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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어두울 수 없는 밤:윤찬모

Bawoo 2024. 6. 13. 11:42
저자:윤찬모, 출간:2022.7.20.
 

[소감] 일제강점기, 해방 후 혼란기, 한국전쟁기에 양평지역에서 나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일제 강점기 항일 사회주의 활동한 이야기와 한국전쟁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수작이다. 우리 작가가 쓴  그리 안 알려진 작가- 내 기준이다-의 읽을 만한 작품을 고를 때마다 애를 먹는데 이유는 기본기도 안 된 작품도 있을 적이 많기 때문이다. 또 설사 기본기가 되어 있을지라도 서사 스케일이 큰 작품을 찾는 나의 독서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별 기대 않고-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포기-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궁금하여 도서관에 구입해서 빌려달라고 신청한 것인데 뜻밖에도 놀라운(?) 작품을 발견한 것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사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처럼 극심한 혼란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후 현대사는 남한만의 합법 정부가 있는 범위내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동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없었고 국가권력을 쥔 소수의 집단(인간)들이 이를 오남용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 정도(?)여서 서사 스케일이 큰 소재를 쓰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 후 혼란기 특히 전쟁기에는 좌우 갈등이 극심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역사는 말하고 있다.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 초에 태동한 사회(공산)주의 활동에 있는 것일 테고. 보다 도 깊은 이유는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빈부 격차에 따른 못 가진 자들의 사회적 불만이 폭발하는 일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양평 지역에서의 북한 측에 의한 학살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반대 이야기도 곁들여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특에서의 학살이 먼저 일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군이 남한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기간은 100여 일 남짓- 남침일인 6뤌 25일부터 서울수복일인 9월 28일로 계산- 하다.  그런데 양평 지역은 북한군이 너무 일찍 점령하는 바람에 남한군(국군 및 경찰)에 의한 보도연맹원 학살 같은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북측에 선 사람들에 의한 우익 쪽 인물들에 대한 학살이 먼저 벌어진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양 쪽 희생자 합해서 700여 명인 것으로 나온다. ("양평 지역 학살 사건"으로 검색해도 안 나오는 거로 보면 공식 기록에는 빠져있는 것인가?)
그런데  중심인물들이 일제 강점기에 항일 독립운동으로 일컬어지는 사회(공산)주의 활동을 한 인물들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인물들이 가세한 것으로 나온다. 작품에서는 이들 항일운동을 한 인물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꽤 상세하게  나오는데 양평지역의 좌익활동이 그만큼 활발했었나 보다.
 
작중 등장하는 인물은 뚜렷한 주인공이 없다. 많은 인물이 조금씩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이중에 굳이 고르자면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청년들과 대척점에 서있으면서 격렬하게 비판, 반대하고 항일운동을 하다가 옥살이까지 하는 한 장로, 선량한 지주에 속하는 황 토주, 며느리 한 씨. 머슴 황감수(깜수), 한씨와 황감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재평, 대한청년단 부단장을 하는 김범수와 그의 부인 마순 그 사이에 낳은 아들 정인.. 백정 백도수와 그의 아들, 딸 세 명-바지랑, 바구니, 백마순.  국밥집 망글네와 갈막생. 둘 사이에 낳은 망수, 좌익활동은 한 조진창(조서구)과 그의 아들 당이-정인과 국민하교 동창-랄 수 있겠다. 
이 외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얘기하려고 한 건 일제강점기의 좌익활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  해방 후 혼란기 특히 한국전쟁기에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북한 측에 비판적인 시각에 중점을 두고 전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다 더 큰 이야기는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뿌리깊은 갈등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는 인간의 야만성에 의한 것이고.  작품 내용에 따르면 양평 지역은 한국전쟁시 북한군이 너무 빨리 내려오는 바람에 보도연맹 사건 같은 우익에 의한  좌익 학살은 없었고 북한군 패퇴 후 우익에 의 한 좌익 학살이 벌어진 곳인데 1951년 1.4후퇴 당시 양평지역이 재점령되었는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중공군이 패퇴한 지평리 전투가 양평 지역의 외곽인 것으로 보아 재학살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는 한다.   
작가는 작품 끝부분에 좌익 활동을 했던 조진창, 갈막생의 아들 당이와 망수가 나라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진보 쪽 활동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존 인물인지 알 수 없으나 작가의 친 보수성향을 드러낸 것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근래에 드물게 빠져 읽은 수작이다.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참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목이평"이란 지명은 "양평"의 파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색해도 나오지는 않는군요. 양평지역에서 있은 북한군이 저지른 양민학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내용의 정확성(?)으로 보아 기록으로 남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보입니다. 북한군(인민군)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 북으로 쫓겨가면서 납북, 학살을 저지른 것은 기록으로 많이 나와있으니까요.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은 아래 책소개, 책 속으로, 출판사 서평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특히 출판사 서평은 필독 추천합니다. 
 

