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전투 목록
상위 항목 : 전쟁
1.2. 1000~200 BCE ¶
490 BCE | 마라톤 전투 | 아테네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을 격퇴. 1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
480 BCE | 테르모필레 전투 | 아케메네스 왕조군이 그리스 동맹군을 격퇴. |
480 BCE | 살라미스 해전 | 그리스 동맹 해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해군 격퇴. |
479 BCE | 플라타이아이 전투 | 그리스 동맹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군 격퇴. 2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
406 BCE | 아르기누사이 해전 | 아테네 함대가 스파르타 함대를 격파. |
405 BCE |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 스파르타 함대가 아테네 함대를 격파.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
333 BCE | 이소스 전투 |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시리아 서쪽의 모든 페르시아 영토 획득. |
331 BCE | 가우가멜라 전투 |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이후 다리우스 3세의 사망과 아케메네스 왕조의 멸망. |
260 BCE | 장평대전 | 백기의 진군이 조괄의 조군을 격파하고 포로 30만을 생매장. |
218 BCE | 트레비아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바르카의 이탈리아 원정 시작. |
217 BCE | 트라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
216 BCE | 칸나이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최대의 승리. |
215 BCE | 데르토사의 전투 | 로마군이 이베리아에서 카르타고군 격퇴. 한니발에게 전달되는 지원 차단. |
212 BCE | 실라루스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
211 BCE | 베티스 고지의 전투 |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이외의 다른 카르타고 장군이 로마에게 거둔 유일한 승리. |
207 BCE | 메타우루스 전투 |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사실상 2차 포에니 전쟁의 판도를 로마 쪽으로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받는다. |
207 BCE | 거록대전 |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이 진나라 군을 격파. 진나라의 멸망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
205 BCE | 팽성대전 |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이 한나라 군을 격파. |
202 BCE | 자마 전투 |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제2차 포에니 전쟁 종결. |
202 BCE | 해하 전투 | 유방군이 항우군 섬멸. 초한쟁패가 끝나고 한 왕조 성립. |
1.3. 200 BCE ~ 기원후 ¶
190 BCE | 마그네시아 전투 | 로마군이 셀레우코스 왕조군 격퇴. 셀레우코스 왕조 패권의 몰락. |
168 BCE | 피드나 전투 | 로마군이 안티고노스 왕조군 격퇴. 로마가 안티고노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마케도니아에 속주 설치. |
109 BCE | 왕검성 전투 | 한무제의 위만조선을 침공해 위만조선의 수도에서 펼처진 2차례의 전투. 결국 왕검성은 함락되었고 위만조선은 멸망했다. |
53 BCE | 카르헤 전투 | 파르티아군이 로마군 격퇴. 크라수스의 사망과 삼두정치의 파탄. |
52 BCE | 알레시아 전투 | 로마군이 갈리아군 격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완성. |
48 BCE | 파르살루스 전투 | 카이사르군이 폼페이우스군 격퇴. 카이사르 독재의 시작. |
31 BCE | 악티움 해전 | 옥타비아누스 측 해군이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측 해군 격퇴. 로마 내전 종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
2.1. 기원후~10세기 ¶
8 CE | 토이토부르크 전투 | 게르만 연합군이 로마군 격퇴.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정복 포기. |
170 CE | 1차 좌원전투 | 신대왕 5년 후한 현도 태수 경림이 고구려를 치려다가 좌원에서 패배. 이와 유사한 기록이 신대왕 4년, 8년 기사에 존재함. |
194 CE | 2차 이소스 전투 |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와 싸워 승리. 세베루스가 단독 황제로 등극. |
200 CE | 관도대전 | 후한 말기 유력 제후였던 조조와 원소의 무력충돌. 조조의 승리. |
208 CE | 적벽대전 | 후한 말 중국 북부를 제압한 제후 조조가 남쪽으로 세력확대를 꾀하나 유비, 손권 연합군에게 패배. 남부 진출에 실패한다. |
217 CE | 니시비스 전투 | 마크리누스의 로마군과 파르티아군 사이의 전투. 파르티아에 유리한 강화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파르티아측도 큰 피해를 입어 224년 파르티아 멸망의 단초가 된다. |
