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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증권시장 이야기>조금 더 많이 안다는 것

Bawoo 2015. 5. 24. 03:09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레네스 자매가 나온다. 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누구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데, 우리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은 돛대 기둥에 묶어 세이레네스 자매의 마력을 피해간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정작 세이레네스 자매가 부르는 노래가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른다. 한번 들어보자.

"오디세우스여, 배를 세우고 달콤한 우리 노랫소리를 들어보세요.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이곳을 통과한 배는 아직 한 척도 없었어요. 우리 노랫소리를 들은 사람은 죽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고 가지요. 우리는 풍성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으니까요."

세이레네스 자매의 유혹은 다름아닌 "조금 더 많이 아는 것"이었다. 스스로 돛대에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조차 억누를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부하들에게 풀어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었던 그 노랫소리는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절세의 미녀도 아닌 단지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19세기 중반 온갖 편법과 현란한 투기 수법을 동원해 월가를 휘젓고 다녔던 다니엘드루(1797-1879)는 월가 역사상 최고의 투기꾼 가운데 한 명인데, 그가 말년에 남긴 회고담에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그가 월가로 나가는 길에 한 젊은 투자자의 마차에 올라탔다. 알아주는 구두쇠였던 드루는 마차 삯을 절약할 요량으로 자주 남의 마차를 얻어 탔지만 이번에는 딴 속셈이 있었다.

드루의 옆에 앉은 젊은 투자자는 귀가 근질거렸다. 당대의 유명한 작전 세력이었던 드루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드루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마차가 월가에 도착하자 드루가 먼저 내렸는데, 너무 서두른 나머지 마차 문 위의 상인방(上引枋)에 모자가 걸려 바닥에 떨어졌고, 그 순간 모자 안쪽에 끼워두었던 종이 뭉치가 흩어졌다.

#그 시절에는 주식 거래 주문서를 미리 써서 준비해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쪽지들 역시 드루가집에서 가져온 주문서들이었다. 드루는 바닥에 떨어진 주문서를 황급히 주워 모았고 당연히 젊은이도 도왔다. 여기에는 "이리철도 68달러에 500주 매수" "67달러에 1000주 매수" "시가로 3000주 매수"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드루는 자신이 주문할 내용이 이렇게 새어나간 것에 적잖이 당황해 하며 허둥지둥 사무실로 들어갔고 젊은이의 마차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다음은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투자자는 곧바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이렇게 알렸다. "그 노친네가 이리철도를 매집하고 있어!" 이들은 일제히 이리철도 주식을 매수했고 주가는 뛰기 시작했다. 드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가가 올라갈 때마다 그는 매물을 내놓았고, 그가 물량을 거의 다 내놓았을 무렵 주가는 주저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루와 함께 마차에 탔던 젊은 투자자는 이때까지도 갑작스런 주가 하락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드루는 자신의 주식을 매수해줄 세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젊은 투자자의 뭔가 알고 싶어하는 심리를 이용했던 것이다. 소몰이꾼 출신답게 '주식 물타기' 수법을 처음으로 개발해내기도 했던 드루에게는 '투기판의 지휘자(the Speculative Director)' '큰곰(the Big Bear)'을 비롯해 숱한 별명이 따라다녔는데, 그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월가의 유쾌한 노친네(Merry Old Gentleman of Wall Street)'였다. 이 유쾌한 노친네가 즐겨 했던 말은 "꿀이 있는 곳에 파리가 꼬이듯이 돈이 되는 곳에 사람들은 몰리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세이레네스 자매는 끝까지 유혹한다. "우리는 트로이에서 벌어진 그리스 군과 트로이 군의 전쟁에 대해서도 그 전말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어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비로소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로서는 얼마나 듣고 싶은 이야기였겠는가. 오디세우스는 가까스로 이겨냈지만 그 이전까지는 아무도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 참 얼마나 큰 유혹인가.

 

* 머니투데이 -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