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지금 읽는 중인 "양들의 테러리스트"란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작품. 위 작품이 분량이 방대하고 활자가 작아 과연 끝까지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작품 내용 중에 익히 잘 알고 있는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나오길래 먼저 읽게 되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은 "점과 선", "제로의 초점"을 먼저 읽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발견 못 한 이유는 일본 문학 코너가 아닌 세계문학 코너에 비치되어 있는 걸 모르고 있던 때문이었다. 세계문학 코너는 20대 젊은 시절에 알던 작품도 많은 데다가 활자 크기가 작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안 찾는 곳이어서 발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위에서 말한 두 작품보다 가독성 면에선 조금 떨어진다. 작품 연보를 보니 이 작품이 제일 늦게 나왔는데도 느낌이 그랬다. 작품 발간 해가 58, 59, 61년 순인 데 이중에 제일 마지막 작품이다. 그런데도
전개가 좀 늘어진 느낌이어서 제일 먼저 나온 작품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책장을 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추리소설의 특징인 뒷얘기가 궁금하여 계속 읽게 되는 면에서 좀 떨어진다는 쪽. 아마 작가의 후예(?)라고 자, 타칭한다는 현재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 중인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마유키의 작품을 먼저 읽은 탓일 것이다. 또 작가의 전작 점과선이나 제로의 초점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 "짐승의 길"을 조금 읽어보니 역시 같은 느낌인 걸 보면 사회파 추리소설이 아직 본격적으로 정착한 시기가 아니었던 때문 어닌가 싶다.
작품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해 온 50대 중반의 전직 경찰 "미키 겐이치"란 인물이 살해당한 모습으로 출발을 앞둔 조차장 내 열차 사이 철도 레일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채 발견된다. 이를 주인공 격인 이마니 에이타로란 40 중반의 고참 형사가 집요하게 추적하여 결국 범인을 잡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복잡한 복선을 깔고 전개된다. 공간적 배경은 도쿄를 중심으로 하여 도호쿠 , 오카야마 지역을 아우른다. 수사에는 에이타로 요시무라란 젊은 형사가 조연으로 나온다. 주연인 이마니 에이타로가 아끼는.
살해당한 장소는 도쿄인데 범인을 추적하느라 도호쿠 지역, 오카야먀 현 지역 벽촌까지 찾아 다닌다. 범인은 잘나가는 전위 음악가 와가 에이료-이하 와가로 줄임-로 밝혀지는데 이 인물은 아버지가 문둥병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가고 본인은 자신이 살해한 미키 겐이치의 보호를 받다가 도망쳐 지내다가 음악적 재능이 발견되면서 빛을 본 케이스인 인물이다. 나이는 30대 초반. 약혼자는 전, 현직 장관인 다도코로 사게요시란 인물의 딸이고 이 딸이 살인범 와가를 더 좋아하는 설정이다. 당연히 음악적 재능을 좋아해서. 출신을 안 따지고 재능만 높이 산다는 점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시 천인 취급을 받던 조선 도공을 끌고가 사무라이 대우를 하면서 도자기 기술을 발전시켜 유럽에 수출, 국부를 이룬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었다.
살인범 와가는 어쩌면 은인일 수도 있는 미키 겐이치를 살해한 것인데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자신의 과거가 탄로 나 앞길이 막힐 걸 지레짐작으로 두려워 한 때문이다. 사실 피살자 미키 겐이치는 자신의 노후 여행 과정에서 극장에 걸려있는 사진 속에 있는 살해범 와가를 우연히 발견하여 반가운 마음에 만나보러 당초 여행 예정에는 없던 도쿄로 일부러 간 것인데.
이 와가는 극단 사무직원인 나루세 리에코란 아가씨와 연인 관계인데 아가씨가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설정이다.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데 이유는 연인 와가가 미키 겐이치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생긴 피 묻은 옷까지 처리-옷을 조각내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날려 보낸다-해주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인 걸 알고 절망해서이다. 이 아가씨는 같은 극단 소속 배우인 미야타 구니오의 사랑을 받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우 미야타 구니오는 살인범 와가와 자살한 미야타 나루세 리에코와의 관계를 형사 이마니시를 만나 얘기할 예정이었으나 길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은 채로 발견된다. 수사 결과 원인은 살인범 와가의 전위음악 때문이었다 . 한편 와가와 함께 누보 그룹에 속해있는 평론가 세키가와 시게오는 술집 여종업원 미우라 에이코와 연인 관계인데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있는 관계상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심한다. 그런데 이 에이코가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고 이번에는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유산시키고자 누보 그룹 동료이기도 한 살인범 와가에게 음악을 이용하여 유산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결과, 유산에는 성공하지만 의도치 않게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고 만다. 간접 살인인 셈인데 전위 음악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는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작가의 착안에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많이 들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소음성 음악이 음악의 한 장르로 인정받는다는 건 내 생각엔 좀 아닌 것 같다. 무조 음악[無調音樂]을 만든 아르놀트 쇤베르크 (Arnold Schönb)란 음악가가 처음엔 혹평을 받았으나 나중엔 인정받은 그런 케이스일까? 아무튼 전위 음악가로 인정받아 앞길이 탄탄하게 열려있으나 자신의 과거가 탄로날 것이 두려워 살인을 한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결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앞날이 탄탄대로로 열려있는데 말이다. 그래도 살인을 해서 발각되었을 경우 앞날 자체가 망가지는 것인데 - 작가는 이런 상황에 이르는 것을 제목 "모래그릇"으로 나타낸 것 아닐까 싶다- 그리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결과가 다 무위로 돌려진다는 공포감이 더 컸을 수도 있겠다. 피살자 미키 겐이치는 벽지에서 경찰생활을 하면서도 드물게 선한 일을 솔선해서 한 설정이니 자기가 잠시나마 돌봤던 한 아이가 성공하여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게 너무 반가워 순수한 마음으로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인자 와가 입장에서는 결코 만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신분 세탁까지 철저히 했는데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고 찾아오다니. 작가는 이런 점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에 대한 고민도 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무리 선의일지라도 상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성격이라면, 더구나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깡그리 지워버려야만 했던 숨기고 싶은 그런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나라도 살의를 품게 되지 않았을까? 설사 그것이 모래 그릇이 되어버리는 원인이 될지라도.
