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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표 '중국의 꿈'을 경계한다

Bawoo 2014. 7. 11. 11:0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중 발언에서 그가 북한을 제치고 한국을 먼저 방문함으로써 노린 것이 무엇인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미·일과 중국의 첨예한 힘겨루기에서 한국을 한·미·일 삼각안보구도에서 떼어서 중국 편에 세우려고 한다. 그의 ‘한국 먼저 방문’과 한국에서의 매력 공세는 난폭한 군사대국의 길을 질주하는 일본과 그 배후의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미국이 한국과 중국이 경계하는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행사 결정을 즉각 지지한 것도 시진핑의 한국 끌어안기 작업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직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을 대동하고 국가박물관의 상설전시전 ‘부흥의 길’을 참관한 자리에서 그가 꾸는 중국의 꿈에 대한 의미심장한 담화를 발표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이 근대 이후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한 꿈이다. 이 꿈에는 수세대의 중국인의 숙원이 응집되어 있다.”

 ‘부흥의 길’전은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중국인민들이 굴욕과 고난 속에서 일어나 민족부흥의 길을 실현한 발자취를 보여준다. 중국의 꿈은 내용상 잃어버린 청 왕조의 영토 부활의 꿈이다. 그는 서울대 연설에서도 중국의 꿈을 말했다. 그는 중국 구화산에 입적한 신라왕자 김교각, 당에서 벼슬을 한 최치원,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조선 지원, 백범 김구의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하나하나 거론하는 감언이설로 한국인들을 회유하면서 중국의 꿈을 팔았다. 병자호란과 6·25 때 중국의 개입으로 한국통일의 기회가 무산된 이야기를 쏙 뺀 것은 수상한 역사왜곡이다.

 중국의 꿈 실현을 전면으로 가로막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이다. 미국의 거듭된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를 중국 포위전략으로 인식한다. 시진핑의 방한과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하수인 아베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날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포위망의 아랫부분을 완성하는 안보외교로 미국을 지원하면서 환태평양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높였다.

 시진핑은 태평양은 두 개의 강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는 말로 태평양을 동서로 갈라 서태평양을 중국의 세력권으로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선언해 왔다. 그는 지난 5월에도 상하이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아시아의 안전은 아시아인이 지키자고 역설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주장은 1969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베트남 전쟁 출구전략으로 아시아 방어의 책임은 아시아인들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과 일맥 상통한다.

 한·중 밀월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한·중관계를 큰 구렁이가 토끼의 허리를 휘어감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비꼰다. 끔찍한 비유다. 그러나 우리가 1992년 수교 이후 가장 가까운 한·중관계에 도취되어 홍콩, 대만, 몽골, 동·남중국해의 도서들이 모두 그 판도에 들어 있던 청 왕조 건륭제(재위 1736~95) 시대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시진핑의 몽상에 말려든다면 남북, 한·미, 한·일관계는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실책을 범하게 된다. 시진핑 방한으로 경제협력과 민간·학생교류 같은 한·중관계의 하부구조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는 시진핑표 중국의 꿈을 경계하면서 그런 실질적인 관계의 발전을 동북아 차원의 파워게임과 구별하여 가치중립적, 실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남북관계의 개선, 한·일관계의 복원, 한·미 간 부동의 안보협력은 한·중관계 못지않게 중요하다. 중국이 갑자기 한국에 구애작전을 펴는 것도 미국이 있고 일본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일정 수준 개선되면 중국에 대한 남북한의 발언권도 강화되고 북한의 중국 의존도도 크게 낮아진다. 우리 하기에 따라서는 유동적인 동북아의 안보현실은 한국에는 단군 이래의 호기다.

 중국에 중화민족 중흥의 꿈이 있다면 아베의 일본에도 전쟁 가능한 군대를 가진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겠다는 꿈이 있다. 미·중 대결의 큰 틀 안에서 중국의 꿈과 일본의 꿈이 동·남중국해에서 충돌하면서 파열음을 낸다. 중국과 일본의 꿈이 한반도에서 충돌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 한국외교의 어렵지만 절박한 과제다. 시진핑이 던지고 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제안도 중국 제안이라고 찬성해서도 안 되고 미국이 반대한다고 거부해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한국의 국가이익에 맞는 결정을 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망에 참여해서도 안 되고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시진핑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미·중·일이 다투는 동북아의 큰 판을 읽는 전략적인 시야가 요구된다.

                               <출처: 중앙일보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