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낭만주의]

Julius Rontgen - Viola Sonata C minor /Violin Sonata No.6 F sharp minor Op.20

Bawoo 2014. 10. 5. 21:11

Julius Rontgen (9 May 1855 – 13 September 1932) German-Dutch composer

 

 

 

*  Viola Sonata C minor (1924/6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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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olin Sonata No.6 F sharp minor Op.20 (1879-83 / 24세-28세)

 

 

Julius Rontgen 1855 -1932, German-Dutch composer율리우스 뢴트겐은 독일 라이쁘찌히에서 음악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Engelbert Röntgen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수석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Pauline Klengel은 피아니스트엿다..취학 전 일찌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간파한 그의 부모와 조부모에 의해 교육되었으며 여타의 과목은 가정교사를 통해 배우게되었다.그의 첫 피아노 교사는 당시 게반트하우스 지휘자를 맡고 있던 Carl Reinecke 였는바 그의 초기 작품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작곡가이다 .또한  Robert Schumann, Franz Liszt 그리고 Johannes Brahms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870년, 그의 나이14세 때에 바이마르의 리스트의 집으로 초대되어 리스트의 집에서 열린 저녁 음악회에 피아노 연주를 한다..라이쁘찌히에서 헤르조겐베르그를 중심으로한 음악 
써클의 일원이 되었고 여기에서 오랜동안 음악적 교분을 나누게 되는 브람스와 만나게된다.

 

 이후 뮌헨으로 이사하여 프란츠 슈베르트의 친구인 Franz Lachner 밑에서 피아노를 배운다. 그의 나이 18세에 이르러 전문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며 남부 독일 쪽을 콘서트 투어를 하는 동안에 Julius Stockhausen이란 가수를 만나 친분관계를 맺었으며 이 즈음에 Amanda Maier라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 음악도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1880년에 결혼을 한다,

 

 1877년에 비엔나와 암스테르담중 한곳을 선택해 가야만하는 결정의 순간에 봉착하고  결국 암스테르담에서 피아노 교수를 하기로 결정하는데, 그 결정의 이면에는 암스테르담 대학의 음악이론 교수였던 Lohmann 교수가 뢴트겐의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곳 암스테르담 대학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없었으므로 학생의 수준이나 질보다는 숫자를 늘리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는 사실이 1877년, "이학교는 어린아이들과 아마츄어들만으로 가득차있다" 라고 쓴  뢴트겐의 편지 한 구절에 여실히 드러나있다..

 

1878년에서 1885년 사이에 브람스는 암스테르담을 자주 방문하엿다. 1887년에 뢴트겐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브람스의 지휘로 연주하였으며 1883년 Frans Coenen과 Daniel de Lange와 연합하여 암스테르담 음악원을 창립한다.

 

1884년 콘세르헤보 오케스트라의 창립에 깊게 관여하엿으며, 콘세르헤보의 지휘자에 뜻을 두었으나 뢴트겐의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의심한 위원회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일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최초의 직업적인 지휘자였으며 리스트의 딸 코지마의 남편이었다)를지휘자에 지명하자 크게 낙심하게된다.한스 폰 뷜로우가 지휘자직을 거절함에 따라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Willem Kes가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작곡가로서 실내악과 음악원을 위한 작품의 작곡에 열정을 더욱 쏟게 되었으며 당시대를 풍미하던 위대한 바이올린의 전설이 된  Carl Flesch와  가수 Johannes Messchaert,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등과 연주하기도 했는데, 특히 가수 Johannes Messchaert와는 적어도 1년여 동안 연주 여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뢴트겐과 매우 친밀한 우정을 나누던 Bodil de Neergaard라는 덴마크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덴마크 여행을 흔히 하곤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그의 아이들 역시  덴마크어에 매우 유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뢴트겐과 그의 아들들은 가정음악회로서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하곤 했는데, 1894년 그의 아내가 사망한 후에 그는

꽤 재능있는 피아노 교사였던 Abrahamina와 재혼했으며 그녀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역시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919년,1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그의 아들 가운데 하나는 나찌에 의해 수감되었고 또 한 아들은 미국으로 이주 미국의 병사가

되었다. 이런 결과로 뢴트겐은 한동안 그의 조국인 독일을 방문할 수 없었다.

 

 1924년 공적인 삶으로부터 은퇴한 그는 Utrecht 근처의 작은 마을인  Bilthoven으로 이주
했는데, 이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따르지 않은 몇 안되는 자식 가운데 하나인 프란스가 그를
위해 지은  Gaudeamus라고 이름지은 시골집이었다.그는 이곳에서 그의 남은 8년의 생애동안
100여편이상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이곳 Gaudeamus 는 당대에 유명한 작곡가와 음악가들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는데, 그 주된 방문자중엔 파블로 카잘스, 퍼시 그레인저가
있엇다..당시에 뢴트겐은 음악분석학에 심취했으며 Hindemith, Stravinsky, Schönberg 와
Willem Pijper의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30년 그는 그의 친구 Donald Francis Tovey 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Edinburgh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토베이와 Reid Orchestra 에 의해 그의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프로그램 속엔 그의 최근 피아노 협주곡 2곡이 뢴트겐을 솔로이스트로 연주 되었다고한다 .. 차 대전 후에 그의 가택인 Gaudeamus는 동시대 네덜란드 음악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Gaudeamus society로 바뀌었다..

 

 뢴트겐은 그의 최말년에 무조적인 음악이 관심을 두엇으며 bi-tonal symphony 를 작곡했으나 출간되거나 연주 된적이 없다고한다, Gaudeamus에서 1932년 77세로 그의 삶을 마감했다..

 

 [해설 자료 출처] Julius Rontgen 1855 -1932, German-Dutch composer |작성자 레인트리/ 정리- 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