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20년 장기불황의 잔재를 털고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항과 유흥가가 북적이고, 주가와 부동산값이 치솟고 있다. 일손이 부족한 기업들은 유능한 인재를 서로 차지하려 다툴 만큼 일자리가 넘쳐난다. 이게 다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덕이라는 칭송이 자자하다. 아베노믹스가 뭔가. 통화·재정·산업정책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경제를 살리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지다. 일본 경제 부흥을 위해선 교과서에 없는 극단적인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특단의 결기다. 아베노믹스를 구성하는 세 개의 화살 중 이미 두 개의
화살이 쏘아졌고,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 참이다.
처음 두 개의 화살은 무제한 양적완화(量的緩和)를 통한 통화증발과 대규모 재정적자를 무릅쓴 공공지출의 확대였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양면에서 무차별적인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다. 어찌 보면 무모할 정도의 물량공세를 통해 일본 경제를 짓누르던 엔고(高)의 짐을 덜었고, 소비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내수소비를 살렸다. 첫 두 발의 화살은 인플레와 거품 재발의 우려를 딛고 침체일로의 일본 경제를 일단 성장과 재도약의 방향으로 돌려놓는 데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무엇보다 아베 정부의 일관된 성장지향의 메시지가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의 심리를 바꿔놓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죽하면 아사히 신문이 “아베노믹스는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라고 했을까. 이 모든 야심찬 정책의 선봉에는 아베 총리가 있었다.
부활하는 일본 경제에 비해 여전히 죽을 쑤고 있는 한국 경제를 돌아보면 이 정도만으로도 아베노믹스를 부러워할 만하다. 인위적인 단기부양책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베노믹스는 어쨌든 일본 경제를 침체의 나락에서 건졌고, 경제주체들에게 ‘경제하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부럽다. 취임 전부터 ‘일본 경제 부활’의 기치를 내세운 아베 정부와는 달리 박근혜 정부는 혼란스러운 정책목표 사이에서 헤매다 1년을 허송한 뒤 올 2월에야 겨우 ‘근혜노믹스’라 할 만한 정책구상을 발표했다.
바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다. 단기부양책으로 출발한 아베노믹스와는 달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경제회생의 해법을 담고 있다. 한국 경제의 고질병을 고쳐 지속가능한 안정성장의 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막 시동을 걸려던 근혜노믹스는 세월호 참사의 역풍을 맞아 제대로 출발조차 하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벌써 상반기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규제완화와 구조개선은 손도 못 댔고,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어설픈 대응으로 회복의 불씨를 꺼뜨려 버렸다.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그나마 버티던 수출마저 흔들릴 지경이고,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위축된 소비는 도무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베노믹스를 본떠 단기부양에 나서기도 어렵다. 아직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지는 않은 한국 경제에 일본식의 극단적인 단기부양책을 잘못 썼다간 부작용이 오히려 클 것이기 때문이다. 환율안정을 위해 일본처럼 적극적인 시장개입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작 아베노믹스에서 부러운 것은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이다.
일본재흥전략(日本再興戰略)으로 알려진 세 번째 화살은 일본 경제의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관습에 묶여 손대지 못했던 각종 규제를 털고 노동구조 개선과 농업개혁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과거에도 못 했고 이번에도 역시 안 될 것이란 당초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발표된 신성장전략은 아베 총리의 독려에 힘입어 의외의 추진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성장전략은
헬스케어와 농업, 전력산업 등을 구체적인 육성 대상으로 삼고 민간투자 확대와 노동구조 개선, 신규시장
창출, 시장 개방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다는 구제적인 목표와 추진계획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전에는 안 됐지만 아베 정부만큼은 무언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신뢰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아베노믹스는 아직 확실히 성공한 것도 아니고, 성공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산적해 있고, 여러 가지 무리수의 후유증이 클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것도 많고, 따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다만 부러운 것은 일본 경제 회생이란 뚜렷한 목표를 향해 최고지도자가 앞장서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고, 그런 지도자의 의지에 국민과 기업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조만간 출범할 최경환 경제팀은 ‘근혜노믹스’의 시동을 다시 걸어 한국 경제를 회생시켜야 할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웃 일본의 성공담과 비교되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국민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 중압감을 딛고 실제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 또한 최경환 경제팀이 감당해야 할 과제다. 이미 새 경제팀에 이런저런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주문들을 요약하면 결국 단기적으로 경기를 살리고, 중장기적으로 안정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능력이다.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 내는 능력 또한 새 경제팀에 요구되는 덕목이다.
<출처: 중앙일보-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