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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경제> 삼성전자·현대차는 잊어야 한다

Bawoo 2015. 3. 10. 21:54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일본 아베 총리의 따라쟁이다.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에 이어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회복된다”고 했다. 야당의 문재인 대표도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 주도 경제성장’에 맞장구친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월급을 올려줄 만한 대기업·공기업의 정규직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7%. 나머지 93%가 중소·영세기업 근로자다. 올려주고 싶어도 불가능한 현실이다.

 먼저 우울한 통계치부터 보자. 우리의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56.7%다. 독일은 85%다. 야근·초과근무 등 비인간적 근로조건도 중소기업이 더 심하다. 취업준비생 눈에 대기업만 보이는 건 당연하다. 평소 ‘삼성까(비난파)’였다가 입사철엔 모조리 ‘삼성빠(칭찬파)’로 돌변한다. 현대차를 ‘수타페(물 새는 산타페)’로 조롱하다 입사 관문인 역사 에세이를 쓰는 데 정신이 없다.

 돌아보면 우리도 1988년엔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78.1%인 나라였다. 어디에서 극심한 양극화가 비롯됐을까? 냉정하게 보면 절반은 대기업의 약진 때문이다. 지난해 대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평균 48%(삼성전자는 무려 89%다!). 수출과 해외 생산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중소기업이 쪼그라든 탓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해외 매출은 14%. 거꾸로 국내 판매 비중은 86%로 지난 12년간 4.2%포인트나 늘어났다.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다.

 지난주 삼성은 애플이 놀랄 만한 갤럭시6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샤오미 쇼크’로 값싼 중국·베트남 생산에 더 치중해야 할 형편이다. 현대차의 미래도 1차 협력업체를 보면 된다. 성우하이텍의 해외 비중은 77.4%나 된다. 해외 생산 비중이 절반을 웃돌면서 현대차 생산직은 취업경쟁률 250대 1이다. 뒤집어 말하면 더 이상 수출 대기업의 낙수 효과는 기대하지 마시라! 좋은 일자리도 신기루일 따름이다.

 풍부한 경륜의 한덕수 전 총리 충고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무역협회장 시절 “이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이 5.9%나 늘어나 대기업(0.3% 증가)을 앞질렀다”고 했다. 온라인 판매·홈쇼핑·해외 역(逆)직구로 중소기업 수출의 국경이 낮아졌고, 한류 덕분에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이 돋보인 것이다. 그는 “세상이 바뀌는 조짐”이라고 했다.

 이제 중소기업에 승부수를 띄우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따지고 보면 과거 중소기업 정책은 과보호가 탈이었다. 중복 지원과 간섭으로 온실 속의 화초만 키워냈다.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지원사업은 19개 부처와 공공기관이 나눠 먹었고, 중소기업 수출지원사업은 무려 408개나 난립해 있다. 이뿐이 아니다. 산업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1차 협력업체는 대부분 현금 거래로 투명해졌다. 오히려 2차→3차→4차 협력업체 간의 거래가 훨씬 무질서하고 잔인하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때리기에 앞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도 300만 개 중소기업 가운데 3000개만 선택해 집중적으로 키워 보았으면 한다. 무차별적 지원 대신 기술개발과 전자상거래 수출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인터넷 결제를 손쉽게 해주고, 저렴하고 신속한 배달을 위해 칭다오·상하이·동남아에 물류창고를 짓거나 전용 화물선을 띄우는 것도 가치 있는 실험이다. 그것이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만약 10년 후 2000개의 중소기업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면 새로운 삼성전자(매출 206조원)가 탄생하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 “정치는 몰라도 경제적으론 전두환 시대가 좋았다”는 50대 이상이 의외로 많다. 물가 안정과 함께 중소기업이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이제 혼자서도 잘하는 삼성전자·현대차는 잊어야 한다. 18조원의 정부 R&D 자금을 중견·중소기업에만 몰아주는 독일도 참고해야 한다. 중소기업 생태계가 튼튼해지면 창조경제나 소득 주도 성장은 덤으로 따라온다. 충분히 그런 모험을 할 만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 중앙일보 -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