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재상 황희가 세상을 뜨자 김종서 장군은 “이제 누가 꾸짖어 줄꼬”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평소 관대했던 황희였으나 김종서의 조그만 잘못은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맹사성이 김종서에게만 엄한 까닭을 물었다. “낸들 좋아서 그러겠나. 칭찬만 한다면 자만심에 빠질 것이오. 그래서야 큰 인물이 되겠소?”
김종서와 황희의 일화를 전하는 과정에서 틀리기 쉬운 표현이 있다. “낸들 좋아서 그러겠나”와 같이 써서는 안 된다. ‘낸들’을 ‘난들’로 고쳐야 바르다.
‘난들’을 ‘낸들’로 잘못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일인칭 대명사 ‘나’에 ‘~라고 할지라도’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인들’이 붙은 ‘나인들’의 준말이라고 생각해서다. ‘나’ 뒤엔 ‘인들’이 올 수 없다. 받침 없는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는 보조사 ‘ㄴ들’이 붙으므로 ‘난들’로 써야 한다. ‘인들’은 “무슨 말인들 못할까?” “내 마음인들 편하겠소”처럼 받침 있는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온다.
둘째 일인칭 대명사에 ‘나’와 ‘내’ 두 가지 형태가 있어 ‘난들’과 ‘낸들’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보조사 ‘ㄴ들’ 앞에 ‘나’가 아닌 ‘내’를 넣어 ‘낸들’이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나’에 주격조사 ‘가’나 보격조사 ‘가’ 붙으면 “내가 모두 책임지겠다” “장차 나라를 이끌 이는 내가 아니다”와 같이 ‘내’로 형태가 바뀌지만 다른 조사 앞에선 ‘나’로 쓰인다. ‘나도, 나를, 나보다’ 등처럼 ‘나’와 ‘ㄴ들’이 결합한 꼴인 ‘난들’로 표현하는 게 바르다.
‘나 자신’을 ‘내 자신’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내’의 쓰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내’는 두 가지 형태로 사용된다. ‘나’에 주격이나 보격조사 ‘가’가 붙을 때다. ‘나’와 ‘자신’ 사이에 주격이나 보격조사 ‘가’가 올 일은 없으므로 ‘내 자신’이란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나’에 관형격조사 ‘의’가 결합해 줄어들 때도 ‘내(나의)’ 형태가 된다. 그 뒤에는 ‘자신’을 써도 될 것 같지만 ‘나의 자신’이란 말이 돼 어색하다. ‘자신’을 동격인 ‘나’로 강조한 말로 봐 ‘나 자신’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 중앙일보 -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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