221 CE | 이릉대전 | 촉한 황제 유비가 죽은 관우, 장비의 복수를 하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오를 침공하나 패한다. |
244 CE[1] | 비류수 전투 | 고구려의 동천왕이 위나라의 관구검에게 패배한 전투. 가히 고구려 역사를 통틀어서 최악의 패배 중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으며, 그 파급력만큼은 쌍령 전투, 현리 전투 같은 한국 역사상의 기라성 같은 패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378 CE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고트족이 동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의 군대를 절멸. 이후 로마 내에 게르만족의 대 이동을 불러옴. |
383 CE | 비수대전 | 북중국을 통합한 전진이 남중국의 동진을 침공했다가 패배. 이후 전진은 공중분해되어 북중국은 여러 이민족 왕조들이 다시 난립했고, 동진은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유유의 유송에 멸망. |
451 CE | 카탈라우눔 전투 |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서로마 제국, 서고트 연합군이 갈리아를 침공한 아틸라의 훈족 군대를 패배시킴. |
507 CE | 부예 전투 | 서고트 왕국과 프랑크 왕국이 루아르 강 유역을 두고 충돌. 패배한 서고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프랑크 왕국은 아키텐 일대까지 영역이 확장되어 서유럽의 패자로 거듭남. |
612 CE | 살수대첩 |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대를 격퇴. |
622 CE | 3차 이소스 전투 | 동로마 제국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승리. |
624 CE | 바드르 전투 |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무슬림 군대가 메카와 메디나[2] 사이의 바드르에서 반대파 부족을 물리침. 이슬람 문명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
636 CE | 까디시야 전투 |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라크의 알 까디시야 근교에서 사산 왕조 이란 군대 격파. 사산 왕조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
644 CE | 니하완드 전투 |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란의 니하완드에서 사산 왕조 군대 격파. 사산 왕조의 실질적 멸망. |
645 CE | 안시성 전투 | 고구려-당 전쟁에서 고구려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를 격퇴.[3] |
660 CE | 황산벌 전투 | 백제 계백이 이끄는 백제의 5천 별동대가 보급을 맡은 신라군에게 전멸. 이로서 당-신라 연합군이 결성되어 백제 멸망. |
732 CE | 투르-푸아티에 전투 | 투르 및 푸아티에에서 샤를 마르텔의 프랑크 왕국 군대가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격파. 이로서 카톨링거 가문의 입지가 확고해져 프랑크 왕위를 차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
751 CE | 탈라스 전투 | 당나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중앙아시아 탈라스강 유역에서 아바스 왕조군에게 전멸.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으로 전파된다. |
899 CE | 비뇌성 전투 |
후삼국시대의 호족 양길과 궁예가 비뇌성(경기도 가평)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한 궁예는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하고 후고구려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
927 CE | 팔공산 전투 |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팔공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견훤의 승리. 위 승리로 견훤은 후백제 건국 후 가장 넓은 세력 판도를 갖게 된다. |
930 CE | 고창 전투 |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경북 안동인 고창에서 맞붙은 전투. 왕건의 승리. 사실상 후삼국 시대의 승패를 결정 지은 전투이다. |
955 CE | 레히펠트 전투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가 다뉴브 강[4]지류 레히강에서 마자르족(헝가리인)을 격파 |
2.2. 11~16세기 ¶
1010 CE | 통주 전투 | 요성종의 주력군이 강조의 고려군을 격파. 고려는 야전 주력군을 잃고 수도 개경까지 내주게 됨. |
1019 CE | 귀주 대첩 |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소배압의 거란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여요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고려가 된다. |
1066 CE | 헤이스팅스 전투 | 윌리엄 1세가 이끄는 노르만 군이 잉글랜드 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노르만 정복이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
1071 CE | 만지케르트 전투 | 셀주크 제국의 술탄인 알프 아르슬란이 동로마 제국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총사령관인 황제 로마누스 4세를 생포. 동로마 제국이 소아시아를 상실하고 쇠퇴하기 시작. |