책소개

우리 모두에게 앞날은 훤히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므로 밤과 다름없는 어둠이다. 윤찬모 작가의 장편소설 『어두울 수 없는 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느 곳으로든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선택을 강요당한다. 선택은 자유로우나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을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길로 흩어지고 같은 길로 뭉쳐나간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윤찬모

저자 : 윤찬모
경기 양평 출생.
2009년 월간 《문학저널》에 단편 「잠을 먹는 꿈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단편집 『잠을 먹는 꿈이』 외 다수의 단편과 중편 『미끼』, 장편 『여울넘이』, 『구름 속에 잠수함』, 『조선의 발바닥』( 2016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별종소리』(제39회 일붕문학상 수상), 『어두울 수 없는 밤』 등을 발표하고, 양평군 양강(楊江)의 향토사록인 『양강유록』을 편술함.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작가의 말

1부

야소귀신
사형집행선고문
망글네 국밥집
붉은 독립
적색농민

2부

올챙이탕
갈문산 구름봉
어두울 수 없는 밤
마른 뼈들의 숨소리

3부

달나라 바 씨
돼지수용소
애연카페
늙어가는 기억들
해골공원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야소귀신

목이평 땅을 꿰뚫어 흐르는 강을 앞에 두고 갈문산 삼태골 밑에는 드넓게 펼쳐진 논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심는 건 사람의 일이고 키우는 건 하늘의 일이라서 농사는 땅과 하늘의 시절궁합이 맞아야 곡식을 낳는다고들 했다. 비는 스스로 오는 게 아니고 하늘이 땅에게 내려주신다고 하는데도 모두들 비, 당신 스스로 이 땅에 내려오시기만 고대하고 있었다. 주봉인 갈문산 줄기에서 구름봉, 가말봉을 타고 이어 내린 삼태골 아래, 양강을 내려다보는 평말·빈들·새마니 삼동에는 만석지기, 혹은 천석지기들 몇몇만이 주인 행세하는 전답을 수십 년 동안 일백여 소작인들이 얻어 부쳐 먹고 있었다.
가말봉 아래로 삼동 가운데에 펼쳐진 너른 들은 삼태골에서 내려오는 물만으로는 어림도 없어 해마다 물이 귀했다. 올해도 곡우에 하늘에서 못자리 돕는 비를 찔끔 주고 난 후로 이슬비 한 번 안 내려, 벼 포기가 벌기도 전에 애지(愛池)는 바닥을 드러내고 우렁이 잡는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가말봉에서 불어 내리는 마른 바람은 벌써부터 잔뜩 심술이 나 있었는데 아직 아무도 그 눈치를 채지 못했다. 물이 잦아드는 애지 아래 논자리로 모여든 사람들은 물기 없는 들판을 보고 한숨지으며 멀찌감치 떨어져 인정머리 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안타깝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탈져 멀어보였지만 애지에서 강변까지는 불과 한 달음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무슨 방도가 있을 거여. 바로 밑에 강물이 흐르는데 벼 포기가 이렇게 목이 말라 죽는다니. 벼들이 너무 억울해서, 원.”
집게손으로 눈곱을 떼어 비비던 평말의 덴동네가 말문을 열었다.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다 갑자기 터져 나온 불에 슬쩍 끄슬렸다는 얼굴이 울퉁불퉁했다.
“하늘이 미쳐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조화를 부린다면 모를까 저 물을 예까지 무슨 수로 퍼 올린다고.”
핀잔을 주는 쪽은 빈들의 까우기다. 아침이면 가죽나무 근처로 몰려와서 빙빙 돌며 까욱거리는 까마귀 같은 얼굴에 이름을 붙여 삼동 사람들은 그를 까우기라고 했다. 덴동네가 거친 얼굴을 하늘에다 내보인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순 읎지. 기우제라도.”
기우제라니. 가뜩이나 마른 인심에 제물조차 추렴이 어려웠다. 미꾸라지 잡던 웅덩이고, 물 길어 먹던 샘터고, 물이라는 물은 모두 퍼다 논에 부었지만 모래사장에 물 들어붓기였다. 뿌리라도 적셔보려고 못자리에 붓는 물은 쩍쩍 갈라지는 틈으로 흔적도 없이 스며들고 말았다. 덴동네가 돌아서서 허리끈을 풀러 고의춤을 펼치더니 세찬 오줌발을 갈라진 논바닥에 쏟아냈다.
“이거라도 먹고 목 좀 축여라.”
“쯧쯧쯧, 간기가 너무 세서 어쩌누. 세상이 다 가물어도 저놈에 오줌보에선 장마가 지는구먼.”
다시 바지를 여미고 허리끈을 매며 사추리를 움츠려 진저리치는 덴동네의 엉덩이를 보고 짖어대듯 깐죽이는 쪽은 까우기다. 한 바가지도 못되는 오줌만으론 어림도 없다. 밤새 바람이라도 강에서 빈들 쪽으로 분다면 축축한 기운을 머금고 올 테지만, ...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우리 모두에게 앞날은 훤히 내다볼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므로 밤과 다름없는 어둠이다. 윤찬모 작가의 장편소설 『어두울 수 없는 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느 곳으로든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선택을 강요당한다. 선택은 자유로우나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을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길로 흩어지고 같은 길로 뭉쳐나간다.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바른 길이 어떠한 길이었는지, 전쟁을 겪으면서 떼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또 다시 앙갚음하는 비극의 싹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이제부터 또 어디를 향해 발길을 내딛어야 할지, 작가는 독자를 의문의 굴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누구에게나 과거를 인식하는 방식은 어마어마했던 사건의 휘몰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에 따라 각자 다르다. 지금에 와서 한쪽의 눈으로 다른 한쪽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러 사건의 단면을 함께 보고 듣고 겪었으면서도 그때를 바라보았던 때와 각도에 따라 평생 고착된 과거를 안고 살아간다. 옳은 길은 분명 하나일 텐데 왈가왈부로 갈팡질팡, 자신 앞에 길이 꽃길이면 옳은 선택이고 수렁이면 헛짚은 발걸음이었을 터이다

