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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불멸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자료 1)

Bawoo 2015. 5. 15. 00:44

 


<1819년 요제프 카를 스틸러가 그린 유화 초상화>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2.17 ~ 1827.3..26).

그는 아시다시피 독일작곡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삽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환기에 활동한 주요 음악가이며, 작곡가로 널리 존경받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1812년에 '불멸의 연인'에게 쓴 편지...

 

사후, 그의 책상에서 한 통의 편지가 발견됩니다.

 

베토벤의 나이 42세 되던해인 1812년에 『불멸의 연인』 앞으로 쓴 편지.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어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추측을 낳고 있는 불멸의 연인을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합니다.

 

'나의 천사, 나의전부, 나 자신인 그대여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나의 가슴은 터질 듯하오
아아, 내가 어디에 있거나 그대는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소
아마도 일요일이 되기까지는 나의 첫 기별을
그대가 받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오
아아, 그대를 보지 못하는 이러한 생활은  쓸쓸하구료 !
이렇게 가까우면서도 이렇게 먼 그대 !
나의 마음은 그대에게로 달린다오, 나의 영원한 사랑이여.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슬프게 운명에게 물으면서,
운명이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 주려는가 물으면서
나는 그대와 함께 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든지 할 거요
그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차지할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오
오오,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데 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단 말이오 !
하긴 나의 인생이란 지금도 그렇지만 슬픔의 인생이오.
그대의 사랑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시에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었소
안심하시오
안심하시오
나를 사랑하여 주시오 !
오늘도
어제도
얼마나 뜨거운 열망, 얼마나 많은 눈물을 그대에게로,
그대
그대
그대
나의생명
나의 전부인 그대에게로 보냈던가 ! 그러면 안녕히 !
오오, 끝끝내 나를 사랑해 주시오
그대의 사랑하는 L의 마음을 몰라 주면 안 되오
영원히 그대의 사랑
영원히 나의 사랑
영원히 우리들의 사랑.' 

베토벤은 알려진 여인만 해도 11명의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습니다.

그의 여인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소문들이 존재하고 있어 수많은 학자들이 추적을 시도한 결과.

『불멸의 연인』은 크게 요제피네라는 설과 안토니아 브렌타노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가집니다.

 

참조블로그> 베토벤의 여인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에게 '불멸의 연인'이란 따로 없는 듯 보입니다.

11명의 여인과 타오르는 가슴을 가진 그로서는 창작열 만큼이나 사랑도 타올라을테니까요.

 

여하간 그 여인이 누구든 간에 베토벤에게는 4명의 여인과의 인연이 특히 주목됩니다.

 

 

 

 

 

첫번째 여인은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1782-1856)입니다.

 

1799년 5월 베토벤은 헝가리인 백작부인 안나 브룬스비크(Anna Brunswik)의 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됩니다.

테레제(therese brunswic)와 요제피네(josephine brunswick)인데 후에 염문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여하간...1801년 궁정의원 귀차르디 일가가 브룬스비크가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 때 16세 줄리에타 귀차르디가 베토벤에게 수업 받기를 원하는데 베토벤이 줄리에타를 좋아하게 됩니다.

월광소나타(Beethoven: Piano Sonata no. 14;1801년)는 바로 이 여인에게 헌정됩니다.

월광소나타를 들어보시면 잔잔한 선율에 흐르는 감성에서 베토벤의 마음을 읽는 듯 합니다. 

 

 

 

그러나, 줄리에타는 다른 공작과 결혼합니다. 그녀가 베토벤을 싫어한 이유는 키가 작았디 때문이라는데.

다른 사람들은 줄리에타가 천박하다가 욕을 하지만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알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

여하간 베토벤은 상아로 만든 줄리에타의 상을 일생 동안 자신의 책상 위에 둡니다.

1823년 베토벤은 "그녀는 자신의 남편보다 나를 훨씬 사랑하였다."고 회고하기도 합니다.

 

 



 

 

주목할 두번째 여인은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Josephine Brunswick; 1779-1821)입니다.

 

언니인 테레제(therese brunswic; 1775~1861)에 비해 일찍 사망하는 그녀는 무척 예뻣나 봅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1812년 베토벤의 행적 때문입니다.

1812년 7월 3일과 4일에 프라하에서 베토벤과 남편과 사별후 혼자 지내던 요제피나가 만난 거지요.

이틀간 함께 지낸후 베토벤은 테플리츠로, 요제피네는 아이들이 있는 빈으로 돌아가는데요.

이후 요제피네는 막내 딸(미노나)을 낳게 됩니다.

