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로 더 알려지게 된 '중력'과 '시간'과의 상관관계는 그저 우주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물리학에서는 중력의 차이에 따라 시간의 완급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가령 지구상에서의 시간은 인공위성에서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릅니다. 지구 표면의 중력이 우주 공간속 인공위성에서의 중력보다 크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흘러갑니다.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시간과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는 시간이 똑같을 수는 없지요. 지루하고 슬픈 시간은, 즐겁고 기쁜 시간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갑니다. 저는 그 힘을 우주적 중력과 분리해 '제2의 중력'이라 부릅니다.
2014년도 이제 일주일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적확하게 맞아 떨어질 정도로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한 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추악한 괴물들이 한꺼번에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안전 불감증, 소통 부재, 관료주의라는 이름의 괴물들 말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갖고 있던 믿음들을 여지없이 부숴버린 비극이었습니다. 돈보다는 생명이 우선일 것이란 믿음, 정부가 국민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자리에 걸맞은 책임을 질 것이라는 믿음들.
우리는 총체적인 부실의 집합체를 적나라하게 마주보며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후진국 국민이었던 것입니다. 덩치만 컸지 정신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한 어린애와 같았던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대한민국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이 되는 쪽'에서는 훌쩍 컸을지 모르지만 '돈이 안 되는 쪽'에서는 성장을 멈추고 퇴보하고 있었습니다.
사랑, 희생, 배려, 양심, 책임감, 직업윤리…보이지는 않지만 중력처럼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서서히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고, 서로 이끌리게 하고, 한데 묶어주는 힘. 이른바 '제3의 중력'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아파트 경비원 분신' '염전노예' 사건 등은 제3의 중력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무기력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거꾸로 가는 시간 속에서 '황제노역'이란 말도 등장했습니다. 90년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박이 꼴입니다. 우리는 20년전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갑질'의 대명사가 된 '땅콩회항'은 또 어떻습니까. 이 또한 중력을 잃어버린 비극적 결과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인간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편집증이 불러온 사건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새해를 이야기할 때면 경제성장률을 말하고, 살림살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도 그렇고, 국민들도 그랬습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 등등.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돈'에만 국한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잘산다'는 말에는 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 아동이나 여성들의 행복지수가 꼴찌를 달리는 건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이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더 사랑하세요" "가족과 이웃을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한 해가 되세요"라는 덕담을 듣고 싶습니다. 2015년은 중력의 힘을 찾아 더 이상 비극이 없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머니투데이- 이승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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