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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Bawoo 2013. 5. 14. 23:19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엄마 엄마 내 죽거든 뒷동산에 묻어줘/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줘….” 어렸을 때, 아무런 의미도 모르면서 따라 부르던 구전 노래였다. 고무줄, 공기놀이에 불려졌던 노래가 미국 포크송인 ‘클레멘타인’의 곡조를 따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유년이 끝난 한참 뒤인 고교 시절이었다. 빨간 미니스커트의 영문과 여자 교생 선생님이 칠판에 가사를 써놓고 우리를 따라 부르게 했다. 짓궂은 뒷자리 머리 굵은 친구들은 일부러 음정을 엄청 틀리게 불렀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교생 선생님은 송골송골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가르치기에 열심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붉은 벽돌 교실 옆에는 아카시아 꽃들이 하얗게 늘어지고, 그 향기가 창문을 넘어오던 어느 오월, 까까머리들은 교생 선생님의 맨손 지휘에 맞추어 목청껏 이 노래를 불렀다. 장난기 속에 시작했다가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로 이어지며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달할 때쯤이면 어떤 녀석들은 제 풀에 눈시울도 조금 붉어졌다. 그랬다.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애잔한 멜로디와 슬픈 노랫말로 인해 노래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로 시작되는, 한국인의 정서에 딱 떨어지는 우리말 가사는 음악가 박태원이 번안해 보급했다. 그는 ‘오빠 생각’으로 유명한 작곡가 박태준의 친형으로 ‘스와니 강’과 함께 3·1운동 직후 이 땅에 소개했다고 전한다.



 노래 탄생의 실제 역사도 구슬프다. 1849년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 왔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노래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포티나이너들은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대부분 목숨을 잃게 된다. 삶과 바꾼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라는 자조적인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는 그럴듯한 분석도 나와 있다. 노래는 1849년을 기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민초들의 허망한 꿈과 피땀을 담고 있다. 골드 러시와 맞물린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아픈 이면사다. 금을 찾으러 흐르는 강물을 휘저었던 광부들의 신음 소리는 흔적이 없고 노래만 찬란한 금빛으로 남아 그 시절의 역사를 전한다. 그래서 ‘조 몬태나’라는 전설적인 쿼터백을 품었던 미식 축구팀 ‘샌프란시스코 49ers’의 이름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 노래에 깔려 있는 철학은 노다지, 즉 금이다. 금은 아득한 시절부터 끔찍이도 인간의 사랑을 받아 오면서 또 화폐의 지위도 놓치지 않았다. 지폐와 동전이 등장하면서 때로는 뒷방 늙은이 신세로 물러나기도 했지만 늘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가공할 힘을 감추고 있다. 금은 콜럼버스나 마르코 폴로 등 탐험가들을 움직였으며 이른바 ‘보난자’의 환상을 인간에게 심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금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가 된다.



 그러나 금에 관한 뉴스가 들리면 세상이 하수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은 대개 긍정보다는 부정의 역사와 함께한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이 금부터 챙기는 것처럼, 금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불가사의한 존재다. 박근혜정부가 지하경제를 손본다고 하자 은밀히 금괴를 찾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상속과 증여의 수단으로 금괴가 대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금값은 간헐적으로 움직이지만 진폭이 엄청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괴를 찾는 부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금괴를 찾는 이들은 알아야 한다. 굳이 미다스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금과 관련된 모든 얘기들은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금맥을 찾던 늙은 아비가 후회 속에 죽어가며 딸을 애타게 부르던 노래가 바로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다. 오월이 가고 있다.



김 동 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출처: 중앙일보] [삶의 향기]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서강대 김동률 교수가 5/14일자 중앙일보 28면-오피니언-에 게재한 글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늘 불렀던 "클레멘타인"이란 노래가 만들어진 유래-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와 우리 말 가사가 만들어진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결론은 금과 관련되 이야기로 맺고 있습니다.박근혜 정부의 지하 경제 뿌리뽑기 정책때문에 야기되고 있는 부유층들의 금 사재기가 결코 좋은 결과를 빚어 낼 수 없다는 경고성 내용도 있고요.

 

*제가 이글을 추천하는이유는 클레멘타인이란노래에 얽힌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어서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원문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판에 실려 있는 원문 전체를  제 블로그로 옮기는 시도를 해봤으나 컴 지식이 부족한 탓으로 실패했습니다.혹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원문 전체를 옮겨 놓을까 합니다만..에구구!

 

[2020. 7. 12 일요일 밤에 발견하고 검색하여 원문을 복사해 실었습니다. 그새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