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27일은 유엔총회가 지정한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다. 1945년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해방한 날에 맞췄다. 유엔총회가 지정 결의안을 통과한 것이 2005년 11월 1일이니 올해가 열 번째다. 놀라운 건 유엔이나 국제사회보다 독일이 먼저 나섰다는 점이다. 1996년 1월 3일 로만 헤어초크 당시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사회주의(나치) 희생자 추념의 날’로 지정했다.
전후 독일은 과거 나치와 확실하게 단절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을 다짐하는 자세를 보여 왔다. 결정적인 것이 45년 전인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물 앞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다. ‘바르샤바 무릎꿇기’로 불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은 유대인은 물론 2차대전 중 엄청난 피해를 보았던 동유럽인들에게 전후 독일이 나치와 확실하게 다름을 각인시켰다. 과거와의 단절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에서 나오지 망각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이다. 덕분에 브란트가 추진한 동구권과의 화해정책인 ‘동방정책’이 탄력을 받았다.
2013년 8월 20일 다하우 수용소 터에 가서 고개를 숙였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26일 “나치 만행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라고 역설했다.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사과는 끝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독일에는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면 처벌받는 법도 있다. 장래 독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된다면 이 같이 역사 앞에 한없이 겸허한 태도가 한몫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독일이라고 과거사 반성에 국내 정치적인 부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심한 보복을 당해 독일도 피해국이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1945년 2월 13~15일의 드레스덴 폭격이다. 영국과 미국은 폭격기 722대로 3900t의 고폭탄과 인화물을 투하했다. 당시 나치 선전기관은 무고한 피란민을 중심으로 20만 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전후 철저한 조사로 사망자를 최고 2만5000명으로 수정했지만, 이날을 전후해 독일의 일부 세력은 연합군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실향민’도 정치적 부담이다. 전후 독일이 폴란드·러시아에 떼준 영토의 주민은 물론 수백 년 전부터 체코·헝가리·루마니아 등에 이주해 살았던 독일계의 후손도 지금의 독일 땅으로 추방됐다. 그 숫자는 1200만~1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중 47만~60만 명은 추방 도중에 보복 학살됐다. 이들과 그 후손의 일부는 전후 ‘우리는 피해자’라는 인식 속에 영토 수복을 요구하는 세력으로 남았다.
중요한 표밭일 수 있는 이들에게 독일 정치인들은 어떻게 대했을까? 96년 9월 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실향민의 날’ 행사에서 당시 헤어초크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날 “민족반역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연설을 이어갔다. 헤어초크는 실향민 앞에서 “(전후 상실한) 동프로이센·상슐레지엔·동포메른에서 태어난 독일인들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국제법상 이곳은 현재 폴란드와 러시아의 땅”이라며 “우리는 옛 독일 영토를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00여 명의 실향민은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지만 대통령은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다. 연설을 마친 그는 기자들 앞에서 “정치인이 인기에만 영합한다면 그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독일의 진정한 발전은 주변국들과 선린우호를 더욱 다지는 데 있지 현실성 없는 옛 땅 회복이나 부르짖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독일의 국격을 높인 것은 물론이다.
그런 대통령이 정한 ‘희생자 추념의 날’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그 20년 동안 독일이 유럽연합(EU)의 구심점으로서 존경받는 나라가 된 것은 브란트·헤어초크·메르켈 등 큰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눈앞의 표만 쫓는 작은 정치인이 판을 치는 나라는 존경받기 어렵다.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큰 정치인이 못 되는 것은 일본에는 물론 아시아에도 불행한 일일 것이다.
* 중앙일보-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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