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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전투 목록

Bawoo 2015. 2. 5. 04:31

 

세계 주요 전투 목록

상위 항목 : 전쟁


Contents

1. 기원전
1.1. ~1000 BCE
1.2. 1000~200 BCE
1.3. 200 BCE ~ 기원후
2. 기원후
2.1. 기원후~10세기
2.2. 11~16세기
2.3. 17~20세기 초반
2.4.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2.5. 한반도 독립 운동 (1919~1939)
2.6.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2.7. 냉전기(1945년~1991년)
2.8. 현대전(1991년~)

연도 이름 설명

1.1. ~1000 BCE

1274 BCE 카데시 전투 이집트히타이트의 전투
1027 BCE 목야대전 상나라의 마지막 왕 제신주나라 무왕과 싸운 전투. 이 전투의 패배로 상나라의 멸망이 확정되었다.

1.2. 1000~200 BCE

490 BCE 마라톤 전투 아테네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을 격퇴. 1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480 BCE 테르모필레 전투 아케메네스 왕조군이 그리스 동맹군을 격퇴.
480 BCE 살라미스 해전 그리스 동맹 해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해군 격퇴.
479 BCE 플라타이아이 전투 그리스 동맹군이 아케메네스 왕조 군 격퇴. 2차 페르시아 전쟁 종결.
406 BCE 아르기누사이 해전 아테네 함대가 스파르타 함대를 격파.
405 BCE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스파르타 함대가 아테네 함대를 격파.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333 BCE 이소스 전투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시리아 서쪽의 모든 페르시아 영토 획득.
331 BCE 가우가멜라 전투 마케도니아군이 아케메네스 왕조군 격퇴. 이후 다리우스 3세의 사망과 아케메네스 왕조의 멸망.
260 BCE 장평대전 백기의 진군이 조괄의 조군을 격파하고 포로 30만을 생매장.
218 BCE 트레비아 전투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바르카의 이탈리아 원정 시작.
217 BCE 트라시메누스 호수의 전투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216 BCE 칸나이 전투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한니발 최대의 승리.
215 BCE 데르토사의 전투 로마군이 이베리아에서 카르타고군 격퇴. 한니발에게 전달되는 지원 차단.
212 BCE 실라루스 전투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211 BCE 베티스 고지의 전투 카르타고군이 로마군 격퇴.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이외의 다른 카르타고 장군이 로마에게 거둔 유일한 승리.
207 BCE 메타우루스 전투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사실상 2차 포에니 전쟁의 판도를 로마 쪽으로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받는다.
207 BCE 거록대전 항우가 이끄는 나라 군이 진나라 군을 격파. 진나라의 멸망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205 BCE 팽성대전 항우가 이끄는 나라 군이 한나라 군을 격파.
202 BCE 자마 전투 로마군이 카르타고군 격퇴. 제2차 포에니 전쟁 종결.
202 BCE 해하 전투 유방군이 항우군 섬멸. 초한쟁패가 끝나고 한 왕조 성립.

1.3. 200 BCE ~ 기원후

190 BCE 마그네시아 전투 로마군이 셀레우코스 왕조군 격퇴. 셀레우코스 왕조 패권의 몰락.
168 BCE 피드나 전투 로마군이 안티고노스 왕조군 격퇴. 로마가 안티고노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마케도니아에 속주 설치.
109 BCE 왕검성 전투 한무제위만조선을 침공해 위만조선의 수도에서 펼처진 2차례의 전투. 결국 왕검성은 함락되었고 위만조선은 멸망했다.
53 BCE 카르헤 전투 파르티아군이 로마군 격퇴. 크라수스의 사망과 삼두정치의 파탄.
52 BCE 알레시아 전투 로마군이 갈리아군 격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완성.
48 BCE 파르살루스 전투 카이사르군이 폼페이우스군 격퇴. 카이사르 독재의 시작.
31 BCE 악티움 해전 옥타비아누스 측 해군이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해군 격퇴. 로마 내전 종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2. 기원후