1187 CE | 하틴 전투 |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이 예루살렘 왕국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90여년 만에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손으로 넘어감. |
1212 CE |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 기독교 연합군과 무와히드 왕조간의 전투. 이 전투 이후 무슬림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최종적으로 1492년 나스르 왕조의 멸망으로 레콘키스타 종결. |
1223 CE | 칼가강 전투 | 몽골의 러시아 침공. |
1231 CE | 철주성 전투 | 패배했지만 치열했던 전투. |
1231 CE | 동선역 전투 | 당대 최강의 몽골군을 상대로 야전(野戰)에서 거둔 첫 승리 |
1231 CE | 안북성 전투 | 몽골의 1차 침입의 향방을 가른 전투. |
1231 CE | 제1차 자모산성 전투 | 1개월간 몽골군의 발을 묶다. |
1231 CE | 귀주성 전투 | 고려 대몽항쟁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하지만 결과는…. |
1232 CE | 처인성 전투 | 대몽항쟁 중 몽골의 2차 침입을 종식시킨 극적인 전투. |
1236 CE | 제2차 자모산성 전투 | 몽골 주력군에 의해 자모산성 함락. |
1241 CE | 레그니차 전투 | 몽골 제국 군대가 폴란드, 모라비아, 튜튼기사단의 연합군을 슐레지엔에서 격파. 그러나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더 이상 유럽 진출을 포기. |
1260 CE | 아인잘루트 전투 | 맘루크 왕조가 몽골 제국의 군대를 시리아에서 격파. 몽골 제국의 아프리카 진출 저지. |
1346 CE | 크레시 전투 |
백년전쟁 초반의 대규모 전투. |
1356 CE | 푸아티에 전투 | 에드워드 왕세자가 지휘하는 영국군이 장 2세의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장 2세는 영국의 포로가 됨. |
1363 CE | 파양호 대전 | 주원장과 진우량의 전투.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군 전투. |
1370 CE | 요동 전투 |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 요동을 차지하게 된 전투 |
1389 CE | 코소보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불가리아·왈라키아·알바니아·보스니아 연합군 간의 전투. 오스만 술탄 무라드 1세가 암살당하나 바예지드 1세가 즉시 왕위를 승계하고 연합군 격파.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점령하는 기틀 마련. |
1396 CE | 니코폴리스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유럽 연합군간의 전투. 투르크 제국이 발칸 반도의 패권 장악. |
1402 CE | 앙카라 전투 | 티무르와 오스만 제국간의 전투. 티무르의 승리. 오스만 제국 술탄 바예지드 1세가 포로로 잡힘. |
1410 CE | 그룬발트 전투 |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이 튜튼기사단의 동진을 타넨베르크(그룬발트)에서 격파. 튜튼기사단의 동진 저지 및 폴란드의 동프로이센 획득. |
1415 CE | 아쟁쿠르 전투 | 헨리 5세의 영국군이 샤를 6세의 프랑스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영국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 획득. |
1444 CE | 바르나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유럽 연합군간의 전투. 앙카라 전투이후 오스만 제국이 다시금 발칸 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인. 유럽의 마지막 대(對)오스만 연합 공격전. |
1453 CE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트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7주간의 포위 끝에 함락. 비잔티움 제국 멸망. |
1514 CE | 찰디란 전투 |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간의 카프카스, 아나톨리아 지역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투. 포병을 활용한 오스만 군이 기병 위주의 사파비 군을 격파하고 일시적으로 사파비 왕조의 수도인 타브리즈를 점령. |
1520 CE | 슬픔의 밤 |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제국 정복이 한순간 좌절되다. |
1520 CE | 오툼바 전투 | 아스텍제국의 대군이 소수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원정대를 궤멸시킬고자 한 시도가 좌절되다. |
1525 CE | 파비아 전투 |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와의 전투. 총이 본격적으로 쓰이는 최초의 전투. 신성 로마 제국이 승리하여 카를 5세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다. |
1526 CE | 제1차 파니파트 전투 | 무굴 제국과 북인도의 로디 왕조 간의 전투. 무굴 제국군은 화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로디 왕조를 무너트리고 인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