[참고] 이 작품 바로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라는 작품에는 자신이 살인범이 아니면서 살인범이 되고자 했던 이유를 진술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이 작품은 살인범 "와가"가 공연차 미국에 가는 공항에서 잡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살인범 와가의 심경 고백은 들을 기회가 없는 채로. 체포 당시 '표정 변화는 없이 눈가에 물기가 맺혀있었다.'는 문장으로 대신하고서.
작가의 표현 방식의 차이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조와 박쥐처럼 진술 형식으로 힘겹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방식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지금도 한창 현역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배 마쓰모토 세이초의 기법을 공부해서 자기 작품을 쓰는 것일 테니 비유 자체가 모순이기는 하다.
2. 내가 읽는 추리소설은 현재로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로 제한하고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 부득이한 방식이다.
소설의 경우 작중 등장하는 인물이 살아가는 시간, 공간적 배경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때 일본의 사회상을 알게 되는 게 내가 일본이란 나라를 알고자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경우 한국전 특수가 끝난 1954년에 중소기업이 무더기로 도산했다는 내용과 산간벽지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난하게 사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
일본은 한국전 특수에 힘입어 나라가 본격적인 발전 단계로 접어들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데 그 이면에는 도시, 농촌 간의 빈부 격차가 그대로 존재했었다는 거 아닌가. 하긴 현재 경제 2위 대국이 된 중국도 도농간 빈부 격차가 문제라는 걸 보면 나라가 부유해져도 빈부 격차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릿고개 (보리고개)라는 춘궁기(春窮期) 시절이 있었다. 내 나이 또래는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못 가고 국민(초등)학교만 나온 아이들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그랬다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한국전 특수 후에는 베트남전 특수까지 누려 발전한 나라 아닌가. 나라가 아무리 부강해져도 이 혜택을 못 받는 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역설적인 증거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호들갑(?)인 내용이 책이나 방송, 유튜브에 많이 보이는데 이 넘사벽이었던 일본도 개인의 가난은 다 구제하지 못했다는 얘기 아니던가.
그것도 에도막부 시절도 아니고 패전 후 고도 성장기로 접어들어 있던 시기에.
내가 일본에 대해 알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이런 거였다.
40 중반 나이인 주인공 형사가 박봉에 시달린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 나이 정도면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최빈국이던 우리나라도 아니고 독일과 2위를 다투던 나라 아니던가
그런데 40중반 나이에 박봉이라니 이해가 안 되었다.
* 당시 일본 사회상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은 아래 출판사 소개글을 참고 바랍니다. (개인적으론 동의하기 어려운 해설이지만.)
[책 소개 및 출판사 서평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발췌. 전문은 책 제목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모래그릇』 제1, 2권.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로, 다섯 번에 걸쳐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0년을 배경으로, 신원불명의 시체와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 전후(戰後)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저항
『모래그릇』의 배경인 1960년, 일본은 총체적으로 혼란스러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은 큰 변화를 맞았다. 국토는 황폐해졌으며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 직후 한국의 6ㆍ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특수 및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의 경제가 극적인 호황을 맞는다. 패전 직후의 혼란과 갑작스러운 경제 부흥으로 인해 사회는 비정상적인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부패로 물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1960년은 이른바 ‘60년 안보’ 시기로,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연일 수만 명이 데모행진을 하며 국회를 포위하는 등 기득권층과 젊은 계층 사이에서 뜨거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전쟁의 후폭풍과 비정상적인 계층간의 격차로 인해, 사회는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폭력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를 그렇게 몰아간 역사적 배경과 그런 사회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모래그릇』의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는 범인의 검거라기보다, 그가 살인까지 저질러야 했던 까닭인 당시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고발이다.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차별하는 입장으로 전환되기를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등장인물을 통해, 부패하고 권위적인 기성세대와 무조건적으로 기존 관념을 비난하는 경박한 전후세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전차 조차장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체. 이 작품은 한 살인사건에서 시작해서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사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그로 인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모래그릇』이 세이초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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