2.1. 기원후~10세기

8 CE 토이토부르크 전투 게르만 연합군이 로마군 격퇴.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정복 포기.
170 CE 1차 좌원전투 신대왕 5년 후한 현도 태수 경림이 고구려를 치려다가 좌원에서 패배. 이와 유사한 기록이 신대왕 4년, 8년 기사에 존재함.
194 CE 2차 이소스 전투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와 싸워 승리. 세베루스가 단독 황제로 등극.
200 CE 관도대전 후한 말기 유력 제후였던 조조원소의 무력충돌. 조조의 승리.
208 CE 적벽대전 후한 말 중국 북부를 제압한 제후 조조가 남쪽으로 세력확대를 꾀하나 유비, 손권 연합군에게 패배. 남부 진출에 실패한다.
217 CE 니시비스 전투 마크리누스의 로마군과 파르티아군 사이의 전투. 파르티아에 유리한 강화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파르티아측도 큰 피해를 입어 224년 파르티아 멸망의 단초가 된다.
221 CE 이릉대전 촉한 황제 유비가 죽은 관우, 장비의 복수를 하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를 침공하나 패한다.
244 CE[1] 비류수 전투 고구려동천왕위나라관구검에게 패배한 전투. 가히 고구려 역사를 통틀어서 최악의 패배 중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으며, 그 파급력만큼은 쌍령 전투, 현리 전투 같은 한국 역사상의 기라성 같은 패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378 CE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고트족동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스의 군대를 절멸. 이후 로마 내에 게르만족의 대 이동을 불러옴.
383 CE 비수대전 북중국을 통합한 전진이 남중국의 동진을 침공했다가 패배. 이후 전진은 공중분해되어 북중국은 여러 이민족 왕조들이 다시 난립했고, 동진은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유유유송에 멸망.
451 CE 카탈라우눔 전투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이끄는 서로마 제국, 서고트 연합군이 갈리아를 침공한 아틸라훈족 군대를 패배시킴.
507 CE 부예 전투 서고트 왕국프랑크 왕국이 루아르 강 유역을 두고 충돌. 패배한 서고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로 영역이 축소되었고 프랑크 왕국은 아키텐 일대까지 영역이 확장되어 서유럽의 패자로 거듭남.
612 CE 살수대첩 제2차 고구려-수 전쟁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대를 격퇴.
622 CE 3차 이소스 전투 동로마 제국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승리.
624 CE 바드르 전투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무슬림 군대가 메카메디나[2] 사이의 바드르에서 반대파 부족을 물리침. 이슬람 문명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636 CE 까디시야 전투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라크의 알 까디시야 근교에서 사산 왕조 이란 군대 격파. 사산 왕조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644 CE 니하완드 전투 무슬림 아랍 군대가 이란의 니하완드에서 사산 왕조 군대 격파. 사산 왕조의 실질적 멸망.
645 CE 안시성 전투 고구려-당 전쟁에서 고구려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당나라 군대를 격퇴.[3]
660 CE 황산벌 전투 백제 계백이 이끄는 백제의 5천 별동대가 보급을 맡은 신라군에게 전멸. 이로서 당-신라 연합군이 결성되어 백제 멸망.
732 CE 투르-푸아티에 전투 투르푸아티에에서 샤를 마르텔의 프랑크 왕국 군대가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격파. 이로서 카톨링거 가문의 입지가 확고해져 프랑크 왕위를 차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751 CE 탈라스 전투 당나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중앙아시아 탈라스강 유역에서 아바스 왕조군에게 전멸.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으로 전파된다.
899 CE 비뇌성 전투

후삼국시대의 호족 양길과 궁예가 비뇌성(경기도 가평)에서 충돌한 사건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한 궁예는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하고 후고구려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927 CE 팔공산 전투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팔공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견훤의 승리. 위 승리로 견훤은 후백제 건국 후 가장 넓은 세력 판도를 갖게 된다.
930 CE 고창 전투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지금의 경북 안동인 고창에서 맞붙은 전투. 왕건의 승리. 사실상 후삼국 시대의 승패를 결정 지은 전투이다.
955 CE 레히펠트 전투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가 다뉴브 강[4]지류 레히강에서 마자르족(헝가리인)을 격파

