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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승리의 저주, 패배의 축복

Bawoo 2014. 7. 3. 05:37
이번 브라질 월드컵 대회의 특징은 우승후보로 예상되던 유럽 최강팀들이 어김없이 탈락했다는 점이다. 스페인·잉글랜드·포르투갈·이탈리아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과거 식민제국주의 열강들이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거의 모든 남미와 필리핀을, 과거 대영제국은 지구상 육지의 4분의 1을 지배했고, 포르투갈은 월드컵 주최국인 브라질을, 이탈리아는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21세기 들어 경제가 나빠지고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국민들이 점차 극우성향으로 기울어지는 나라들이란 것이다. 비록 조별리그를 통과했어도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패자(覇者)들의 몰락이 축구에도 나타난 것일까.

 승리라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이 아니고 패배가 반드시 저주만은 아닌 것 같다. 승리한 자, 그것도 번번이 승리한 자는 오만해지고 자기 성찰을 등한히 하게 되는 법인 반면에, 매번 진 자는 항상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되는가 고민하고 자기를 혁신한다. 스페인·이탈리아는 이미 경제위기 상황에 몰렸다. 프랑스와 영국도 극우정당이 제1당으로 기승을 부릴 만큼 경제사회 위기가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극우든, 극좌든 그 양쪽 끝은 시궁창이다. 한 나라가 극단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은 국민이 공포와 불안에 싸여 있다는 증거다. 지금은 극우 정당들이 이런 국민 심리를 악용해 증오와 포퓰리즘의 악성 바이러스를 마구 뿌려대는 것이 오늘의 유럽, 특히 과거 식민지배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스스로의 개혁을 등한시하고 모든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반 EU, 반 유로화, 반 글로벌화, 반 외국인, 반 이슬람 등 세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에 비해 독일과 네덜란드는 자기 혁신을 통해 국가체질을 개선해온 나라들이다. 네덜란드는 80년대 말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을 통해

  ‘네덜란드 병(病)’을 치유했고, 독일의 경우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당 슈뢰더 총리가 2003년 ‘아겐다 2010’이란 복지·세제 개혁을 단행했다. 진통 끝에 2005년 선거에서 슈뢰더는 정권을 내놓아야 했지만, 뒤를 이은 기민당(基民黨) 메르켈 총리는 이 정책을 계승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지금 독일은 개혁의 열매를 거두어 기울어 가는 유럽 경제 속에서 네덜란드와 함께 독야청청하고 있다. 제1차·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가 오히려 귀한 약이 된 셈이다.

                                                    <출처: 중앙일보/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