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회룡]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최근 백악관은 이런 신중한 태도를 반영하는 문헌 두 건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잔여 임기 2년을 지휘할 문헌이다. 첫 번째 문건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이다. NSS의 핵심은 ‘전략적 인내’의 필요성이다. 숨겨진 뜻은 미국이 테러나 러시아·중국의 공세와 싸우기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건은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협조 요청이었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해 오직 방어 목적으로 3년간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공화당과 힐러리 클린턴 같은 보수적 민주당 인사들은 두 문건에 나타난 오바마 대통령의 수동적 태도와 평화주의를 비판했다. NSS 중에서 아시아 관련 부분은 상당히 합리적이었으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제 안보를 위한 미국의 리더십 차원이 미흡했다.
6년 전이라면 이런 신중함은 미국의 경제력에 비춰봤을 때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국가 안보 전략은 결국 어떤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바탕으로 설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경제력은 다시 우뚝 선 모습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앞으로 수년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매년 3% 이상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럽·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혁신, 생산성 향상, 에너지 혁명 덕분에 미국은 현재 세계 2위의 제조업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1등은 중국이다. 경제학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늦어도 2018년까지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금융위기 이후 그 어떤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성공적으로 경영상태를 호전시켰다. 이러한 건강한 지표를 감안해 골드만삭스 같은 주요 투자 서비스 회사들은 고객들에게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 신흥 시장 투자를 줄이고 미국으로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브릭스(BRICS)’라는 약어를 만들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에 투자할 것을 주장한 게 골드만삭스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의 NSS 문헌에 담긴 신중성은 국제관계에 대한 미국 내 여론과도 전적으로는 부합되지 않는다. 퓨리서치센터(PRC)의 2013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51%의 미국인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2014년 말 그런 응답은 39%에 불과했다. 러시아의 은밀한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슬람국가(IS)가 두 명의 미국인을 참수한 것을 목격한 미국인들은 미국의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러한 태도 전환은 특히 공화당 지지층에서 두드러진다. 그래서 랜드 폴 상원의원 같이 고립주의적인 성향의 인사들은 서둘러 주류의 의견과 부합되는 방향으로 입장을 수정하고 있다. 자유무역 반대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던 미국인들이 이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자유무역협정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아직 중동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고 있지만, 경제력 강화와 러시아·이슬람국가(IS) 같은 위협 때문에 여론이 크게 바뀌고 있다.
최근 국제정치학 학자들과 전직 관료들이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초당파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미국이 세계를 지도할 능력을 지녔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두 개의 질문이 제기됐다. 첫 번째는 2016년 대선이 미국의 리더십에 미칠 영향이다. 공화·민주 양당의 후보들인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은 국방비를 증액하고 러시아·이슬람국가(IS), 그리고 필요하다면 중국에 대해 보다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내의 강경파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미국의 동맹국들과 관련된 것이다. PRC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리더십 부담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이나 다른 독재 국가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빠져 있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 정치와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영국·그리스 같은 나라들이 EU를 떠나는 것을 막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래서 미국-유럽 관계를 중시하는 대서양주의자들조차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이 글로벌한 맥락에서 점점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나라는 한국·일본·호주다. 미국의 대전략(大戰略·grand strategy)에서 ‘글로벌 코리아’가 이만큼 더 중요했던 적은 없다.
* 중앙일보 -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