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글 모음♣ / 문화, 예술

제벽(題壁),제암(題巖)

Bawoo 2013. 9. 19. 23:33

*바위나 건물 벽면에 글을 남기는 것을 총칭하여 '제벽'이라고 하는데 인공의 건축물 벽에 글을 쓰는 것과 구분하여 자연 바위에 글을 쓰는 것을 '제암'-우리말로 '바위 글씨'-라고 따로 이르기도 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제벽"은 중국 육조시대에 종이가 부족하게 된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당나라 때에는 하나의 운치있는 문학 행위로 유행했고 송나라 때에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되어 채집 해설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문사들이 자연속 암벽에 글을 쓰고 새기는 '제암'을  즐겼다고 하는데 이러한 제암의 흔적은 조선조 수도였던 지금의 서울 산골짜기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한다.특이한 것은 이러한 제암 행위는 행위자가 세속적인 정치권력을 가진 소위 지배 계층에 있는 유명인사나 이름있는 문인일  경우에만 사회의 관심과 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여 자연 속의 바위를 재료로 글을 쓰고 새기는 일종의 예술적 행위가 탈속 혹은 예술적 작업을 한다는 의미와는 상반된 세속적 권력과의 불가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잘 입증해주는 단적인 예가 세속적인 정치권력과는 인연이 없는 무명의 문사,선비,승려들이 하는 '제암'행위는 적절치 못한 행동-주제넘다?^^_으로 간주되어 가혹하게 비난받았다고 하는데서 잘 알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는 이러한 '제암'행위에 대해서는 19세기 조선조의 문사인 '이상수'란 분이 '동행산수기'란 글에서 중국 명나라 유람문인 '원굉도'의 제암 페단에 대한 글을 인용하여 비난하고 있지만 두사람 모두 제암은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권력을 가진 사회지배계층  인사?_만이 제암을 해야한다는 차별적 제암 허용론을 편 것이어서 오늘날  '제암'행위를 자연훼손으로 간주하여 사회적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는 것과는 보는 관점이 많이 달랐다.(쉽게 얘기하면 힘있는 인간들만 제암을 해야된다는 얘기) 

 

'제암'중 가장 유명한 것은 봉래 양사언이 금강산 만폭동에 '봉래풍악 원화동천'여덟자,'만폭동'석자를  초서 대자-가로 세로 1메터-로 새겨 놓은 것이며 우암 송시열은 박연폭포,만폭동에 주희의 시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제암'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는 북한 정부가 금강산 신계동 계곡과 옥류동 계곡에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을 찬양하는 글과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글을 새겨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우리 남한의 경우 관공서나 대형 빌딩에 커다란 자연석을 옮겨다 놓고 거기에 관공서 이름이나  사훈등을 새겨 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제암'의 변형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출처:'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라는 책 165~184쪽 '겸재의 그림에 담긴 바위글씨'라는 제목의  글 중에서 발췌 요약하고 말미에 제 의견-제암의 변형된 형태라는 내용-을 약간 가미했습니다.연세대 국문과 고연희 강사의 글인데 글의 원 요지는 겸제 정선의 '만폭동'도에 쓰여 있는 제화시에 대한 해설-출처,쓴이등-을 하면서 다른 우리 옛 그림에 있는 제화시와 제암 문화의 연관성을 밝혀 놓은 내용인데 아주 좋은 글입니다.^^기회가 되는 대로 저자의 글을 쓴 원래 취지도 요약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