교향곡들 가운데 이러한 언급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비교적 많은 편인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만큼 적확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1941년 나치의 침공을 받아 포위된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이 작품을 작곡했던 그는 “잠시 쉬는 동안 화가 나서 거리에 나가면 내가 이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회상했다.

분명히 이 교향곡에는 전쟁에 관련된 단상(침략의 주제나 탱크의 캐터필러 같은 기계적 음향들)이 등장하지만, 그 프로그램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이 교향곡은 대상에 대한 묘사적인 성격보다는 작곡가의 심리적인 표현에 가까운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1941년 6월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8월 29일 1악장을 완성했고 9월 17일에 2악장을, 그리고 3악장을 10월경에 마무리한 작곡가는 모스크바로 향하며 레닌그라드 음악원이 새로 자리 잡은 타시켄트에 들를 예정이었지만 10월 22일 쿠이비셰프(현재 지명은 사마라)에 내려 다섯 달 가량 머물게 되었다. 작곡가의 창조력이 끊긴 상황에서 마지막 악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12월 10일 이후 약 17일 동안의 작업을 통해 비로소 끝마칠 수 있었다. 1942년 3월 5일 쿠이비셰프에서 사무엘 사모수트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된 이후 위대한 애국 전쟁에 대한 진정한 찬가라는 프로파간다적인 성격 또한 부여받게 되었다. 작품이 워낙 서사적이고 영웅적인 탓에 지휘자 사모수트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합창을 덧붙이자고 작곡가를 설득했지만 묵살 당했다.

1. 1941년 성 이사악 성당 앞에서 대공포 무기가 레닌그라드 하늘을 방어하고 있다.

2. 1942년 텅 빈 레닌그라드 거리에서 죽은 아이를 묻으러 가는 부부의 모습. 이 기간 동안 약 100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레닌그라드를 약 900일 동안 포위하고 모든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이 기간 동안에 작곡하였고, 악보는 마이크로필름으로 해외에 보내졌다.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가운데에서도 가장 긴(약 1시간 20여 분) 편이다. 관현악 편성 또한 대규모를 자랑하는데, 여덟 대의 호른을 포함하여 각각 여섯 대의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를 비롯해서 세 대의 플루트(피콜로와 알토 플루트가 가세)와 두 대의 오보에 및 잉글리시 호른, 바순, 팀파니, 여섯 종류의 타악기, 두 대의 하프, 피아노, 60여 명의 현악 주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에 작곡가는 네 개의 악장에 ‘전쟁’, ‘추억’, ‘조국의 광활함’, ‘승리’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이내 지워버렸다.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도 처음엔 악장마다 부제를 갖고 있었지만 프로그램이 지시하는 고정된 의도로 인해 작품의 상상력이 저해 받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작곡가가 직접 삭제한 것에 비견할 만한데, 어찌되었던 이러한 특정한 프로그램을 없앰으로써 교향곡 자체에 대한 해석과 의미는 고착되지 않고 훨씬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

작곡가가 고향인 레닌그라드에게 헌정한 이 교향곡은 청중에게 이전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징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초연 이후 이 작품은 소련 전체에 널리 퍼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려니와 당 차원에서 해외에까지 적극 홍보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필름에 악보가 복사되어 테레한을 경유하여 서방세계로 전해진 이 교향곡 악보는 1942년 6월 22일 런던 심포니의 연주로 영국에서 초연되었고 7일 뒤에는 런던 프롬에서도 연주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과거 한동안 레닌의 이름을 따서 레닌그라드로 불렸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 교향곡의 악보를 받은 아르투르 토스카니니는 자신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7월 19일 뉴욕에서 미국 초연을 했고, 8월 14일에는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며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토스카니니가 7월 19일에 가진 방송 연주회 실황은 음반으로 제작되어 이 작품의 첫 번째 리코딩으로 기록되었다. 첫 번째 스튜디오 리코딩은 1953년 1월 7일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이다.