밤눈이 어두웠던 사람들은 암흑 같은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무조건 앞을 향해 걸었으나 그 길이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다고 앞장 섰던 사람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그 당시로부터 머나먼 미래였던 현재에도 앞을 향해 더듬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각자 어두운 밤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주든 소작농이든 목이평의 너른 들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자기네들 방식으로 바꿔보겠다고 혈기부리는 혁명적 젊은이들, 또는 그 맞은편에서 또 다른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의 대립 속에 뒤집고 뒤집히며 살아가는 모습은 요즈음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렷이 기억해야 할 일은 자기네 방식의 질서를 세우면서 자행되었던 적대적 살육전이다. 전쟁은 정치의 최후 수단이라고 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다른 쪽의 사람들은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는 잔인한 심보로 일으키는 위험한 장난질이 전쟁이다. 죽임이 허용되는 게임에서 선수가 아닌 응원 관중들이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응원단은 자기편이 아니었으므로 적과 동일시했다. 이겼다는 무리 중에서도 또 다시 상대편은 생겨나기 마련일 텐데도 말이다.

요즈음 세상도 만만찮아 이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을 먼 옛날 지나간 이야기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후세는 선대가 살아온 삶과 죽음과 회생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언젠가는 또 다시 파고들게 마련이다. 당장은 어둡고 혼란스럽더라도 이제부터는 제대로 살아나는 길을 찾기 위하여 성숙한 과거 인식이 더욱 필요해진다.
이야기는 일제 때 겪었던 상황과 해방 이후 전란에 이르는 과정, 전후 세대가 과거를 기억하는 모습을 모아 3부로 구성되었다. 어느 곳을 먼저 읽든지 세 부분을 따로 읽어도 시대적 구분이 명확하여 이야기의 매듭은 지어질 것이다.

황 토주 일가를 중심으로 한 목이평 들판의 한 씨와 감쇠와 백 도수의 이야기, 한덕리 장로를 중심으로 벌이는 관아 것들에 대한 통쾌한 보복과 핍박, 농민들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선 송대와 정출의 상반된 생각들. 그 주변에서 많은 젊은이가 함께 했지만 그 후로는 오리무중이다. 또한 망글네의 뒤를 이은 백마순과 갈막생이 터 잡고 살아가는 장터거리 풍경, 조진창과 김범수의 악연, 석문자가 이뤄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면 작품 속 사건들은 실제와 허구의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독자를 미혹에 빠트린다. 후세는 새롭게 세운 나라에서 선명한 흉터 자국을 추적하면서 당시의 깊었던 상처의 아픔을 떠올린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을 그르칠까 봐 끝내 목이평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지만 읽고 나면 윤곽은 드러난다. 쉬지 않고 전개되는 사건의 연속은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의문으로 남겨둔 부분과 비어있는 곳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의 상상에 맡긴 듯하다. 올 여름에 더위를 식히며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쉿! 목이평에 어두울 수 없는 밤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 어마어마한 밤을 지켜야 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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