2.2. 11~16세기

1010 CE 통주 전투 요성종의 주력군이 강조의 고려군을 격파. 고려는 야전 주력군을 잃고 수도 개경까지 내주게 됨.
1019 CE 귀주 대첩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소배압의 거란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여요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고려가 된다.
1066 CE 헤이스팅스 전투 윌리엄 1세가 이끄는 노르만 군이 잉글랜드 군을 격멸함. 이로 인해 노르만 정복이 실질적으로 시작되었다.
1071 CE 만지케르트 전투 셀주크 제국의 술탄인 알프 아르슬란이 동로마 제국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총사령관인 황제 로마누스 4세를 생포. 동로마 제국이 소아시아를 상실하고 쇠퇴하기 시작.
1187 CE 하틴 전투 살라흐 앗 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이 예루살렘 왕국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90여년 만에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손으로 넘어감.
1212 CE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기독교 연합군과 무와히드 왕조간의 전투. 이 전투 이후 무슬림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최종적으로 1492년 나스르 왕조의 멸망으로 레콘키스타 종결.
1223 CE 칼가강 전투 몽골러시아 침공. 동장군? 그런 거 없다
1231 CE 철주성 전투 패배했지만 치열했던 전투.
1231 CE 동선역 전투 당대 최강의 몽골군을 상대로 야전(野戰)에서 거둔 첫 승리
1231 CE 안북성 전투 몽골의 1차 침입의 향방을 가른 전투.
1231 CE 제1차 자모산성 전투 1개월간 몽골군의 발을 묶다.
1231 CE 귀주성 전투 고려 대몽항쟁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하지만 결과는….
1232 CE 처인성 전투 대몽항쟁 중 몽골의 2차 침입을 종식시킨 극적인 전투.
1236 CE 제2차 자모산성 전투 몽골 주력군에 의해 자모산성 함락.
1241 CE 레그니차 전투 몽골 제국 군대가 폴란드, 모라비아, 튜튼기사단의 연합군을 슐레지엔에서 격파. 그러나 오고타이 칸의 사망으로 더 이상 유럽 진출을 포기.
1260 CE 아인잘루트 전투 맘루크 왕조가 몽골 제국의 군대를 시리아에서 격파. 몽골 제국의 아프리카 진출 저지.
1346 CE 크레시 전투

백년전쟁 초반의 대규모 전투.

