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늘 이용하는 지역 도서관의 일본문학 코너에 가면 주종[主宗 ]이 추리소설이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의 독서 취향에 맞춰 출판된 때문 아닐까 싶다. 어차피 출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성을 띌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짐작하자면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이 없으니 시대의 아픔을 겪는 큰 고통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오기 어려운 여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일본 국내 사정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타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잘 읽는 책 위주로 출판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다보니 추리소설 위주로 출판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뭐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소설 코너하고 비교해 볼 때 그런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각설[却說], 일본 추리소설 중에도 가장 눈에 많이 뜨이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다른 작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다. 그 이유를 우리나라 독자들이 그만큼 좋아하는 내용의 작품을 쓰는 때문으로 이해했다. 당장 나만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보게 되니까. 뭐 그렇다고 이 작가의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나온 지 오래되어 다른 독자의 손때가 많이 묻은 작품은 일단 피하고, 새로 증쇄해서 나온 작품일지라도 읽다가 지루해서 포기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몇 권 읽은 경험으로는 일단 믿고 읽게 만드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놓은 것은 틀림없다. 이 "백조와 박쥐"라는 작품도 읽으려고 벼르던 작품 중의 하나였으니까. 다른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빌리기 쉽지 않았는데 운 좋게 한 권이 남아있어 빌려와 이틀에 걸쳐 읽어냈다. 활자 크기가 좀 작은 편이라 애를 먹지 않았으면 아마 이튿날 아침까지 읽어서 완독 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를 흡입력있 게 한다. 뒷얘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게 한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구나 새삼 감탄할 정도로.
*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랬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양심 바르게 약자의 편에서 살아온 한 변호사가 살해된다. 55세인 시라이시 겐스케란 인물. 범인은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66세의 구라키 다쓰로란 인물이다. 아내와는 사별했고 유명 광고회사에 다니는 아들이 한 명 있다. 20대 후반인 가즈마란 이름.
살해한 이유는 30여 년 전 악덕 사기꾼-하이타니란 이름-을 자신이 살해했으나 다른 사람이 대신 누명을 쓰고 자살하는 바람에 그 가족 -모녀와 손자. 손자는 나중에 나오나 진짜 살인범이다 게다가 고작 14살 소년-이 힘겹게 살아온 걸 우연히 알게되어 자신의 사후 재산을 유증 하려고 한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 변호사가 살아있을 때 사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으려고 대기 중인데 양가의 아들, 딸-가즈마, 미레이란 이름-이 이를 믿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면회조차 피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데다가 평소 보고 느낀 아버지의 삶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가해자 아들은 아버지가 형사, 변호사에게 했다는 말을 믿지 않고 피해자의 딸 역시 아버지가 살해당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추적해 본 결과 30여년 전 악덕 사기꾼을 살해한 건 피살당한 변호사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피해를 입은 할머니를 대신해 배상을 요구하러 갔다가 다툼이 생겨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 것이고 이를 목격한 아들의 아버지는 이를 모르는 척하는 바람에 전혀 엉뚱한 사람이 살인자로후쿠마 준지라는 이름- 잡히고 심문을 받는 와중에 억울하다며 자살해 버린다. 여기에는 당시 경찰의 잘못도 있으나 가장 큰 책임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은 아들의 아버지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자살한 남자의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확인하면서 자기가 한 사람을 구해준 탓에 다른 사람들이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안고 힘들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이 사실을 실제 살인자였던 변호사에게 알려주고 자신은 이 가족을 도와주는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유언으로 남겨줄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는 이미 모녀에게 자신이 경찰에 사실대로 밀하지 않은 탓에 힘든 삶을 살게했다고 무릎 꿇고 사죄했고 모녀 특히 딸-요리에란 이름-은 이 남자에게 연심 비슷한 마음까지 가지나 남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도 많은 데다가 암에 걸려 오래 살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딸은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살인범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시댁의 강요에 못이겨 이혼을 하고 아들도 남편에게 딸려보내 가끔 만나는 관계로 지내는데 이제는 14살짜리 중학생이다. 안자이 도모키란 이름.