 

베토벤이 브루스비크일가에서 음악을 가르칠 때 둘의 사랑은 싹텄을 것으롤 보입니다.

그러나, 요제피네는 어머니에 의해서 26세 연상의 다임 백작과 결혼하게 됩니다.

베토벤이 남자로서는 딸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부보의 판단이었겠지요.

불행히도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베토벤은 계속 요제피네 근처에 머물면서 음악 수업을 합니다.

요제피네가 25세 나이로 네 번째 아기를 가졌을때 요제피네의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요제피네 남편 사망 이후 베토벤이 요제피네에게 본격적으로 구애했으나 거절했다고 합니다.

요제피네 생각에 아이들에게 베토벤이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지 않아 거절했다는 설이 있더군요.

요제피네는 1808년 크리스토프 아담 폰 슈타켈베르크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역시 행복하지 못하지요.

그 사이 아이를 둘 더 낳아 여섯아이의 엄마로 다시 솔로가 된 요제피나에게 베토벤이 남자로 보였을까요 ?

 

1813년 4월 9일 미노나 출생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미노나가 베토벤의 딸이라면 요제피네와 베토벤은 1812년 프라하의 흔적 전에도 관계를 가져왔다는 결론이지요.

이 것은 추측이고 그녀는 1821년 42세로 사망합니다.

 

1846 테레제가 쓴 일기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왜 요제피네가 첫 남편과 사별한 후 베토벤을 남편으로 맞이하지 않았을까?

스카켈베르크보다는 베토벤과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였을 텐데..."

 

열정소나타(Beethoven Piano Sonata no. 23; 1805년)는 요제피네에게 바쳐진 곡입니다.

 

 


 



 

 

주목할 세번째 여인은 테레제 마르파티 (Therese Malfatti; 1792 -1851) 입니다.

 

테레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베토벤은 한때 그녀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테레제는 베토벤이 가까이 지내던 빈의 대지주의 딸로서 빈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대단한 미인이었습니다.

머리와 눈동자가 흑갈색이고 콧날이 오똑하며 명랑한 성격의 아가씨였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이끌리어 틈만 나면 테레제의 집을 방분하기도 합니다.

또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지요. 베토벤은 이만하면 바람둥이가 확실하지요 ?


1819년 베토벤은 테레제와의 결혼을 위해 고향인 본에서 세례 증명서까지 떼어오게 하였으나
그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때 베토벤은 40세, 테레제는 아직 17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23세라는 나이 차이보다는 그당시 베토벤의 생활이 안정되지 못했다는것이 결혼에 있어서 큰 장애가 되든 합니다.

결국 테레제에 대한 사랑은 베토벤의 일방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Bagatelle No. 25; 1810년도)는 테레제에게 바쳐진 곡으로 추정합니다.

귀에 익숙한 '따라 따라 따라 따라라라~'하는 장면이 '나의 나의 나의 테~에~레제' 로 들립니다.

 

 

 

 

 



 

 

주목할 네번째 여인은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1869) 입니다.

'불멸의 연인' 으로 추정되는 가장 강력한 여인입니다.

 

베토벤을 만났을 당시 이미 결혼하였고 네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베토벤에게 청혼하였다 합니다.

안토니의 남편 프란츠는 베토벤의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베토벤에 푹 빠진 여인이었습니다.

1812년 브렌타노 가족과 이별한 후 1817년 29번 피아노 소나타까지 거의 멘붕상태로 지냈다 합니다.

이별후 이런 말을 남기지요.

 

"복종! 운명에 대한 철저한 복종만이 신에 대한 봉사로 이끌 수 있다.

너는 너 자신만을 위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 신이시여! 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또한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

A(안토니아)와의 모든 관계는 끝이 났습니다."

1812년 프라하에서 베토벤과 브렌타노가 만났다고 하기도 합니다. 헐;;;

 

디아벨라 변주곡(Beethoven Diabelli Variations Op.120; 1820년)은 그녀에게 헌정된 곡 입니다.

다가서고 밀려나고 사랑받는 감정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오롯이 표현해 내고 있는 듯 합니다.

 

 

 

 

수많은 여인들이 그의 곁에 있었지만 베토벤은 결국 독신으로 지내다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마다 사연이 깊었던 걸까요 ? 아님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갈구해서 그럴까요 ?

 

베토벤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지만 사랑에서만큼은 불멸의 연인을 찾아 헤맨 방황의 인연입니다.

여인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짜르트, 하이든, 살리에리등 스승을 찾아 허메던 창작열도 사랑의 인연만큼 닮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