1356 CE 푸아티에 전투 에드워드 왕세자가 지휘하는 영국군장 2세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장 2세는 영국의 포로가 됨.
1363 CE 파양호 대전 주원장진우량의 전투.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군 전투.
1370 CE 요동 전투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 요동을 차지하게 된 전투
1389 CE 코소보 전투 오스만 제국과 세르비아·불가리아·왈라키아·알바니아·보스니아 연합군 간의 전투. 오스만 술탄 무라드 1세가 암살당하나 바예지드 1세가 즉시 왕위를 승계하고 연합군 격파.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점령하는 기틀 마련.
1396 CE 니코폴리스 전투 오스만 제국과 유럽 연합군간의 전투. 투르크 제국이 발칸 반도의 패권 장악.
1402 CE 앙카라 전투 티무르오스만 제국간의 전투. 티무르의 승리. 오스만 제국 술탄 바예지드 1세가 포로로 잡힘.
1410 CE 그룬발트 전투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이 튜튼기사단의 동진을 타넨베르크(그룬발트)에서 격파. 튜튼기사단의 동진 저지 및 폴란드의 동프로이센 획득.
1415 CE 아쟁쿠르 전투 헨리 5세영국군이 샤를 6세의 프랑스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영국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 획득.
1444 CE 바르나 전투 오스만 제국과 유럽 연합군간의 전투. 앙카라 전투이후 오스만 제국이 다시금 발칸 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인. 유럽의 마지막 대(對)오스만 연합 공격전.
1453 CE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오스만 제국의 정복왕 메흐메트 2세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7주간의 포위 끝에 함락. 비잔티움 제국 멸망.
1514 CE 찰디란 전투 오스만 제국사파비 왕조간의 카프카스, 아나톨리아 지역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투. 포병을 활용한 오스만 군이 기병 위주의 사파비 군을 격파하고 일시적으로 사파비 왕조의 수도인 타브리즈를 점령.
1520 CE 슬픔의 밤 에르난 코르테스아스텍제국 정복이 한순간 좌절되다.
1520 CE 오툼바 전투 아스텍제국의 대군이 소수의 에르난 코르테스의 원정대를 궤멸시킬고자 한 시도가 좌절되다.
1525 CE 파비아 전투 신성 로마 제국프랑스와의 전투. 이 본격적으로 쓰이는 최초의 전투. 신성 로마 제국이 승리하여 카를 5세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다.
1526 CE 제1차 파니파트 전투 무굴 제국과 북인도의 로디 왕조 간의 전투. 무굴 제국군은 화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로디 왕조를 무너트리고 인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1527 CE 사코 디 로마 신성 로마 제국로마 침공. 당시 황제에게 패배한 교황은 산탄젤로로 도주, 제국에 항복하여 결국 교황령을 위시한 코냑 동맹이 붕괴되는 것으로 종식된다.
1529 CE 1차 빈 포위 전성기의 오스만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실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헝가리에서 멈추게 되었다.
1556 CE 제2차 파니파트 전투 무굴 제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침공을 저지. 이후 무굴 제국은 인도 아대륙의 북부 지역을 석권하여 전성기를 개막하게 된다.
1560 CE 오케하자마 전투 오다 노부나가군이 이마가와 요시모토군을 격파. 10배의 병력차를 극복한 전투
1571 CE 레판토 해전 스페인, 베네치아 등 신성동맹 함대가 오스만 제국 함대를 레판토에서 물리침. 오스만 해군은 이후 팽창을 지양하고 북아프리카 토후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1573 CE 미카타가하라 전투 다케다 신겐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전투. 이에야스가 대패하여 위기에 몰리나 그 이후 다케다 신겐이 급사하여 오다 노부나가측이 유리하게 된다
1575 CE 나가시노 전투 다케다 가쓰요리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간의 전투. 오다와 도쿠가와의 연합국이 승리하고 이를 계기로 다케다 가문은 몰락하고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의 기회를 잡게 된다.
1590 CE 하치오지성 전투 도요토미 히데요시군이 후호조씨의 하치오지성을 함락한 전투. 도요토미의 승리.
1592 CE 부산진 전투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 왜군의 승리.
1592 CE 동래성 전투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1592 CE 다대포진성 전투 임진왜란때 다대포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1592 CE 금산 전투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벌어진 두차례의 싸움. 왜군의 승리.
1592 CE 용인 전투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벌어진 싸움. 조선군은 자기들의 후방으로 일제히 돌격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에 자신을 얻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남쪽으로 내려가...
1592 CE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때 한산도 근역에서 벌어진 싸움. 사실상 임진왜란의 승부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1592 CE 진주 대첩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전라도 공격을 사실상 좌절시켰으나 진주목사 김시민은 총탄에 맞고 사망.
1592 CE 연안성 전투 임진왜란 때 최초로 수성전에서 조선이 승전한 전투.
1593 CE 행주 대첩 임진왜란 때 행주산 일대에서 벌어진 싸움.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의 승리.
1593 CE 제2차 진주성 전투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인해 전라도 일대는 왜군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1597 CE 칠천량 해전 임진왜란 때 칠천량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싸움. 왜군의 승리. 이로 인해 조선수군은 사실상 괴멸.
1597 CE 명량 해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 이후 전라도의 제해권은 다시 조선군이 장악.
1598 CE 노량 해전 조선 수군이 퇴각하는 왜군을 격멸함. 임진왜란을 마무리 짓는 전투 중 하나로 기록. 이순신 전사.
1600 CE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이에야스난세의 일본을 평정하고 쇼군으로 취임하여 에도 막부를 수립한다.