구라키 다쓰로는 이 딸에게 변호사 얘기를 메일로 보내 알려주는데 이 메일을 중학생 아들이 우연히 보게 된다. 결과,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인물이 변호사인 걸 알고 살해할 결심을 하고 실제로 결행한다. 이를 안 구라키 다쓰로는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모녀에게 속죄하는 마음에서이다. 평생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변호사도 순순히 살해당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해 인물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상태로 차를 운전해 살해장소를 벗어나서 죽는다. 그러나 아들과 딸의 노력으로 진범은 14살짜리 중학생임이 빍혀진다. 여기에 당연히 고다이란 이름의 형사가 가세.
작품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선한 면이 부각된 작품이다. 유일한 악인은 피살된 변호사에게 살해당한 하이타니란 악덕 사기꾼(금융업자)뿐이다. 뭐 이 한 놈 때문에 이 대작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선한 면만 부걱되어 있다. 굳이 한 명 더 꼽자면 변호사를 실제로 죽인 14살짜리 중학생이다. 외할아버지가 살인범으로 알려진 탓에 부모가 이혼하고 계모 밑에서 별로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는. 그러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학생들이 두려워서 피했다는 설정이다. 이 미성년 소년을 촉법소년에는 해당하지 않는 나이라 형사 재판을 받게 되는 설정인데 특이한 건 복수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살인에 매력(?)을 느끼는 이상 성격으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작가는 이 중학생을 통해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부각하려고 한 건 아닐까 싶었다.
[참고] 워낙 인기가 많은 작가인 때문인지 책 소개의 출판사 서평에 특별한 내용이 없군요. 서평만 봐도 작품 내용이 뭔지 대강 짐작이 갔는데. 대신 책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이 압권입니다.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먼저 이 글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책 속으로
“구라키 씨가 뭔 사고라도 쳤어?”
“그건 아직…….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얘기를 듣고 다니는 중이죠. 여기도 그렇고.”
“그러셔? 어떤 수사인지는 모르겠는데 구라키 씨를 의심하는 거라면 잘못 짚으셨어.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리가 없거든.” 요코는 딱 잘라 말했다.
참고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고다이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요코가 한 말에서 뭔가 걸리는 게 감지되었던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_58쪽
미궁에 빠진다…….
구라키의 자백은 수많은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수수께끼가 남아 있었다.
어째서 구라키는 33년 전에 체포되지 않았는가, 어째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원래는 사체 첫 발견자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구라키 본인도 그저 잘 모르겠다, 라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정말 미궁에 빠지려는 사건을 해결한 것인가. 어쩌면 새로운 미궁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가…….
자꾸만 밀려드는 의심을 고다이는 애써 떨쳐내고 있었다. _106쪽
“방금 전에 이번 사건의 유족분들께 사죄드리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과거 사건의 유족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역시 사죄할 마음이 있습니까?”
“그야, 네, 물론입니다.”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난바라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가즈마는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찰 발표에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과거의 사건’이라고 했을 뿐, 살인 사건이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금 가즈마가 했던 말은 살인 사건이라고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감쪽같이 유도질문에 걸려든 것이다. _175쪽
나도 똑같은 눈빛인지 모른다, 라고 미레이는 생각했다. 범인이 자백을 했고 이제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졌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리고 그 진상을 바탕으로 재판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진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이 세상에 어머니와 자신뿐이라고 미레이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가해자의 가족도 역시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_274쪽
“그래, 맞는 말인데 그 두 사람은 특수한 경우야. 공통의 목적이 있었어.”
“뭔데요, 그게?”
“둘 다 사건의 진상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점이야. 분명 또 다른 진실이 있다, 그것을 꼭 밝혀내겠다, 라고 마음먹고 있어. 그런데 경찰은 이미 수사는 끝났다는 식이고 검찰이나 변호인은 오로지 재판 준비에만 골몰했지.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으로 서로 적의 입장이지만 오히려 그 둘의 목적이 같았던 거야. 그렇다면 한 팀이 되기로 한 것도 실은 이상할 게 없어.”
“그런가요……라기보다 아무래도 선뜻 이해하기는 어렵죠. 나는 그 기분, 잘 모르겠던데요.” 나카마치는 두부를 입에 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얘기잖아요.” _420~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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