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뜨거워지자 여기저기서 낙관적인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다분히 주관적인 기대섞인 분석도 시장의 열기를 더해준다. 주가가 상승하고 거래대금이 늘어나면 이렇게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강세장이 되면 사람도 변한다.
월가의 베테랑 주식중개인이었던 제럴드 로브는 `목숨을 걸고 투자하라돴에서 강세장이 되면 사람들의 투자심리가 이런 식으로 변한다고 했다. (1)자신을 매우 똑똑한 투자자로 여기며 자축한다. (2)그동안 보수적으로 투자해온 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자탄하고, 앞으로는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할 것이며 그러면 수익이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3)과감히 행동하기 시작한다. 보다 공격적인 투자방식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매우 위험하고 투기적인 방법으로 단기간의 대박을 노린다.
로브는 자신도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때마다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강세장은 그냥 주가가 오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마지막 순간 엄청난 오버슈팅과 함께 막을 내린다. 여기서 오버슈팅은 거품이 되기도 하는데, 오버슈팅이든 거품이든 그것이 무서운 이유는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기 때문이다.
강세장은 서서히 달아오르다 어느 순간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긍정적인 전망 역시 점점 더 강해지다 확신이 되고 마침내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투자자들은 어느새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주식을 매수한다. 거
품은 하늘 끝까지 내달릴 것처럼 질주한다. 그리고는 시장의 붕괴를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이제 일반 대중은 물론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마저 장밋빛 환상에서 고통스럽게 깨어난다.
18세기 초 영국에서 벌어진 남해회사 투기극에 말려들어 큰 손실을 입은 아이작 뉴턴 경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뉴턴이 이럴진대 우리 같은 보통사람은 오죽하랴. 그래서 '광기, 패닉, 붕괴'를 쓴 경제사가 찰스 킨들버거의 말이 더 와닿는 것이다. "가까운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일만큼 인간의 물질적 행복과 판단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심리적인 측면 말고도 거품을 부채질하는 실물적인 요인이 있다. 거품은 일단 발생하면 스스로 생명을 가진 것처럼 커가는데, 더 이상 태울 나무가 없어야 꺼지는 장작불처럼 연료가 다 떨어져야 비로소 꺼진다. 그 연료란 신용이나 대출자금 같은 유동성이다. 요즘처럼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 시중자금마저 넉넉한 상황이라면 연료는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셈이다.
그런데 진짜로 무서워해야 할 강세장의 해악은 주가의 거품이 아니라 의식의 거품이다.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재산가치가 갑자기 늘어나면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냉정하고 책임감 있던 사람들마저 균형을 잃고 정상적인 경제감각을 상실해버린다. 한두 번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면 자신을 비범한 통찰력을 지닌 천재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행동의 기준이 허물어지고 통제력을 잃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설득의 경제학(Essays in Persuasion)에서 과도한 투기로 인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묘사했다. "그의 사업이나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어떻게 손쉽게 돈을 번 뒤 빠져나올까 하는 데만 정신이 집중된다. 힘들게 번 것도 아니고 자신이 계획해서 번 것도 아니지만 한 번 큰 돈을 벌게 되면 그 기억은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충동으로 인해 그는 항상 경제적인 불안 속에서 살게 되고, 급기야 사회에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신감마저 잃게 된다. 그 누구보다 존경과 칭찬을 받을 만하던, 그리고 사회의 필요한 구성원이던 그가 어느새 자신이 보기에도 반쯤은 죄의식을 가질 정도로 사리사욕에 혈안이 된 소인배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면 셰익스피어가 남긴 문구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혹시 강세장이 시작되었다면 경계의 주문으로라도 말이다. "돈을 벌고 나면 사람도 타락한다."
< 출처: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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