2.3. 17~20세기 초반

1619 CE

사르후 전투 명나라누르하치후금이 벌인 대전. 이 전투에는 조선의 군대도 파견되어 명군을 위해 싸웠으며, 후금군의 대승으로 끝나 요동 지역의 패권을 만주족이 손아귀에 완벽하게 쥐게 되는 결과를 남기고 말았다.
1626 CE 영원성 전투 명나라원숭환(袁崇煥)과 후금의 누르하치(努爾哈赤)가 영원성(寧遠城)을 놓고 벌인 공성전. 이 전투가 명나라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명의 요동 방어선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듬해인 1627년, 홍타이지가 다시 한번 공격해 들어왔지만 원숭환의 방어에 물러나야 했다.
1637 CE 광교산 전투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전라도 근왕병과 청군이 격돌하여 청군이 패주한다.
1637 CE 자모산성 전투 병자호란에서 몇 안되는 승리. 평안도 근왕병이 청군을 격퇴시킨다.
1637 CE 쌍령 전투 병자호란 중 경기도 광주에서 4만의 조선군이 수천의 청군과의 접전에서 초기 300여의 기병돌격에 당황하다가 패퇴하였다.
1683 CE 2차 빈 포위 오스만 제국이 다시 한번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 빈을 공격하나 패한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유럽 영토의 상당수를 상실하며 몰락하기 시작한다.
1709 CE 폴타바 전투 대북방전쟁스웨덴러시아로 진격해 벌어진 전투. 러시아가 승리하여 북유럽 지역의 패권을 획득하였으며, 스웨덴은 이후 열강의 반열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됨.
1796 CE 아르콜 다리 전투 프랑스 혁명 직후 이탈리아 북부에서 프랑스오스트리아충돌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활약했던 초기의 전투.
1800 CE 마렝고 전투 제2차 이탈리아 전쟁에서 다시 맞붙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이 여기서 기사회생한다. 해당항목 참조.
1805 CE 트라팔가르 해전 호레이쇼 넬슨의 영국 해군이 빌뇌브가 이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 격파.
1805 CE 아우스터리츠 전투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이끄는 연합군을 격파. 삼제회전
1815 CE 워털루 전투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군과 아서 웰즐리가 이끄는 영국, 프로이센의 대불동맹군이 맞붙음. 이 전투로 나폴레옹은 완전히 패배,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
1854 CE 발라클라바 전투 크림 전쟁에서 영국군러시아군이 충돌한 전투. 영국군의 무모한 닥돌로 유명하다.
1862 CE 앤티덤 전투 남북전쟁로버트 E. 리가 이끄는 남부군과 북부군 사이의 전투. 하루만에 각각 1만 5천씩의 전사자가 나는 끝에 무승부. 이로써 남부군의 진격은 저지된다.
1863 CE 챈슬러스빌 전투 남군의 장군 스톤월 잭슨이 사망.
1863 CE 게티스버그 전투 미군(북군)이 남부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둠. 이후 남북전쟁은 북부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
1863 CE 카메론 전투 나폴레옹 3세멕시코 원정으로 파견된 프랑스 외인부대멕시코군에 맞선 전투.
1876 CE 리틀 빅혼 전투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인디언 진압대'가 아메리카 원주민군에게 몰살된 전투. 이후 커스터 중령은 미국에 의해 영웅시 되나 실상 그는 무능하고 잔인한 장교였을 뿐이다.
1904 CE 203고지 전투 러일전쟁일본군요새도시 뤼순의 203고지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하나 저열한 전술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다.
1905 CE 봉천 전투 러일전쟁일본군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최대규모의 지상전. 일본군은 약전고투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러시아군의 섬멸에는 실패했다.
1905 CE 쓰시마 해전 도고 헤이하치로의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트 함대를 격파하였다.

2.4.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1914 CE 국경전투 1차대전초,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평시에 준비한 전쟁계획을 서로를 향해 발동한다. 끔찍한 피해를 낳은 대결끝에 프랑스군은 패배하고 1차 마른 전투를 벌일 때까지 후퇴한다.
1914 CE 탄넨베르크 전투 독일군이 공세에 나선 러시아군 2개 군을 섬멸함. 그러나 전투 지원을 위해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면서 전력공백이 발생해 서부전선이 고착된다.
1914 CE 1차 마른 전투 파리로 향하던 독일군이 연합군의 반격에 막혀 진격이 좌절됨. 슐리펜 계획이 실패하면서 서부전선의 전황은 참호전으로 교착화된다.
1915 CE 갈리폴리 전투 오스만 제국이 영국 해군의 공격을 격퇴함.
1916 CE 베르됭 전투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되며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1916 CE 유틀란트 해전 영국 해군과 독일 해군의 주력함대가 격돌해 독일 함대가 승리함. 그러나 독일 함대는 이후 외해 진출을 포기한다.
1916 CE 솜 전투 영국군이 베르됭 공세에 맞서 독일군에 대해 공세를 시도하나 양군에 막대한 피해를 낸다.
1917 CE 카포레토 전투 독일-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군에 대규모 반격을 개시하여 승리한다.
1918 CE 백일 전투 1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최후 공세

2.5. 한반도 독립 운동 (1919~1939)

1920 CE 봉오동 전투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 추격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로 자신감을 얻은 독립군은 뒤이어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1920 CE 청산리 전투 김좌진, 홍범도 등이 지휘하는 독립군 부대가 일본 추격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각각 3천여 부대가 맞붙은 전투에서 독립군은 1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일본군은 1,200명의 전사자를 낸다.
1937 CE 보천보 전투 김일성이 100여명의 부하와 함께 일제로부터 시골마을을 하루동안 점령한 사건. 이로써 그는 유명해졌고 따라서 이 전투는 훗날 북한 왕조의 왕이 되는 시발점이 된다.