Valery Gergiev/MTO - Shostakovich, Symphony No.7 Op.60 'Leningrad'

Valery Gergiev, conductor

Mariinsky Theatre Orchestra

Konzerthaus, Wien

2010.12.04

1악장: 알레그레토

첫 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에는 고전적인 소나타 양식에 의한 두 개의 대조적인 주제가 등장하여 대비를 이룬다. 하나는 군대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군악대 시그널적인 스타일의 주제, 다른 하나는 조용하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거리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듯한 서사적이고 회화적인 에피소드다. 이 도입부의 마지막은 솔로 바이올린이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멜로디를 노래 부르는데 여기에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작은북이 오버랩이 되며 본격적으로 기나긴 발전부가 시작된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지휘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레브 루소브, 1980년 작품.

대단히 특징적인 이 발전부는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침략’이라고 명명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듣기에 어딘지 진부한 듯 보이는 호전적인 드럼 롤 주제는 악장 전체에 연속해서 11번이나 등장하는데, 점차 악기의 수가 증가되다가 곡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대단히 위협적이고 공포스럽게 확장해 나아간다. 이후 무려 15여 분이 훌쩍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서정적인 재현부가 등장하며 불확정적인 방치상태로 마무리 짓는다.

2악장: 모데라토 (포코 알레그레토)

두 번째 악장 모데라토(Moderato)는 쇼스타코비치가 기술한 것처럼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인터메초(intermezzo, ‘간주곡’이란 뜻)”이다. 일반 교향곡에서 스케르초 악장에 해당하는 이 악장은 “휴식 없이 지속되는 긴장감을 청자가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고정화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승리와 정의, 행복에 대한 절박한 승리를 갈구하는 느낌”을 상징한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처럼 일말의 유머도 포함되어 있다.

3악장 : 아다지오

세 번째 악장인 아다지오(Adagio)는 20여 분에 달하는 거대한 D장조의 느린 악장으로 자연에 대한 사랑의 비상이자 위대함에 대한 갈구이기도 하다. 코랄 풍의 패시지와 레치타티보적인 단편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 경건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펼쳐지는 이 느린 악장에는 예견치 못하는 포르티시모와 조바꿈, 변덕스러운 템포 변화, 거칠고 고양된 일종의 빠른 행진곡이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무질서한 에피소드들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장치로 인식된다. 다시금 코랄 풍의 주제로 돌아와 3악장은 평온한 결말을 맺는다.

4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마지막 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는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독일군을 피할 당시에 작곡된 것으로, 무수한 노랫소리가 허무한 듯 울려 퍼지며 전투를 묘사하는 듯한 격렬한 파괴의 아우성이 펼쳐진다. 그리고 점차 승리와 확신, 희생의 대가를 향해 질주하고 최후의 크레셴도와 승리의 노래가 금관의 비통한 절규와 함께 뒤섞이며 통렬하게 끝을 맺는다. 1942년 쇼스타코비치 사진. 그의 7번 교향곡은 스탈린의 폭압과 히틀러의 공격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곡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침략’의 에피소드가 나치 파시즘을 상징하는지 아니면 스탈린주의자들의 테러를 상징하는지 분명하지 않았지만 작곡가 사후 출판된 한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작곡가의 언급을 다루고 있다. “7번 교향곡은 전쟁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으로 단순히 히틀러의 침략에 대한 반응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히틀러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무한한 고통을 통감하는 동시에 스탈린에 의해 처형된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고문당했고 총살되었으며 굶어 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민했을 뿐이다…. 이 7번 교향곡은 나치에게 포위된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스탈린에 의해 이미 파괴되고 히틀러가 그저 마지막에 거들었던 그 레닌그라드를 위한 것이다.” 결국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전쟁 교향곡이라는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교향악적 레퀴엠으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추천음반

[음반] 레너드 번스타인/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DG

[음반]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USSR 문화성 심포니 오케스트라. Melodiya

[음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ECCA

[음반] 마리스 얀손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3.08.09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33014

 

출처 : 클래식 사랑방
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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