1527 CE | 사코 디 로마 |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침공. 당시 황제에게 패배한 교황은 산탄젤로로 도주, 제국에 항복하여 결국 교황령을 위시한 코냑 동맹이 붕괴되는 것으로 종식된다. |
1529 CE | 1차 빈 포위 | 전성기의 오스만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실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헝가리에서 멈추게 되었다. |
1556 CE | 제2차 파니파트 전투 | 무굴 제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을 저지. 이후 무굴 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북부 지역을 석권하여 전성기를 개막하게 된다. |
1560 CE | 오케하자마 전투 | 오다 노부나가군이 이마가와 요시모토군을 격파. 10배의 병력차를 극복한 전투 |
1571 CE | 레판토 해전 | 스페인, 베네치아 등 신성동맹 함대가 오스만 제국 함대를 레판토에서 물리침. 오스만 해군은 이후 팽창을 지양하고 북아프리카 토후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
1573 CE | 미카타가하라 전투 |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 이에야스가 대패하여 위기에 몰리나 그 이후 다케다 신겐이 급사하여 오다 노부나가측이 유리하게 된다 |
1575 CE | 나가시노 전투 | 다케다 가쓰요리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간의 전투.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국이 승리하고 이를 계기로 다케다 가문은 몰락하고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의 기회를 잡게 된다. |
1590 CE | 하치오지성 전투 | 도요토미 히데요시군이 후호조씨의 하치오지성을 함락한 전투. 도요토미의 승리. |
1592 CE | 부산진 전투 |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 왜군의 승리. |
1592 CE | 동래성 전투 |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다대포진성 전투 | 임진왜란때 다대포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금산 전투 |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벌어진 두차례의 싸움. 왜군의 승리. |
1592 CE | 용인 전투 |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벌어진 싸움. 조선군은 자기들의 후방으로 일제히 돌격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에 자신을 얻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남쪽으로 내려가... |
1592 CE | 한산도 대첩 | 임진왜란 때 한산도 근역에서 벌어진 싸움. 사실상 임진왜란의 승부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
1592 CE | 진주 대첩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전라도 공격을 사실상 좌절시켰으나 진주목사 김시민은 총탄에 맞고 사망. |
1592 CE | 연안성 전투 | 임진왜란 때 최초로 수성전에서 조선이 승전한 전투. |
1593 CE | 행주 대첩 | 임진왜란 때 행주산 일대에서 벌어진 싸움.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의 승리. |
1593 CE | 제2차 진주성 전투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인해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
1597 CE | 칠천량 해전 | 임진왜란 때 칠천량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 인해 조선수군은 사실상 괴멸. |
1597 CE | 명량 해전 |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 이후 전라도의 제해권은 다시 조선군이 장악. |
1598 CE | 노량 해전 | 조선 수군이 퇴각하는 왜군을 격멸함. 임진왜란을 마무리 짓는 전투 중 하나로 기록. 이순신 전사. |
1600 CE | 세키가하라 전투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난세의 일본을 평정하고 쇼군으로 취임하여 에도 막부를 수립한다. |
2.3. 17~20세기 초반 ¶
1619 CE |
사르후 전투 | 명나라와 누르하치의 후금이 벌인 대전. 이 전투에는 조선의 군대도 파견되어 명군을 위해 싸웠으며, 후금군의 대승으로 끝나 요동 지역의 패권을 만주족이 손아귀에 완벽하게 쥐게 되는 결과를 남기고 말았다. |
1626 CE | 영원성 전투 | 명나라의 원숭환(袁崇煥)과 후금의 누르하치(努爾哈赤)가 영원성(寧遠城)을 놓고 벌인 공성전. 이 전투가 명나라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명의 요동 방어선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듬해인 1627년, 홍타이지가 다시 한번 공격해 들어왔지만 원숭환의 방어에 물러나야 했다. |
1637 CE | 광교산 전투 |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전라도 근왕병과 청군이 격돌하여 청군이 패주한다. |
1637 CE | 자모산성 전투 |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평안도 근왕병이 청군을 격퇴시킨다. |
1637 CE | 쌍령 전투 | 병자호란 중 경기도 광주에서 4만의 조선군이 수천의 청군과의 접전에서 초기 300여의 기병돌격에 당황하다가 패퇴하였다. |