2.6.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1939 CE 할힌골 전투 몽골 영토에서 일어난 소련군과 일본군 사이의 무력충돌. 소련군의 승리.[5]
1939 CE 폴란드 침공 2차대전의 서막을 올린 전투. 나치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

 

1940 CE 프랑스 침공

6주만에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 독일 승리. 이후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33만명의 연합군이 탈출에 성공한다.

 

1940 CE 아라스 전차전 영국 대륙원정군 소속 전차부대가 독일군과 교전.
1940 CE 캐터펄트 작전 프랑스가 항복하자 프랑스 해군이 독일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은 프랑스 해군을 습격한다.
1939~45 CE 대서양 전투 대서양에서 전개된 독일과 연합국 해군간의 일련의 전투. 영국의 항로봉쇄 및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병참보급로 차단이 독일측의 목적이었으나 실패한다.
1940 CE 영국 본토 항공전 영국 공군이 독일 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함. 이후 독일군은 영국 본토 침공을 포기.
1940 CE 타란토 공습 영국 해군이 이탈리아 해군기지 타란토를 공습. 이로 인해 이탈리아군지중해 재해권을 상실.
1941 CE 비스마르크 추격전 독일 해군과 영국 해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1941 CE 유고슬라비아 침공 유고슬라비아에서 친영국 쿠데타가 발생하자 추축국은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한다.
1941 CE 바르바로사 작전 독소전쟁의 서막. 독일군은 전투에서는 승리하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1941~2 CE 모스크바 공방전 바르바로사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를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1941~2 CE 세바스토폴 공방전 독일군이 소련의 군항인 세바스토폴을 3배의 병사로 포위, 점령하고 10만에 달하는 소련군은 전멸한다.
1941~44 CE 레닌그라드 공방전 871일동안 지속된 전투. 44년 전황 악화로 독일군이 퇴각.
1941 CE 진주만 공습 일본 해군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을 기습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은 중립을 포기하고 추축군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한뒤 연합군으로 참전한다. 이로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1 CE 말레이 해전 영국 동양 함대가 일본항공대에 의해 궤멸당한다.
1941 CE 웨이크 섬 전투 일본군의 공격에 수적 열세인 미군이 분투한다.
1941~2[6] CE 싱가포르 전투 동남아시아영국군 거점 싱가포르일본군이 점령한다.
1942 CE 로스앤젤레스 전투 로스앤젤레스 상공의 정체모를 비행체에 미군이 일제히 방공포를 쏜 사건. UFO 떡밥의 강력한 증거로 인용된다
1942 CE 산호해 해전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산호해에서 미일 해군 기동부대가 충돌한다. 항모 기동부대간의 첫 교전 사례.
1942 CE 스탈린그라드 전투 붉은 군대나치독일군 제6군을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공격, 섬멸함. 이로 인해 독일군은 수십만 병력과 물자를 잃음.
1942 CE 미드웨이 해전 미국 해군이 미드웨이 근해에서 일본 해군을 괴멸시킴.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미군의 손으로 넘어간다.
1942 CE 엘 알라메인 전투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군단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서부 엘 알라메인에서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이끄는 영국 제8군에게 저지당한다.
1942 CE 사보섬 해전 과달카날 인근 사보섬에서 미일 함대가 충돌. 순양함을 다수 상실한 미군측의 패배로 평가.
1942~3 CE 과달카날 전투 미군이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을 괴멸시킴. 이로서 일본 육군 역시 미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줬다.
1942 CE 횃불 작전 영미 연합군비시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
