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야대전 牧野大戰
1. 개요 ¶
2. 배경 ¶
사기에 따르면 상나라의 마지막 왕 제신은 흉악한 폭군이었다. 제신은 주지육림, 포락지형 등의 혹형을 만들며, 주나라의 주문왕(서백 창)을 잡아 가두고, 그의 장자 백읍고를 요리해서 먹게 하는 등 잔악한 행동을 벌였다. 또한 각지를 정벌하여 원성이 가득해졌다.
주문왕은 서주에 돌아온 후, 인근 국가를 병탄하여 국력을 강화하고, 또한 상나라에 원한이 깊은 제후들에게 손을 써서 주나라의 국력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이미 노령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은 다음, 주무왕이 왕위에 오른다.
주무왕의 군대는 상나라의 허를 찔러 공격을 시작하고, 제후들의 군대도 이에 참가하여 순식간에 대군이 되었다. 상나라는 멸망할 듯이 보였지만, 주무왕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한 차례 군사를 물렸다.
3. 전투 ¶
몇년 후, 주무왕은 다시 상나라를 공격했다. 주군은 맹진(孟津)에서 황하를 건너려 했은, 폭풍이 불어와 강을 건널 수 없었다. 무왕은 분노하여 황하의 신 하백에게 천명은 이미 내려졌다. 어째서 방해하는가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러자 폭풍우가 멎어 주나라 군대는 강을 거널 수 있었다. 이 때 배 안에 뱅어가 뛰어들어 왔는데, 흰색인 뱅어는 상나라를 상징하는 색이므로 상서롭게 여겨졌다.
주나라 군대와 상나라 군대는 주나라의 수도 조가(朝歌)에 가까운 목야(牧野)에서 결전하게 되었다. 사기 주본기에 따르면 상나라는 준비에 만전을 기하여 70만 대군을 동원했다, 반면 주나라는 제후들의 군대를 더해도 40만이었다. 전투 직전에 또 다시 폭풍우가 불었지만, 무왕은 상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패배시킨 명조(鳴条) 전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은 상서로운 일이라고 격려하였다.
상나라 군대는 숫적으로는 훨씬 우세하였으나, 그 수는 전장에서 길흉을 점치는 신관이 포함되어 있었고, 복속된 작은 국가의 군대들까지 섞여 있어 질이 나빳다. 상나라 군대의 전열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주나라 군대에게 길을 열어주면서, 대다수가 반기를 들고 주나라 군과 합세하고 나머지 상나라 군을 공격했다.
곽말약은 이 병사들 가운데 노예들까지 섞여 있었다고 추측하며, 제신은 이런 병사들을 앞에 세우고 자신이 믿는 상나라의 정예병은 뒤에 배치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당연히 노예나 항복한 병사들은 전투가 시작되자 반기를 들어 일으키고 주나라 군대에 협력하여 상나라 군대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혹은 강태공이 이미 이렇게 되도록 음모를 써서 계략을 꾸며 두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아무튼 결국 전투는 상나라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이 한번의 싸움으로 상나라는 궤멸된다.
5. 여담 ¶
- 천하장사 악래(惡來) 역시 이 싸움에 출진했으나 죽었다고 한다.
- 사기 주본기에 따르면 이 싸움에서 주와 함께한 제후군은 용(庸),촉(蜀),강(羌),髳,微,纑,彭,濮이다.
- 상서에 따르면 주왕을 제거한 날의 간지는 갑자(甲子) 였다고 하는데 청동기 명문에서도 확인된다.
- 근래의 갑골문 연구에 따르면, 당시 제신은 상나라의 주력 군대를 동방으로 출진시키고 있었다. 목야의 싸움에서 노예나 항복한 병사를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상서 목서에서 주무왕은 제후 연합군과 맹세를 하면서 "암탉이 새벽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 지금 은나라의 군주는 여자 말만 듣고 현명한 사람의 말을 멀리하고..." 라는 발언을 했다. 속담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여기서 기원한 것이다. < 출처: 엔하위키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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