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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포착한 환멸의 전쟁

Bawoo 2014. 9. 13. 07:16

탈영한 중령, 처형 직전 한마디 "당신들은 후퇴해 본 적이 있느냐"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 이탈리아군 앰뷸런스 운전장교 헨리(왼쪽·록 허드슨).

카포레토 패주는 혼돈이다. 이탈리아군 사령탑은 즉결처형 수단을 동원한다. 헌병(carabinieri)들은 낙오·탈영한 장교들을 체포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 헨리 중위도 붙잡힌다. 즉결재판장으로 끌려간다. 강둑에선 중령 한 명을 놓고 신문이 진행 중이다.

 - 장교는 부대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느냐. 중령은 “안다”고 했다.

 - (다른 헌병 장교가 물었다.) 신성한 조국 땅을 야만인들이 밟게 한 것은 바로 너 같은 놈들이다.

 “선처를 바란다.” 중령은 말했다.

 
 - 승리의 전과를 잃은 것은 너희들이 저지른 배신 때문이야.

 “후퇴해 본 적이 있느냐(Have you ever been in a retreat).”

 - 이탈리아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중령의 말은 작렬한다. 후퇴 경험을 묻는 순간에서다. 그것은 폭로의 어휘다. 전쟁의 모순과 명분의 위선이 드러난다.

 헌병(재판) 장교들은 후방에 있다. 그들은 최전선의 고통을 알 수 없다. 후퇴의 고뇌를 모른다. “그들은 죽음의 위험 밖에서 죽음을 다룬다. 『무기여… 구절』”-. 후방 장교들은 배신의 무게를 잰다. 즉석에서 단죄한다. “부대 이탈, 총살에 처한다.” 그 장면은 “헤밍웨이가 잊을 수 없게(unforgettably) 묘사했다.”(존 키건, 『1차 세계 대전사』). 코바리드 박물관 큐레이터는 “전쟁은 인간성의 야만과 광기를 극적으로 노출한다”고 했다.

 헨리 중위의 재판 순서다. 그는 탈출한다. 타글리아멘토(Tagliamento) 강에 뛰어든다. 전쟁은 환멸이다. 그는 전쟁의 대의(大義)와 결별한다. “신성한, 영광과 희생이란 말을 들으면 당혹스럽다. 지명(地名)만이 위엄(dignity)을 갖고 있었다. 『무기여…』”-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미국인 소설가. 『무기여 잘 있거라』(1929년 출판)는 1차대전 자원병 체험이다. 전직은 신문(캔자스시티 스타) 기자. 1918년 6월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배치됐다. 한 달 후 다리에 박격포탄을 맞았다. 밀라노 병원으로 후송됐다. 간호사와의 사랑은 소설에 그려졌다. 그는 참전 8개월 전의 카포레토 전투를 취재했다. 20년쯤 뒤 스페인 내전 현장에 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헤밍웨이의 감수성은 모험과 도전, 투쟁이다. 『노인과 바다』(1952년)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S BOX] ‘사막의 여우’ 롬멜 신화, 카포레토 전투서 시작

에르빈 롬멜(Erwin Rommel·1891~1944)은 신화다. 코바리드 박물관에 청년 장교 롬멜 사진이 붙어 있다. 잊혀진 전쟁 속 의외의 만남이다. 관람객들은 흥미있어 한다. “최고훈장,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00E9>rite) 받음”-. 카포레토 전투는 신화의 예고편이다.

 1917년 10월 롬멜은 그 전투에 투입됐다. 26세 독일군 중위. 뷔르템베르크(Wrttemberg) 산악 경(輕)보병 중대장이다. 그는 후티어 침투 전술을 실천했다. 적의 측면 반격이 위협요소였다.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정면 고지 깊숙이 진격했다. 그의 천재적 재능과 공세적 상상력은 주효했다. 이탈리아군 진지는 무너졌다. 마타주르(Matajur·1642m)산 진지를 점령했다. 롬멜은 이탈리아군 9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52시간의 전과다. 그의 중대 피해는 경미했다(사망 6명, 부상 30명). “기량과 대담함은 특별났다. 그는 독일군에서 가장 빼어난(notable) 젊은 장교로 등장했다.” (『롬멜과 카포레토』, 존 윌크스 지음).

 후티어 전술은 2차대전에서 전격전(Blitzkrieg)으로 진화한다. 1940년 6월 프랑스 공격 때 롬멜 기갑부대는 아르덴 숲을 돌파한다. 그는 ‘사막의 여우’가 됐다. 북아프리카에서 독-이탈리아 합동작전이 있었다. 카포레토의 기억은 이탈리아 군에 대한 불신으로 작용했다.

 

 

*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