1683 CE | 2차 빈 포위 | 오스만 제국이 다시 한번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유럽 영토의 상당수를 상실하며 몰락하기 시작한다. |
1709 CE | 폴타바 전투 | 대북방전쟁때 스웨덴이 러시아로 진격해 벌어진 전투. 러시아가 승리하여 북유럽 지역의 패권을 획득하였으며, 스웨덴은 이후 열강의 반열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됨. |
1796 CE | 아르콜 다리 전투 | 프랑스 혁명 직후 이탈리아 북부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충돌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활약했던 초기의 전투. |
1800 CE | 마렝고 전투 | 제2차 이탈리아 전쟁에서 다시 맞붙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이 여기서 기사회생한다. 해당항목 참조. |
1805 CE | 트라팔가르 해전 | 호레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이 빌뇌브가 이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 격파. |
1805 CE | 아우스터리츠 전투 |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이끄는 연합군을 격파. 삼제회전 |
1815 CE | 워털루 전투 |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군과 아서 웰즐리가 이끄는 영국, 프로이센의 대불동맹군이 맞붙음.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완전히 패배,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 |
1854 CE | 발라클라바 전투 |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충돌한 전투. 영국군의 무모한 닥돌로 유명하다. |
1862 CE | 앤티덤 전투 | 남북전쟁 중 로버트 E. 리가 이끄는 남부군과 북부군 사이의 전투. 하루만에 각각 1만 5천씩의 전사자가 나는 끝에 무승부. 이로써 남부군의 진격은 저지된다. |
1863 CE | 챈슬러스빌 전투 | 남군의 장군 스톤월 잭슨이 사망. |
1863 CE | 게티스버그 전투 | 미군(북군)이 남부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 이후 남북전쟁은 북부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 |
1863 CE | 카메론 전투 | 나폴레옹 3세의 멕시코 원정으로 파견된 프랑스 외인부대가 멕시코군에 맞선 전투. |
1876 CE | 리틀 빅혼 전투 |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인디언 진압대'가 아메리카 원주민군에게 몰살된 전투. 이후 커스터 중령은 미국에 의해 영웅시 되나 실상 그는 무능하고 잔인한 장교였을 뿐이다. |
1904 CE | 203고지 전투 | 러일전쟁 중 일본군이 요새도시 뤼순의 203고지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하나 저열한 전술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다. |
1905 CE | 봉천 전투 | 러일전쟁 중 일본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최대규모의 지상전. 일본군은 약전고투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러시아군의 섬멸에는 실패했다. |
1905 CE | 쓰시마 해전 | 도고 헤이하치로의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
2.4.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
1914 CE | 국경전투 | 1차대전초,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평시에 준비한 전쟁계획을 서로를 향해 발동한다. 끔찍한 피해를 낳은 대결끝에 프랑스군은 패배하고 1차 마른 전투를 벌일 때까지 후퇴한다. |
1914 CE | 탄넨베르크 전투 | 독일군이 공세에 나선 러시아군 2개 군을 섬멸함. 그러나 전투 지원을 위해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면서 전력공백이 발생해 서부전선이 고착된다. |
1914 CE | 1차 마른 전투 | 파리로 향하던 독일군이 연합군의 반격에 막혀 진격이 좌절됨. 슐리펜 계획이 실패하면서 서부전선의 전황은 참호전으로 교착화된다. |
1915 CE | 갈리폴리 전투 | 오스만 제국이 영국 해군의 공격을 격퇴함. |
1916 CE | 베르됭 전투 |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되며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
1916 CE | 유틀란트 해전 |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의 주력함대가 격돌해 독일 함대가 승리함. 그러나 독일 함대는 이후 외해 진출을 포기한다. |
1916 CE | 솜 전투 | 영국군이 베르됭 공세에 맞서 독일군에 대해 공세를 시도하나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
1917 CE | 카포레토 전투 | 독일-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군에 대규모 반격을 개시하여 승리한다. |
1918 CE | 백일 전투 | 1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최후 공세 |
2.5. 한반도 독립 운동 (1919~1939) ¶
