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특히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충격적 사건이 반복될 수 있고, 그때마다 인간들은 또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윤 일병 사건’에서 인간 악마를 발견하고 놀라지만, 결코 새로운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던 거다.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이미 40여 년 전 그 유명한 감옥 실험으로 선량한 인간이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는 스탠퍼드대학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24명의 학생을 반으로 갈라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겼다. 모두 지원자들이었고 간수와 죄수도 제비뽑기로 나눴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간수들은 이내 죄수들에게 가학적이 됐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간수는 잔인해졌고 죄수는 비굴해졌다. 당초 2주로 예정됐던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됐다. 참가자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이 위험수위를 넘어선 탓이다.
짐바르도의 실험은 30여 년 뒤 이라크에서 실제상황으로 재연된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군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시체를 가리키며 미소 짓는 여군도 있었다. 미군 당국은 이들 가해병사를 몇몇 ‘썩은 사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짐바르도는 성한 사과도 상하게 만드는 ‘썩은 상자’에 눈을 돌렸다. 도사린 위험, 열악한 근무환경, 상관의 리더십 부재와 함께 학대문화를 생산하고 지속하도록 작용한 내부 시스템 말이다. 그것들이 평범한 인간에게 악마의 옷을 입히는 ‘루시퍼 이펙트’라는 것이다.
우리네 병영 속 루시퍼 이펙트와 너무도 닮은꼴 아닌가. 제2, 제3의 윤 일병이 나온대도 하나도 놀랍지 않을 이유다. 다행히 짐바르도는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다. 해답은 건너편에 있다.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될 수 있듯, 영웅도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란 얘기다. 그릇된 상황과 시스템에 대부분 순응할 때 이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래서 늘 존재한다.
소수라도 존재한다면 누구나 그런 ‘평범한 영웅’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게 짐바르도의 주장이다. 하지만 잠재력만 기대해서는 해결 난망일 터다. 그런 소수를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고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병영 잔혹행위의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하는 관계자들에게 짐바르도 교수의 책 『루시퍼 이펙트』의 일독을 권한다.
< 출처: 중앙일보-이훈범 국제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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