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기억을 일깨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떠오른다. 그 나라 내전은 진행형이다.
말레이시아 여객기(MH17편) 피격은 내전의 희생물이다. 참사 현장은 악몽을 되살린다. 1983년 KAL 007편 격추-. 옛 소련 전투기의 공중학살이다. 그 사건은 냉전시대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8년 뒤 소련은 붕괴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독립했다.
MH17기 피격은 반정부군 소행으로 굳어졌다. 반군은 우크라이나 동남쪽에서 준동한다. 그곳은 러시아 민족이 강세다. 피격 현장은 동쪽이다. 반군의 뒤를 러시아가 돌본다. 그 장면에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야망이 드러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크림반도를 빼앗겼다. 러시아는 군대를 진주시켰다. 분리주의 친러 반군의 성취다. 크림 자치공화국은 러시아 땅이 됐다. 크림반도 아래는 흑해다.
흑해는 이름과 다르다. 검지 않다. 바다 색깔은 진한 푸른빛이다. 얄타와 소치는 흑해의 항구도시다. 그 도시들은 멀지만 낯설지 않다. 한반도 분단의 뿌리인 얄타회담, 소치(러시아) 겨울올림픽-. 세바스토폴은 흑해의 군항이다. 우크라이나 시절에도 러시아 해군기지였다. 크림반도는 요충지다. 그런 지역은 전쟁을 초대한다. 지정학적 속성 때문이다. 19세기 크림 전쟁은 러시아 대 영국·프랑스·터키의 싸움이었다.
세바스토폴은 옛 전쟁을 회고한다. 그곳 박물관, 유적지는 전쟁 참상을 전시한다. 유적지에 레프 톨스토이의 작은 기념비가 있다. 그의 얼굴 조각이 새겨져 있다. 26세 톨스토이는 참전했다. 그는 제정 러시아군 포병 장교였다.
여객기 격추 사건은 그 기념비를 떠올린다. 그곳을 취재했던 나의 기억은 또렷해진다. 톨스토이 소설이 어울리는 곳이다. 그의 3부작 『세바스토폴 이야기』는 체험문학이다. 그 책의 한 구절은 선언적이다. “나의 소설의 참된 주인공, 유일한 영웅은 진실이다.”(5월의 세바스토폴)
전쟁은 영웅담과 신화를 생산한다. ‘5월의 세바스토폴’은 다르다. 죽어가는 신음과 죽음의 공포다. 톨스토이는 전선의 진실과 마주했다. “피와 고통, 죽음을 통해 목격한 것이 전쟁의 진정한 표현이다.”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1854년 10월 17일부터 349일간 계속됐다. 전쟁은 잔혹했다. 사병들은 죽어갔다. 양쪽 합해 23만여 명이 숨졌다.
전쟁의 진실은 교훈으로 전파된다. 우크라이나 내전은 지도력의 실패 때문이다. 독립 후 20여 년의 시일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발전, 민주화는 엉성했다. 우크라이나 땅은 비옥하다. 옛 소련 시절 군수공업의 집결지였다. 잠재력은 엄청났다. 역대 대통령들은 그 점을 살리지 못했다. 나라 융성의 골든타임은 사라졌다. 리더십의 무능과 부패 탓이다.
우크라이나 경제 혼선은 만성적이다. 정권 리더십들은 외국에 손을 벌렸다. 한 번은 러시아, 다음엔 미국과 유럽연합(EU) 쪽이다. 에너지 분야는 러시아에 예속돼 갔다. 정권 교체 때마다 외교 노선은 오락가락했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불신을 샀다. 경제 위기는 국가의 자주를 헝클어뜨린다. 민주화도 파탄 난다. 국론은 분열됐다. 국민 사이의 친러, 반러의 대립은 험악해졌다. 러시아 개입의 빌미가 됐다.
외교는 나라의 전략적 이미지를 만든다. 우리 외교의 축은 한·미 동맹과 한·중 동반자다. 정책 책임자들은 조화를 모색한다. 그것은 동맹과 동반자의 동시발전이다. 조화의 다짐은 은근하면서 실질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외침의 형태가 되고 있다. 적정선도 넘고 있다. 그런 자세는 줄타기 외교로 비춰진다. 그런 행태는 의심과 냉소를 동반한다. 우리 사회 내부에도 친미와 친중의 갈등을 낳는다.
북한 핵무기는 박근혜 외교의 핵심 요소다. 우크라이나는 북한에 메시지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폐기했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핵은 공멸(共滅)의 협박 수단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강공 자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가정은 적절하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 때문만이 아니다. 북한과 중국 관계는 복잡해졌다. 북핵은 중국 견제용으로 유효하다. 북한 핵 진실의 미묘한 변화다.
푸틴의 야망은 장애에 부딪쳤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분위기는 여러 갈래다. 국제사회 결속은 단단하지 않다. 국익 때문이다. 중국은 중립 자세다.
동북아 질서의 양상은 혼선과 재편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은 불변의 요소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한다. 대륙은 우리의 미래다. 대륙으로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전략적 전제가 있다. 한·미 동맹이 약해지면 대륙세력은 한국을 푸대접한다. 역사의 진실은 불편하다. 그 진실 속에 리더십의 지혜와 상상력이 존재한다.
<출처: 중앙일보 -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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