1920 CE | 봉오동 전투 |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 추격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로 자신감을 얻은 독립군은 뒤이어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
1920 CE | 청산리 전투 | 김좌진, 홍범도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 추격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각각 3천여 부대가 맞붙은 전투에서 독립군은 1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일본군은 1,200명의 전사자를 낸다. |
1937 CE | 보천보 전투 | 김일성이 100여명의 부하와 함께 일제로부터 시골마을을 하루동안 점령한 사건. 이로써 그는 유명해졌고 따라서 이 전투는 훗날 북한 왕조의 왕이 되는 시발점이 된다. |
2.6.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
1939 CE | 할힌골 전투 | 몽골 영토에서 일어난 소련군과 일본군 사이의 무력충돌. 소련군의 승리.[5] |
1939 CE | 폴란드 침공 | 2차대전의 서막을 올린 전투. 나치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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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CE | 프랑스 침공 |
6주만에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 독일 승리. 이후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33만명의 연합군이 탈출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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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CE | 아라스 전차전 | 영국 대륙원정군 소속 전차부대가 독일군과 교전. |
1940 CE | 캐터펄트 작전 | 프랑스가 항복하자 프랑스 해군이 독일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은 프랑스 해군을 습격한다. |
1939~45 CE | 대서양 전투 | 대서양에서 전개된 독일과 연합국 해군간의 일련의 전투. 영국의 항로봉쇄 및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병참보급로 차단이 독일측의 목적이었으나 실패한다. |
1940 CE | 영국 본토 항공전 |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함. 이후 독일군은 영국 본토 침공을 포기. |
1940 CE | 타란토 공습 |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 해군기지 타란토를 공습. 이로 인해 이탈리아군은 지중해 재해권을 상실. |
1941 CE | 비스마르크 추격전 | 독일 해군과 영국 해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
1941 CE | 유고슬라비아 침공 | 유고슬라비아에서 친영국 쿠데타가 발생하자 추축국은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한다. |
1941 CE | 바르바로사 작전 | 독소전쟁의 서막. 독일군은 전투에서는 승리하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
1941~2 CE | 모스크바 공방전 | 바르바로사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
1941~2 CE | 세바스토폴 공방전 | 독일군이 소련의 군항인 세바스토폴을 3배의 병사로 포위, 점령하고 10만에 달하는 소련군은 전멸한다. |
1941~44 CE | 레닌그라드 공방전 | 871일동안 지속된 전투. 44년 전황 악화로 독일군이 퇴각. |
1941 CE | 진주만 공습 | 일본 해군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을 기습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은 중립을 포기하고 추축군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한뒤 연합군으로 참전한다. 이로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
1941 CE | 말레이 해전 | 영국 동양 함대가 일본항공대에 의해 궤멸당한다. |
1941 CE | 웨이크 섬 전투 | 일본군의 공격에 수적 열세인 미군이 분투한다. |
1941~2[6] CE | 싱가포르 전투 | 동남아시아의 영국군 거점 싱가포르를 일본군이 점령한다. |
1942 CE | 로스앤젤레스 전투 | 로스앤젤레스 상공의 정체모를 비행체에 미군이 일제히 방공포를 쏜 사건. UFO 떡밥의 강력한 증거로 인용된다 |
1942 CE | 산호해 해전 |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산호해에서 미일 해군 기동부대가 충돌한다. 항모 기동부대간의 첫 교전 사례. |
1942 CE | 스탈린그라드 전투 | 붉은 군대가 나치독일군 제6군을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공격, 섬멸함. 이로 인해 독일군은 수십만 병력과 물자를 잃음. |
1942 CE | 미드웨이 해전 |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 근해에서 일본 해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미군의 손으로 넘어간다. |
1942 CE | 엘 알라메인 전투 |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군단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부 엘 알라메인에서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이끄는 영국 제8군에게 저지당한다. |