1942 CE 바렌츠 해 해전 북극권 바렌츠해에서 소련을 향한 연합군 병참항로를 저지하려는 독일해군 수상함대의 "마지막 저항다운 저항".
1943 CE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독일군 승리.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피해를 만회
1943 CE 쿠르스크 전투 붉은 군대나치독일군을 상대로 승리. 특히 프로호르프카에선 양군 도합 900여대의 전차가 격돌한 전무후무한 사상 최대의 대전차전[7][8] 이며, 이로 인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공세 전력을 상실.
1943 CE 타라와 전투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에 주둔한 일본군을 미군이 섬멸함. 태평양 전쟁에서 전개된 미군의 도서 상륙과 고립된 일본군의 전멸 양상은 사실상 여기부터 시작된다.
1943 CE 몬테카시노 전투 독일군을 잡겠답시고 중세시대에 지어지고 방대한 양의 고문서들을 보관중이던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수만톤의 TNT로 날려버리면서 시작. 문제는 독일군은 케셀링 원수의 명령으로 수도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않았다는것. 수도원내의 일반 피난민들과 성직자들만 피해를 입었으며 결과적으로 폐허가 된 수도원 터에 독일군이 자리를 잡고 연합군을 몇개월간 괴롭힌다. 나중에 독일군이 철수하자 연합군중 일부(자유 폴란드군과 자유 프랑스군)는 약탈, 학살, 강간등 온갖 병크를 터뜨렸다.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전투중 가장 막장이였던 전투.
1944 CE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1944 CE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
1944 CE 임팔 작전 일본군의 역사적인 최악의 병크. 무타구치 렌야의 작전 입안하에 일본군은 보급 받지 않는 상태로 정글을 가로질러 임팔을 기습하고 격퇴당해 총 7만 2천의 사망자를 낸다.
1944 CE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 프랑스 해방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1944 CE 빌레르보카쥬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에 맞서 미하일 비트만 휘하 독일 전차대가 싸운다.
1944 CE 필리핀 해 해전 북마리아나 제도 상륙을 앞둔 미군이 일본군 항공전력을 말 그대로 사냥했다!
1944 CE 사이판 전투 타라와 전투의 확대 버전(…). 전쟁의 비극을 대표하는 충공스러운 절벽 투신 장면이 바로 여기에서(…).
1944 CE 레이테 만 해전 필리핀 상륙을 앞둔 미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군 사이의 "제대로 된" 해상작전임무. 동원함선 톤수로는 최고기록. 여기서 괴멸한 일본해군은 기댈 곳이 없어 결국 정신줄을 놓고야 말았다!
1944 CE 바그라티온 작전 소련군이 동유럽 지역에 대한 일대 공세를 실시함. 독일의 동맹국들이 항복하고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1944 CE 마켓 가든 작전 연합군의 오만이 참극을 가져왔다.
1944 CE 휘르트겐 숲 전투 서유럽을 거의 해방시키고 독일 국경까지 접근한 미군은 휘르트겐 숲 지크프리트 선에서 독일군의 저항에 직면한다. 여기서 시간을 벌어 반격의 준비를 마친 독일군은 마침내...
1944 CE 아르덴 대공세 독일군이 서부전선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공세를 시도하나 좌절됨. 이로서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도 여력을 상실한다.
1945 CE 람리섬 전투 람리섬에서 영국군과 일본군간에 벌어진 전투. 일본군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늪을 가로질러 반자이 어택을 시전해 악어밥이 되는 병크를 저지른다.
1945 CE 베를린 전투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이 포위되고, 히틀러가 자살했으며 되니츠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유럽의 전쟁이 끝났다!
1945 CE 이오지마 전투 미군이 이오지마에 틀어박힌 일본군을 전멸시킴. 일본의 영토에서 벌어진 첫 지상전. 미군 역시 피해가 컸기에 일본 본토 진공에 고심함.
1945 CE 오키나와 전투 미군이 오키나와 섬에 상륙해 일본 방어군을 섬멸함. 이오지마 전투에 이은 참상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소련에 대일 참전을 요청한다.
1945 CE 8월의 폭풍 작전 미군의 요청에 따라 붉은 군대가 만주의 일본관동군을 공격, 일본이 믿고 있던 소련 협상과 관동군 전력 둘다 소멸해버린다. 결국 일본 제국은 항복, 전세계의 전쟁이 끝났다!
     

