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軍과학의 힘' 없었다면… 이순신도 없었다
[팝콘 사이언스-54]12척 조선함선이 330척 왜선 격퇴…개봉예정작 '명량'을 통해본 해상무기 과학사
명량해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1597년 9월 16일 하루 동안 치열하게 벌어전 해전이다. 조타수가 조선 한양을 향한 왜군 300여척을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좁은 수로인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12척 조선수군이 막아선다. 비율로 따지면 30대1, '승률 제로' 전쟁. 난중일기에선 8시간 전투 끝에 왜선 31척이 파괴돼 철수했다고 기록돼 있다. 기적적인 승리인 것이다.
명량의 한 장면/사진=CJ엔터테인먼트 |
◇이순신, 진화된 화력 기술 믿었다
이순신 장군이 무모하게 12척 배로 왜선과 맞서겠다고 판단한 그 배경엔 지형적 환경을 이용한 치밀한 전술 등이 짜여져 있다는 점 말고도 조선 함선의 기동력과 화력을 전적으로 신뢰한 점도 적잖이 작용했다.
기껏해야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은 함포로 무장한 조선 수군 화력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조선함선은 거북선과 판옥선, 협선, 사후선 등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일본·중국 함선보다 배건조 기술은 훨씬 우위에 있었다. 대포와 철갑지붕으로 무장한 돌격함 '거북선'의 화력과 기동력은 뛰어났다.
대부분 역사전문가들은 조선 수군이 일본과 싸워 압도적인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이유는 군사과학 기술이 일본에 앞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화포는 14세기 고려시대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실용화 됐다. 이때 화포 개발을 추진한 까닭은 왜구들이 고려 연안에 출현해 난동과 노략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왜구들의 해적선은 매우 날쌔 추격해 물리칠 방법이 없었다. 마침 몽골군이 화약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고려 학자들은 몽골군의 극비이던 화약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나선다.
이중 최무선이 각고의 노력 끝에 숯과 초석(礎石) 그리고 유황(硫黃)을 사용해 화약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내 독자 기술개발에 들어간다.
최무선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는 화약제조에 필수적인 초석(질산칼륨)을 얻는 것이었다. 최무선은 20년 간의 오랜 연구 끝에 자신만의 초석제조법을 개발한다.
명량의 한 장면/사진=CJ엔터테인먼트 |
최무선은 이어 화포를 실을 수 있는 군선 개발에도 매진하는 등 함포 개발에 공을 들였다. 1380년, 군산에서 벌어진 왜구 두목 아지발도(阿只拔都)와 결전에서 우리 군은 40여척만으로 왜선 500여척을 최무선의 함포로 궤멸시켰다.
최무선이 개발한 '판옥선용 대형 함포'는 훗날 이순신 함대가 왜군을 제압하는 신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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