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이달충(李達衷)
산중에 있으니 종일토록 찾는 이 없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며 홀로 골짝 시내를 거니니 적적하여 함께 얘기할 사람 없고, 오직 그림자만이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않으니, 이것이 가상하여 시를 지어준다. [予在山中 竟日無相過 拖笻曳履獨 徜徉乎澗谷 寥寥然無與語 唯影也造次不我違 爲可惜也 作詩以贈] (여재산중 경일무상과 타공에리독 상양호간곡 요요연무여어 유영야조차불아위 위가석야 작시이증) |
달아나면 그림자도 달린다 我走影亦馳(아주영역치)
내가 없으면 곧 그림자도 없고 無我則無影(무아즉무영)
내가 있으면 그림자도 따른다 有我影相隨(유아영상수)
내가 있어도 그림자 없게 하는 有我使無影(유아사무영)
방법이 있으련만 나는 모른다 有術吾未知(유술오미지)
사람들은 말한다 그림자가 밉거든 人言若惡影(인언약오영)그늘에 있으면 뗄 수 있으리라고 處陰庶可離(처음서가이)
그늘도 물건의 그림자거니 陰亦物之影(음역물지영)
사람의 그 말이 더없이 어리석도다 人言乃更癡(인언내갱치)
물건이나 나나 있기만 하면 物我苟有矣(물아구유의)
그늘과 그림자는 다시 여기에 있다 陰影復在玆(음영부재자)
나도 없고 또 물건도 없으면 無我亦無物(무아역무물)
그늘이나 그림자가 어디 생길까 陰影安所施(음영안소시)
나는 그림자에게 소리 내어 물으나 擧聲我問影(거성아문영)
그림자는 한 마디 말도 없도다 影也無一辭(영야무일사)
마치 안회의 어리석은 것 처럼 有如回也愚(유여회야우)
묵묵히 알고 깊이 생각하나 보다 嘿識而深思(묵식이심사)
무엇이나 내가 동작하는 것 凡我所動作(범아소동작)
그는 하나하나 흉내를 낸다 一一皆效爲(일일개효위)
오직 나는 말이 많은데 唯我頗多言(유아파다언)
그림자는 이것만은 취하지 않는다 影也不取斯(영야불취사)
그림자는 이렇게 생각함이 아닐까 影也豈不云(영야기불운)
말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言乃身之危(언내신지위)
그림자가 나를 본받는 것 아니고 顧非影效我(고비영효아)
내가 그림자를 스승으로 삼는다 我乃影爲師(아내영위사)
고려말 공민왕 때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蒨)의 아들로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했다.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했다. 1359년(공민왕 8)에는 호부상서로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 다음해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1366년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그러나 신돈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가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죽은 뒤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으며, 이때 신돈을 두고 시 〈신돈 2수 辛旽二首〉를 지었는데, 그 시문이 이제현(李齊賢)의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문 수십 편이 〈동문선 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저서로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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