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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책속 '자유부인' 어떻게 변했나

Bawoo 2015. 6. 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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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피해는 엄청났다. 남북한 전체인구의 10%인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자보다는 전쟁터를 누빈 남자가 더 많이 죽은 것은 당연하다. 살아남은 여성의 고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등장한 여성이 ‘아프레걸’이다. ‘아프레걸’은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 guerre)’와 영어 단어 소녀(girl)를 합성한 조어로 향락과 사치와 퇴폐를 상징했다. “자유분방하고 일체의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받기를 잊어버린 여성들”로 ‘성적 방종’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아프레걸은 ‘자유부인’(정비석)의 오선영이다. 남편의 제자와 바람이 나고 댄스를 즐기던 오선영은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자유를 갈망하던 사회적 약자’이기도 했다. 또 다른 ‘아프레걸’은 이대 국문과 2학년 때에 ‘슬픔은 강물처럼’이라는 일기를 들고 혜성같이 나타난 최희숙이다. 명동을 무대로 많은 남자들과 벌이는 아슬아슬한 키스와 애무 행각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아프레걸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이라는 소설을 들고 나타난 고려대 영문과 4학년 박계형이다. 자궁암으로 죽어가는 32세 여인의 회고담 형식을 띤 이 멜로 드라마는 모든 추억이 오로지 ‘연애’로만 귀결된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박계형이 2년 전에 발표한 ‘젊음이 밤을 지날 때’가 문제가 되었다. 여대생의 타락한 생활을 그린 이 소설이 작가의 이야기처럼 여겨져 작가는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만 써야 했다.

1970년대 소설의 주인공은 온통 호스티스들이었다. ‘별들의 고향’(최인호)의 경아, ‘겨울 여자’(조해일)의 이화,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의 창숙과 영자 등은 몸을 팔아 먹고사는 여성들이었지만 ‘성(聖)처녀’처럼 여겨졌다. “혼탁한 도시 속에서 뭇 사내들의 무책임한 ‘방뇨’의 가련한 희생자”였기에 순결하다는 이미지마저 있었다.

1980년대에는 ‘숲속의 방’(강석경)의 소양이 있었다. ‘종로통 아이’로 불리던 대학생 소양은 절망 속에서 방황하다 자살에 이르고 만다. 1990년대에는 공지영 소설의 주인공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도 하고, 오로지 무한한 사랑만 받기만 하기도 하고(양귀자, ‘천년의 사랑’), 때로는 남자를 골라보기도(양귀자, ‘모순’) 했다.

여성의 시대인 21세기에 대중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거의 유일한 비소설 저자는 신간 ‘1그램의 용기’(푸른숲)를 펴낸 한비야다. 그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과 위로, 내가 두 손으로 정성껏 전해주고 싶었던 사랑 그리고 인생의 고비에서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작은 용기”를 말하고 있다.

여자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 아니라 인간 가운데서 누구라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여성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바야흐로 신모계사회로 접어들고 간통죄도 사라진 세상이 아닌가.





* 머니투데이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