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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동백꽃의 의 작가 김유정의 실패한 짝사랑 이야기

Bawoo 2013. 10. 7. 01:13

*경춘선을 타고 춘천을 향하여 가다보면 춘천 못미쳐 김유정역이 있습니다.

이곳에 내리면 김유정 문학촌이란 곳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일제의 마수가 한창 우리나라에 뻗쳐 있던  1908년 이곳에서 태어나 강점기 시절인  1938년  29세 되던 해에 페결핵으로 요절할 때  까지의 짧은  삶을 불꽃같이  살다 간  소설가 김유정이란 분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진 곳입니다.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동백꽃,봄봄등의 향토색 짙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신 이분은 조선조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 났으나 길지 않은 생에서의 삶은 그리 편안치를 않았습니다.특히 여자 문제에 있어서 그리했는데요,이분의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분한 마음이 들 정도로 가슴 아픈 짝사랑의 사연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에 소개된 내용은 대상이 2명인데 한명은 제쳐두고 국악인 박녹주(1906~1979)씨를 짝사랑한 이야기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김유정 작가가 국악인 박녹주씨를 처음 본 것은 연희전문을 갓 들어간 22세때의 일인데 같은 동네에 살던 박녹주씨가 목욕탕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뒤 스토커 수준의 집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박녹주씨는 당시 기혼자인데다가 명창 소리를 듣는 대중 스타였기 때문에 일개 대학생 신분인 김유정 의 구애를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으로 불러 타이르기도 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김유정이 박녹주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는 일기장에 '녹주 너를 사랑한다'는 혈서가 발견된 것으로 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김유정의 사후, 친구 안회남이란 분이 박녹주씨를 찿아가 '내 친구는 당신 때문에 죽었다'고 원망까지 했을 정도였다니  김유정의 박녹주를 향한 짝사랑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에야 문학촌,역까지 이름을 넣어가며 문학적 성취를 기리고 있지만 살아 있을 당시의 짝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가를 생각하면  명창이긴 하지만 유부녀이고 기생 신분인 박녹주에게 그리도 목을 맨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건 참 어리석은 일 같은데 글쎄요 남자들은 젊은 시절엔 외모만 보고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대부분 있을테니 딱히 뭐라고 할 입장은 못되지만 지금에 와서는 박녹주씨 보다는 김유정이란 작가가 더 세간의 인정을 받는 것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짝사랑을 한것인지 참! 만약 생전에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오래오래 살았다면 박녹주씨도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시대가 보수적인 시절이었어도 어차피 예인이란 만인의 연인이나 다름없으니 굳이 구애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을테니요...

 

1979년 73세까지 세상을 살다 떠난 박녹주씨는 말년에 김유정을 회고하면서 회한어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요지는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해서 벌을 받아 평생 가난하고 슬하에 자식하나 없이 살았나 보오. 그이가 그렇게 훌륭한 소설가일줄 알았다면 손이라도 한번 잡게 해줄 걸 그랬지요'였다고 합니다.

 

 

*출처:'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두번째 이야기'란 책 9~19쪽을 기본 자료로 하고 컴퓨터에서 김유정,박녹주 검색하여 나온 글들 을 참고하였습니다.깊이 있는 내용은 검색하여 나온 글들에 많으니 필요하면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