2.7. 냉전기(1945년~1991년)

1950 CE 춘천-홍천 전투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6월 25일에서 30일 사이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강원도 춘천에서 홍천 방면으로 남하하던 북한군 제2군단의 공세를 저지하여 진격속도를 늦춘 전투.
1950 CE 다부동 전투 대한민국 국군 제1보병사단북한군 상대로 낙동강 전선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게 됨.
1950 CE 인천 상륙작전 미군대한민국 인천에 투입되어 서울까지 진격. 이로 인해 한국전쟁 초반 밀리던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반격할 수 있게 됨.
1950 CE 장진호 전투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한 미 해병 제1사단이 함흥/흥남항 방면으로 진군한 사건.[9] 흥남 철수는 이 전투의 연장선상에 있다.
1951 CE 1.4 후퇴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철수한다. 1950년 6월 28일에 이은 두번째 서울 함락이었다(…).
1951 CE 횡성 전투 한국전쟁 시기, 1951년 2월 펼쳐진 중공군 3차 공세에서 한국군 제8보병사단이 중공군 13병단의 공격에 궤멸당한 전투. 이 전투로 중공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1951 CE 금양장리 전투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금양장리(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일대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전투.
1951 CE 현리 전투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에서 대한민국 국군 제3군단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붕괴, 후퇴한다. 이로 인해 한국군은 독자적 작전능력을 상실한다.
1951 CE 용문산 전투 대한민국 국군 제6보병사단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
1952 CE 백마고지 전투 한국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을 쏟아부었던 전투. 그리고 중국군이 한국전쟁당시 유일하게 국군에게 패배했다는걸 인정한 전투다.
1953 CE 금성 전투 한국전쟁 막바지에 대한민국 국군중공군강원도 금성군 일대의 돌출부를 놓고 벌인 전투.
1968 CE 구정 공세 베트남 전쟁 당시 사실상 관례화 되어 있는 뗏(베트남말로 구정, 1월 1일) 휴전 중 베트콩이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공세는 실패하나 미국의 반전여론에 불을 붙였다.

2.8. 현대전(1991년~)

1993 CE 모가디슈 전투 요인 납치 작전 도중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미군과 민병대 및 아이디드 군벌 간의 전투.
1999 CE 제1연평해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해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
2002 CE 제2연평해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해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로 추정
2009 CE 대청해전 서해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의 NLL 침입으로 벌어진 교전, 대한민국 해군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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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삼국사기에서는 246년이다. 244년은 관구검기공비의 기록
  • [2] 메카에서 박해받던 무함마드와 무슬림들이 이주한 도시로 이슬람교 제2의 성지가 되었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히즈라 هِجْرَة Hijrah / 헤지라 Hejira'(성스러운 이주)를 실행한 해(622 CE)는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정해졌다.
  • [3] 흔히 알려진 안시성주의 이름 양만춘은 야사로 전해질 뿐이고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 [4] 로마 시대의 국경선으로 유명한 도나우 강으로도 알려져 있다.
  • [5] 일본은 이를 노몬한 사변이라고 축소해 사실을 은폐했다.
  • [6] 싱가포르 함락 자체는 1942년 2월이지만 이를 최종목표로 하여 사전에 전개된 말레이반도 상륙은 1941년 12월이었다. 싱가포르 전투의 범위를 싱가포르 지역에만 국한할 것인지, 말레이반도 전투 전체를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전투개시 연도가 달라진다.
  • [7] 걸프 전쟁에서도 메디나 리지 전투에서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졌지만, 미 제 1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체 전차가 348대인거지 전차전 규모가 제 1기사 전체가 가담한게 아니다. 이라크의 경우도 메디나 사단 휘하 연대급 부대들이 참가했으며 참가 규모는 미 육군 보다 크긴 했고 현대전 치고는 유래없는 대규모 전차전이긴 했으나. 쿠르스크 특히 프로호로프카와 비교할 규모는 아니다.
  • [8] 쿠르스크 일대에 독일군은 전차 및 자주포 2,700대를, 소련군은 전차 및 자주포 3,600대 (기록에 따라 8천대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를 배치하였다.
  • [9]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은 후퇴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후퇴라니? 빌어먹을, 우리는 다른 쪽으로 공격 중이라고!"라 대답했다.
* 출처:엔하위키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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