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의 [키오스섬의 학살]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가 약관 26세 때 그린 [키오스섬의 학살] 역시 매우 드라미틱한 작품이다. 들라크루아가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고전주의자들은 "이건 키오스 섬의 학살이 아니라 회화의 학살이다"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들라크루아는 파리 시를 불태워버릴 사람"이라는 비방도 했다. 그의 낭만주의적 지향이 초장부터 얼마나 격렬한 반발을 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추하고 비참하고 잔인한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있다고 주장한 이 화가는 견고한 고정관념과 온몸으로 부딪치며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 1822년 지중해의 작은 섬 키오스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 이 그림은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르와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비록 당시에는 부정적인 면이 더 컸지만. 그리스인들이 많이 산다고는 하지만, 키오스 섬은 그리스라기보다 터키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리스 전체가 이미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기운이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사그라들던 19세기 초반, 유럽은 보수 반동의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대프랑스 동맹전쟁을 이끌던 오스트리아가 중심이 된 이 시기를 역사는 '빈체제'라고 소개합니다. ↑ 키오스섬의 학살 그림 구도 나폴레옹 시절, 오랜 독립 운동과 유리한 외교 지형을 통해서 독립국의 지위를 얻었던 그리스는 '나폴레옹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린다'는 빈체제의 지도자 메테르니히의 정책 탓에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로 되돌아가는 유례없는 일을 당합니다.
히오스 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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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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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
북위 38° 24′ 동경 26° 01′ / 북위 38.400° 동경 26.017° / 38.400; 26.017좌표: 북위 38° 24′ 동경 26° 01′ / 북위 38.400° 동경 26.017° / 38.400; 26.017 |
면적 |
842.289㎢ |
최고점 |
펠리네온 오로스 |
행정 구역 |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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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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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통계 | |
인구 |
51936명 (2001 기준) |
히오스 섬(그리스어: Χίος)은 그리스의 섬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에게 해에 자리잡고 있으며, 소아시아 해안과는 7km 떨어져 있다. 이 섬은 강력한 상인 선적 공동체와 고유의 유향수지 및 중세 마을들로 유명하다. 이곳에 있는 17세기의 수도원인 네아 모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히오스 섬의 주요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의 이름도 "히오스"인데, 지역 주민들은 이 도시를 '호라'(Χώρα, 문자 자체의 뜻은 땅이나 시골을 뜻하는데, 보통 그리스의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나 중심 도시에 붙는 이름이다.)라고 부른다. 행정 구역상 히오스 섬은 북부 에게 주의 개별 현을 이룬다.
고대에 이 섬은 "오피우사"(뱀이 있는) 또는 "피튀우사"(소나무가 있는)라고 불렸으며, 수많은 해외 강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중세 시대에는 '시오'(제노바 방언: Scio), '키오'(이탈리아어: Chio), '사키즈'(오스만 투르크어: صاقيز)로 불렸다. 중심 도시는 '성'을 뜻하는 '카스트로'(Castro) 또는 '카스트론'(Kastron)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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