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엄원태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이 있는데,
못 가는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
하고 앉아서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저녁이다.
종일 빗속의 생각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날아다녔다.
젖어가는 날개가진 것들의 젖어가는
마음을 이제 조금 알겠다.
저녁 되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늙어가는 어떤 마음과 다름없는 것을........
뽀얗게 우러나는 마음의 뜨물같은 것을......
비가 그 무슨 말씀인가를
전해주었나 부다.
엄원태 : 1955년 대구출생, 1990년 문학과 사회에 ‘나무는 왜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등. 1991년 제1회 대구시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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