1942 CE | 사보섬 해전 | 과달카날 인근 사보섬에서 미일 함대가 충돌. 순양함을 다수 상실한 미군측의 패배로 평가. |
1942~3 CE | 과달카날 전투 | 미군이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일본 육군 역시 미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
1942 CE | 횃불 작전 | 영미 연합군이 비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 |
1942 CE | 바렌츠 해 해전 | 북극권 바렌츠해에서 소련을 향한 연합군 병참항로를 저지하려는 독일해군 수상함대의 "마지막 저항다운 저항". |
1943 CE |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 독일군 승리.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피해를 만회 |
1943 CE | 쿠르스크 전투 | 붉은 군대가 나치독일군을 상대로 승리. 특히 프로호르프카에선 양군 도합 900여대의 전차가 격돌한 전무후무한 사상 최대의 대전차전[7][8] 이며, 이로 인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공세 전력을 상실. |
1943 CE | 타라와 전투 |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에 주둔한 일본군을 미군이 섬멸함. 태평양 전쟁에서 전개된 미군의 도서 상륙과 고립된 일본군의 전멸 양상은 사실상 여기부터 시작된다. |
1943 CE | 몬테카시노 전투 | 독일군을 잡겠답시고 중세시대에 지어지고 방대한 양의 고문서들을 보관중이던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수만톤의 TNT로 날려버리면서 시작. 문제는 독일군은 케셀링 원수의 명령으로 수도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않았다는것. 수도원내의 일반 피난민들과 성직자들만 피해를 입었으며 결과적으로 폐허가 된 수도원 터에 독일군이 자리를 잡고 연합군을 몇개월간 괴롭힌다. 나중에 독일군이 철수하자 연합군중 일부(자유 폴란드군과 자유 프랑스군)는 약탈, 학살, 강간등 온갖 병크를 터뜨렸다.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전투중 가장 막장이였던 전투. |
1944 CE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 |
1944 CE |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 | |
1944 CE | 임팔 작전 | 일본군의 역사적인 최악의 병크. 무타구치 렌야의 작전 입안하에 일본군은 보급 받지 않는 상태로 정글을 가로질러 임팔을 기습하고 격퇴당해 총 7만 2천의 사망자를 낸다. |
1944 CE | 노르망디 상륙작전 |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 프랑스 해방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
1944 CE | 빌레르보카쥬 전투 |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미하일 비트만 휘하 독일 전차대가 싸운다. |
1944 CE | 필리핀 해 해전 |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 상륙을 앞둔 미군이 일본군 항공전력을 말 그대로 사냥했다! |
1944 CE | 사이판 전투 | 타라와 전투의 확대 버전(…). 전쟁의 비극을 대표하는 충공스러운 절벽 투신 장면이 바로 여기에서(…). |
1944 CE | 레이테 만 해전 | 필리핀 상륙을 앞둔 미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군 사이의 "제대로 된" 해상작전임무. 동원함선 톤수로는 최고기록. 여기서 괴멸한 일본해군은 기댈 곳이 없어 결국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
1944 CE | 바그라티온 작전 | 소련군이 동유럽 지역에 대한 일대 공세를 실시함. 독일의 동맹국들이 항복하고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
1944 CE | 마켓 가든 작전 | 연합군의 오만이 참극을 가져왔다. |
1944 CE | 휘르트겐 숲 전투 | 서유럽을 거의 해방시키고 독일 국경까지 접근한 미군은 휘르트겐 숲 지크프리트 선에서 독일군의 저항에 직면한다. 여기서 시간을 벌어 반격의 준비를 마친 독일군은 마침내... |
1944 CE | 아르덴 대공세 | 독일군이 서부전선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됨. 이로서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도 여력을 상실한다. |
1945 CE | 람리섬 전투 | 람리섬에서 영국군과 일본군간에 벌어진 전투. 일본군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가로질러 반자이 어택을 시전해 악어밥이 되는 병크를 저지른다. |
1945 CE | 베를린 전투 |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이 포위되고, 히틀러가 자살했으며 되니츠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이 끝났다! |
1945 CE | 이오지마 전투 | 미군이 이오지마에 틀어박힌 일본군을 전멸시킴. 일본의 영토에서 벌어진 첫 지상전. 미군 역시 피해가 컸기에 일본 본토 진공에 고심함. |
1945 CE | 오키나와 전투 | 미군이 오키나와 섬에 상륙해 일본 방어군을 섬멸함. 이오지마 전투에 이은 참상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소련에 대일 참전을 요청한다. |
