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경제팀은 최근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요인보다는 그간 쌓인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가 표출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가계가 활력을 잃고, 투자가 둔화되면서 기업의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소비가 부진해 다시 기업에 투자기회 축소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바른 진단이다. 2008년 이후 실질임금과 가계소득이 정체돼 있으며 법인세율 인하, 저금리 등으로 기업소득은 크게 늘었으나 이것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유보금으로 쌓여 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생각하면 새 경제팀은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할지 모른다고 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잘 알 수 없다. 새 경제팀이 그저께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발표한 정책들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완화를 통한 부동산 경기 부양, 확장적 재정·금융정책, 기업유보금에 대한 과세방안 등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은 쉽게 경기를 띄우고자 할 때 과거 정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 정책이며 재정·금융 확대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오히려 오늘날 쌓인 구조적 문제들의 요인을 제공한 정책들이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고육지책으로 나온 방안으로 보이나 이중과세일 뿐 아니라 그 효과도 확실치 않다. 유보금이 많은 대기업일수록 외국인투자 지분과 계열사 내부지분이 많아 배당증가가 얼마나 가계소득 증가와 소비진작을 유발할지 알 수 없다. 이들이 임금을 더 올리면 중소기업과의 양극화는 심화하게 된다. 그 보다는 일정 규모 이상의 순이익을 낸 기업들에 대해 한 단계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해 이를 가계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도가 더 정도에 맞는 정책으로 보인다.
새 경제팀의 진단과 처방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이 더 나와야 하나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소비가 위축되어 있는 것은 가계소득이 늘지 않고 빚이 너무 많으며 노후대책이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것은 투자위험은 큰 데 반해 수익성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제품의 사이클은 빨라지는데 국내의 고용경직성은 높고, 임금·지대·규제 등이 투자에 우호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장애를 풀어 가려면 노동 부문의 유연성을 높이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며, 규제를 합리화하고 분배구조·연금제도를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노동 부문은 심각한 2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강성노조로 인해 임금이 경쟁국들에 비해 매우 높고 기업들은 이를 비정규직 고용확대를 통해 상쇄해 왔다. 600만 명 비정규직의 존재는 분배구조의 악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전반적인 생산성을 낮추고 우리 사회의 안정성을 저해해 왔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흡수해 나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원금보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 줘야 한다.
새 경제팀은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있는 격이라며 부동산대출 규제를 완화하려 하나 부동산시장에는 여름이 있으면 겨울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품이 계속 자라 구조적 문제를 더 깊게 한다. LTV, DTI 규제완화가 부동산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면 이는 가계부채가 더 늘었기 때문일 것이고 가계부채가 늘지 않을 것이라면 굳이 이를 손댈 필요가 없다. 저축은행으로부터 금리가 낮은 일반은행으로 가계부채가 옮겨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앞으로 저축은행의 부실화 대책은 서 있는 것인가?
소비와 투자, 그리고 부동산시장이 위축되어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가계소득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적하듯이 이는 순환적이라기보다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 결국 기업과 가계, 그리고 가계 부문 내의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취약기업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며 가계부채비율의 점진적 축소를 유도해 구조적 문제를 풀어 가야 한다. 구조적 대책들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경기위축 효과를 상쇄키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확장적 재정금융정책만을 동원해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더 키우게 된다. 조세제도, 노동시장환경, 토지규제를 개선하고 기업·금융제도를 재구축해 기술과 경영혁신을 자극해야 경제의 활력회복을 도모할 수 있다. 기득권에서 나오는 지대(rent)를 낮추고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2기 경제팀이 처한 입지는 매우 어렵다. 경제활성화를 빨리 이루라는 기대는 높은 데 반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구조적이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 쉬운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그동안 ‘알고도 가지 못한 길’을 새 경제팀이 가진 정치력을 발휘해 과감히 걷게 되는 길이 되길 바란다.
< 출처: 중앙일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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