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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군대는 갔다 왔니?

Bawoo 2015. 6. 2. 22:05

40년 전,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데모 행렬이 한바탕 휩쓸고 간 교정에 멍청하게 앉아 있던 나에게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군대’라는 현실감이 엄습했다. 평소 똑똑하기로 이름난 법대 친구에게 이 사건을 의뢰했다. 나의 신체적 특징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의기양양하게 건네준 연구보고서는 이랬다. 신체검사법에 의하면 가슴둘레가 키의 절반을 넘지 못하면 면제! 나는 왕갈비였던 거다. 신체검사를 끝낸 나는 비장의 카드를 품에 안고 군의관 앞에 섰다. 그가 말했다. “갑종 현역 합격, 복창!” 기에 질려 우물쭈물하다가 용기를 내 말했다. “신검법 몇 조에 의하면…면젭니다!” 비스듬히 앉아 있던 군의관의 눈에 불이 일었다. “너 이리 와 봐.” 한 차례 귀싸대기만 벌었다. 그 갑종 합격자는 몇 년 뒤 얼떨결에 장교 복무를 마쳤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동갑내기가 거의 100만 명에 달했으니 입대 자원이 넘쳐흘렀다. ‘빽’이 있으면 면제가 가능했고, 조건도 아주 후했다. 가문을 이을 3대 독자는 당연히 열외, 신체상 약간의 하자를 부풀리면 3년을 벌었다. 김용준 총리 후보 아들처럼 ‘체중 미달’, 정홍원 전 총리 아들의 ‘허리 디스크’, 이완구 전 총리의 ‘평발’은 인기 있는 하자였다. 거기에 사격을 방해하는 악성 난시와 근시, 중병이나 정신질환은 물론 각종 특이체질이 포함됐다. 고관대작과 신흥 부자를 혼인으로 엮어주는 ‘마담뚜’가 성업하던 시절이었으니 금쪽같은 3년을 벌게 해주는 병역 브로커가 출현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병역 브로커가 거둔 금전은 병무 관계자와 그 주변에 살포됐다. 군역(軍役)을 군포(軍布)로 대신하던 조선 후기와 비슷했다고나 할까. 그 난리 덕에 ‘빽’ 없는 중하층 가정과 저학력 청년들이 입영 단골이 되었다.

 젊은 세대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 지금 요건은 턱없이 까다로워져서 진단서를 완벽하게 갖춘 이른바 ‘관심대상자’도 일단 입영해야 한다. 세계 최저의 저출산 국가에서 60만 대군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예외 없이 입영열차를 타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 ‘병역미필’은 불문곡직 ‘나쁜 사람’에 해당한다. 인기 절정의 가수였던 유승준 입국금지 사태가 인터넷 공방을 불러온 이유다. 여기에 프로골퍼 배상문도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그 불길이 총리 후보자인 황교안 장관에게 옮겨붙을까 은근히 걱정이다.

 국가관이 유달리 투철한 박근혜 정부에도 미필자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좀 낯설다. ‘면제’에 마취된 기성세대는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몰라도 젊은 세대의 감각에는 두드러기가 날 것이다. 황교안 총리 지명자의 면제 사유는 ‘만성 두드러기’였다. 만성 담마진의 의학적 심각성을 따져보지 않고 ‘아토피’로 오해한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팔다리 긁으며 잠 못 이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젊은이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업적 빈곤에 시달리는 현 정부가 병력(兵歷)보다 능력을 앞세웠다고 이해할 수 있겠는데, 분위기는 슬슬 능력에서 병력으로 옮아가는 모양새다. 법문에서 깔끔한 솜씨가 검증됐다지만 여론은 가문 날 산불과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국에서 병력은 서민 정서의 대명사다. 부자와 빈자, 잘난 자와 못난 자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 지붕 밑에서 뒹구는 유일한 시민학교가 군대다. 낯선 전우와 휴전선을 지켜보면 분단의 현실을 실감한다. 이런 사회적 혼합(social mix) 조직의 경험 여부는 동 세대원들의 상하, 좌우를 조망하는 균형감각을 체크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군대는 갔다 왔니?’라는 일상적 질문은 ‘철이 들었니?’ 혹은 ‘세상 현실을 좀 알았니?’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 높은 학문으로 병사(兵事)를 꿰뚫었던 유성룡 같은 명재상을 바라는 것은 아닐 터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총리가 만성 두드러기 면역자(免役者)라는 사실은 어째 좀 궁색하기는 하다. 더욱이 올해가 광복 70주년 아닌가.

 140년 전, 일본 메이지(明治)유신 실세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오랜 숙원인 조선 정벌에 1개 대대(大隊)를 요청해 출정 준비를 마쳤다. 일자리를 잃은 무사(武士)들이 열광했다. 식민지의 그 참혹한 세월은 정한론의 연장이었고, 그것이 낳은 예기치 않은 비극이 남북 분단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북한 핵, 사드, 아베 담화, 위안부, 독도, 미·중 관계 같은 첨예한 국제 분쟁은 물론 4대 개혁·불평등·경제체질 개선 같은 내부 과제를 우리는 과연 돌파할 수 있을지. 총리는 실세가 아니지만 비전의 기수는 될 수 있다. 정권의 상징이고 명찰이다. 광복 70주년, 내치(內治)와 외치(外治)의 새로운 이정표를 애타게 고대하는 국민들을 왜 하필 병력 검증, 전관예우, 종교 편향 같은 부차적 쟁점에 골몰하게 만드는지 너무 아쉽다. 초대 총리부터 줄곧 그랬다. 대통령도 답답할 것이다. 앞으론 꼭 물어보시기를. “군대는 갔다 왔니?”

* 중앙일보 -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