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도 민간소비 부진이 문제였다. “노무현 정부는 대체 뭘하고 있는가”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러자 그해 8월 청와대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소비부진은 맞지만 개혁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성매매 금지법 발효와 향락성 접대비 감축으로 눈먼 돈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이런 돈이 내수 경제를 살찌운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눈먼 돈’을 허용할 순 없지 않은가”라고.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청와대 설명이 틀렸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다만 소비부진이 10년 전에도 심각한 문제였다는 걸 지적하고 싶어서다. 때론 정부가 방관하면서 소비부진이 우리 경제의 고질병으로 곪아버렸다는 거다.
민간소비만 놓고 말하면 우리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이다.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민간소비지출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높았던 적은 2005년 딱 한 번뿐이었다. GDP 중 민간소비 비중(실질 기준)이 2002년 57%에서 지난해 49%로 급락한 이유다. 얼마 전만 해도 세월호가 문제라고 했다. 소비가 회복하다가 세월호 참사로 주춤거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문제라면 지금은 소비가 다시 회복해야 한다. 실제 그런가. 새 경제팀이 연일 경기부양을 주창하는 게 단적인 증거다. 우리 경제에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났다는 얘기다.
소비부진은 경제성장률을 낮춘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큰 문제 아니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국민 불만과 불안의 증폭이다. 소비는 삶의 질,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소비가 부진하다는 건 국민의 생활수준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10년 이상 생활이 개선되지 않았다면 불만과 불안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 경제는 시름시름 앓게 되고 몸져눕는다.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는 원인은 참으로 다양해서다. 가계소득 정체, 고령화와 노후 불안, 주식과 부동산 침체, 막대한 가계부채, 감원의 일상화와 비정규직의 확대, 기업의 보수화 등이 원인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총망라돼 있기에 여간해선 풀기 어렵다. 그러면서 소비부진은 악순환 국면에 들어섰다. 기업은 ‘저성장→새로운 투자 기회 감소→인건비 절감 등 보수적 경영전략 강화→소비부진→저성장’을 겪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도 ‘자산시장 침체→자산효과 소멸→소비부진→저성장→자산시장 침체’가 반복 중이다.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효과가 있을지, 언제 효과가 드러날지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시스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대공황 당시 케인스가 주장했던, 자동차 엔진을 점화시키는 발전기 즉 마그네토(magneto)의 문제일 수도 있다. 구조개혁이 아닌, 적극적인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소비부진을 풀 수도 있다. 설령 구조 문제라고 해도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일.
뭔가 해야 한다면 그 시작은 잃어버린 국민의 자신감 회복이어야 한다. 지난해 이 칼럼에서 일본을 배워야 한다(2013년 4월 26일자 28면)고 쓴 까닭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다. 일본 경제의 마그네토에 불을 지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경기부양 시그널이 확실하고 일관돼야 하는 이유다. 찔끔찔끔 해선 안 되고 화끈해야 한다. 사내유보금 등 변방을 칠 게 아니라 재정과 통화정책이란 정공법에 주력해야 한다. 국가채무 운운하면서 소극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계제가 아니다. 통화정책도 과감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내리되, 시장의 예상을 확 뛰어넘을 정도로 내려야 한다. 시장이 생각지 않고 있는 ‘한국판 양적완화’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단기채를 팔고 장기채를 매입하는 오퍼레이션 정책 말이다. 부작용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분명치 않다. 중요한 건 그래도 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자신감을 되찾지 못하면 진짜 ‘잃어버린 10년’이 오기 때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 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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