1945 CE | 8월의 폭풍 작전 | 미군의 요청에 따라 붉은 군대가 만주의 일본관동군을 공격, 일본이 믿고 있던 소련 협상과 관동군 전력 둘다 소멸해버린다. 결국 일본 제국은 항복, 전세계의 전쟁이 끝났다! |
2.7. 냉전기(1945년~1991년) ¶
1950 CE | 춘천-홍천 전투 |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6월 25일에서 30일 사이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이 강원도 춘천에서 홍천 방면으로 남하하던 북한군 제2군단의 공세를 저지하여 진격속도를 늦춘 전투. |
1950 CE | 다부동 전투 | 대한민국 국군 제1보병사단이 북한군 상대로 낙동강 전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됨. |
1950 CE | 인천 상륙작전 | 미군이 대한민국 인천에 투입되어 서울까지 진격. 이로 인해 한국전쟁 초반 밀리던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반격할 수 있게 됨. |
1950 CE | 장진호 전투 |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한 미 해병 제1사단이 함흥/흥남항 방면으로 진군한 사건.[9] 흥남 철수는 이 전투의 연장선상에 있다. |
1951 CE | 1.4 후퇴 |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철수한다. 1950년 6월 28일에 이은 두번째 서울 함락이었다(…). |
1951 CE | 횡성 전투 | 한국전쟁 시기, 1951년 2월 펼쳐진 중공군 3차 공세에서 한국군 제8보병사단이 중공군 13병단의 공격에 궤멸당한 전투. 이 전투로 중공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
1951 CE | 금양장리 전투 |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금양장리(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일대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전투. |
1951 CE | 현리 전투 |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 제3군단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붕괴, 후퇴한다. 이로 인해 한국군은 독자적 작전능력을 상실한다. |
1951 CE | 용문산 전투 |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이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 |
1952 CE | 백마고지 전투 | 한국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을 쏟아부었던 전투. 그리고 중국군이 한국전쟁당시 유일하게 국군에게 패배했다는걸 인정한 전투다. |
1953 CE | 금성 전투 | 한국전쟁 막바지에 대한민국 국군과 중공군이 강원도 금성군 일대의 돌출부를 놓고 벌인 전투. |
1968 CE | 구정 공세 | 베트남 전쟁 당시 사실상 관례화 되어 있는 뗏(베트남말로 구정, 1월 1일) 휴전 중 베트콩이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공세는 실패하나 미국의 반전여론에 불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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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국사기에서는 246년이다. 244년은 관구검기공비의 기록
- [2] 메카에서 박해받던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이주한 도시로 이슬람교 제2의 성지가 되었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히즈라 هِجْرَة Hijrah / 헤지라 Hejira'(성스러운 이주)를 실행한 해(622 CE)는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정해졌다.
- [3] 흔히 알려진 안시성주의 이름 양만춘은 야사로 전해질 뿐이고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4] 로마 시대의 국경선으로 유명한 도나우 강으로도 알려져 있다.
- [5] 일본은 이를 노몬한 사변이라고 축소해 사실을 은폐했다.
- [6] 싱가포르 함락 자체는 1942년 2월이지만 이를 최종목표로 하여 사전에 전개된 말레이반도 상륙은 1941년 12월이었다. 싱가포르 전투의 범위를 싱가포르 지역에만 국한할 것인지, 말레이반도 전투 전체를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전투개시 연도가 달라진다.
- [7] 걸프 전쟁에서도 메디나 리지 전투에서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졌지만, 미 제 1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체 전차가 348대인거지 전차전 규모가 제 1기사 전체가 가담한게 아니다. 이라크의 경우도 메디나 사단 휘하 연대급 부대들이 참가했으며 참가 규모는 미 육군 보다 크긴 했고 현대전 치고는 유래없는 대규모 전차전이긴 했으나. 쿠르스크 특히 프로호로프카와 비교할 규모는 아니다.
- [8] 쿠르스크 일대에 독일군은 전차 및 자주포 2,700대를, 소련군은 전차 및 자주포 3,600대 (기록에 따라 8천대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를 배치하였다.
- [9]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은 후퇴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후퇴라니? 빌어먹을, 우리는 다른 쪽으로 공격 중이라고!"라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