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은 넓은 의미로 보면 역사해석의 성격을 띤다.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역사인물의 실명이 등장하는 이상 새로운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극을 볼 때 시청자들은 허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는 역사지식을 결부시킨다. 이는 드라마의 개연성을 높이고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사극 특유의 장치다. 뿐만 아니라 참신한 해석은 상상의 경계를 확장하고 사람에 대한 편협한 태도를 줄인다.
해석의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마 ‘비밀의 문’은 자못 파격적이다. 무엇보다 사도세자 캐릭터가 그렇다. 그는 백성의 언로를 열겠다며 출판의 자유를 주장한다. 아버지 영조의 아킬레스건인 경종 독살의혹도 거침없이 파고든다. 급기야 신분의 차별 없이 과거를 볼 수 있도록 해 평민 장원급제자까지 배출한다. 부왕뿐 아니라 조선의 근간인 신분질서까지 흔드는 세자를 어찌할까? 드라마는 비극의 먹구름을 드리우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도세자에 대한 이런 상상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영조실록>은 그를 일컬어 ‘백성을 위해 어진 정책을 시행한 왕의 재목’이라고 평했다. 물론 여기에는 아비가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아들 정조의 열망이 투영됐을 터. 하지만 실제 사도세자에게는 아내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묘사한 대로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의 면모가 도드라진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사극 속 역사인물’에서는 먼저 경종 독살의혹으로 인한 영조의 콤플렉스와 혜경궁 홍씨 집안을 겨냥한 노론 내부의 공격을 살펴봤다. 모두 그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이다. 그러나 뒤주에 가둬 죽이는 참극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도 마찬가지다. 사도세자가 소론을 옹호하긴 했으나 죽을 무렵(1762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1755년 나주벽서 파문으로 조정에서 소론이 힘을 잃은 뒤였다.
사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혜경궁 홍씨의 말마따나 세자에게는 ‘흉악한 병’이라고 불린 광기가 있었다. 이 병이 처음 나타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약방 도제조 이천보가 “동궁이 가슴이 막히고 뛰는 증세가 있다”고 보고했다. 2~3년 후에는 발작으로 이어져 걸핏하면 내시와 계집종을 죽이곤 했다. 증세는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참수한 내관의 머리를 들고 들어와 세자빈을 기겁하게 만드는가 하면, 자신의 아들(은전군)을 낳은 후궁 박씨마저 때려죽였다.
그렇다면 사도세자는 어쩌다 광인이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혜경궁 홍씨는 물론이고 조정대신들까지 의견이 일치한다. 바로 아버지인 영조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 영조의 ‘편벽한 성격’을 거론한 바 있다. 영조는 같은 자식이라도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사랑하는 자식의 집은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싫어하는 자식은 불길하게 여겨 멀리 했다. 그런 영조에게 세자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아들이었다.
사도세자가 처음부터 영조의 눈 밖에 났던 건 아니다. 만 2세에 글자를 깨우치고 <소학>을 외는 영특한 아들을 왕은 대견해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세자가 학문을 멀리 하고 무인의 기질을 드러내자 닦달이 시작되었다. 영조는 열네 살에 불과한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사사건건 질책했다. 그러다가 수틀리면 짐짓 양위하겠다고 압박했다. 세자는 부왕을 두려워하며 위축되어갔다. 아버지가 부른다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차마 듣지 못할 전교’, 즉 쌍욕에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만류하고 나섰을까.
1761년 사도세자가 20여 일이나 궁궐을 비우고 관서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오자 왕은 모종의 결심을 한 듯싶다. 이는 역모로 몰 수 있는 명분이다. 이듬해 나경언의 고변을 빌미로 영조는 참극의 방아쇠를 당겼다. 세자의 나이 27세. 아무리 그래도 폐세자에 그치지 않고 뒤주에 가둬 죽인 건 과한 처분이었다. 영조의 편벽도, 사도세자의 광기도 어찌 보면 권력의 독기로 인해 형성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이 권력인가 보다.
* 출처: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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